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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Jun 21. 2019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심리학 전공의 똑똑한 사람이 글도 잘 쓰는데 심지어 위트까지 넘친다!


책을 읽으면서 소리 없이 낄낄 대고, 저자의 표현에 감탄한 게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의 첫인상은 다소 우중충한 표지의 뭔가 어두운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은 심리학 책(옆에 부제로 슈필라움의 심리학이라고 적혀있다) 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정말 똑똑한 사람이 글도 잘 쓰고 위트까지 있다면 이런 글을 쓸 수 있겠다고 느꼈다. 사실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기란 정말 쉽지 않다. 꽤 많은 베스트셀러들을 읽어봤는데, 글을 잘 써도 알맹이가 없기도 하고, 전공 서적 마냥 재미가 없어서 금방 덮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정말 이 정도는 '내' 기준에선 엄청난 극찬이다(앞서 쓴 서평들만 봐도). 


똑똑한 사람이 글도 잘 쓰고 위트까지 넘친다

이 책에는 저자가 쓴 에세이(?) 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칼럼 느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글들의 구성은 '저자의 일상 소재 - 도출해낸 의미 - 관련 심리학 개념 및 배경 -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이런 식인데 모든 부분 하나하나가 정말 '찰지게' 작성되어 있어서 읽을 맛이 난다. 진짜 너무 솔직해서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을 정도다. 그만큼 저자가 자신의 의견에 있어서 확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그 의견에는 학문적인 근거가 모두 뒷받침되어있기 때문에 정말 믿을만하다.  


내가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는가?

다양한 심리학 개념이 등장하지만 이 책이 가장 무게를 두는 개념은 바로 부제에도 드러나듯 슈필라움의 심리학이다. 저자는 공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데, 자신만의 공간이 존재해야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오픈되어 있는 공간에서는 뭔가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다. 계속 남들의 시선(없었다 하더라도)을 의식하게 된다.  온전히 나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고 할까. 이 자리를 빌려 나만의 은밀한 공간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내겐 가장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장소와 순간이 존재한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그 장소에만 있으면 해결될 거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까지 생긴다. 팀원들 한테도 말한다. 아 뭐 그냥 샤워하고 나오면 아이디어 나올 거 같다고.  그렇다. 난 집 화장실에서 샤워할 때 가장 집중이 잘 된다. 내 샤워시간은 고민거리의 양과 난이도에 비례하는데, 마음먹고 샤워를 시작하면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뜨거운 물을 몸에 쏟아붓는다. 아, 아무리 오래 해도 30분은 넘기지 않는다. 물 낭비한다고 돌을 던질까 봐  괜히 찔려서 하는 소리다. 들리는 소리라곤 물 떨어지는 소리, 보이는 건 하얀 화장실 타일... <드래곤볼>에서 등장하는 '시간과 정신의 방' 이 따로 없다. 샤워만 시작하면 화장실 밖의 시간과 안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기분이니 뭐 아주 틀린 비유는 아니다(벌써 30분이 지났다고?).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라는 책의 제목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저자는 그림도 그리는 상당한 능력자인데, 교수를 그만두고 여수로 내려가서 한 섬에 화실을 차렸다. 예술 활동을 위한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나도 돈이 좀 생기면 나만의 공간을 여수의 수많은 섬(350개가 넘는다고 한다)들 중 하나에 마련하고 싶다. 집 안에 있는 화장실 욕조에서 좀 더 욕심을 내 공간의 확장을 만들어내고 싶다고나 할까? 


닮고 싶다. 그의 문체

내용과는 별개로 나도 글을 자주 쓰는데, 저자와 비슷하게 쓰는 것 같아서 동질감이 들었다(감히). 나도 그냥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떠오르는 생각을 가감 없이 솔직 담백하게 묘사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은 내 글쓰기 지침서가 될 거 같다. 때론 과격하기도, 때론 부드럽기도 한 글의 문체엔 질릴 수 없는 맛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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