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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Mar 11. 2021

앤디워홀이 달러를 그린 이유. 앤디 워홀 즐기기 #1

예술가는 사람들이 가질 필요가 없는 것들을 생산하는 사람이다

이 글은 유튜브에서 영상으로도 시청이 가능합니다

영상으로 보기: https://youtu.be/Q0MFB5sitTA





앤디워홀 비기닝 서울 전시가 여의도 더 현대 6층 전시공간 ALT1에서 열린다. 나는 얼마 전에 다녀왔는데, 예상에 못 미치는 조금 아쉬운 전시였다. 어쨌든 전시의 질을 떠나서 앤디 워홀이라는 작가의 작품들은 미학적으로 문제도 많고 의미도 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해석하기란 쉽지 않다. 이것들을 조금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것들 몇 가지를 시리즈로 소개하고자 한다.


01

일상생활의 주제


앤디 워홀 작품의 주제는 대부분이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물건이나 인물들이다. 달러를 캔버스 한가득 그려 넣는가 하면, 캠벨 수프 깡통, 코카콜라 등을 그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마릴린 먼로, 앨비스,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오쩌둥, 체 게바라 등 티비를 켜면 볼 수 있는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것들은 특별한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 또는 색만 바꿔서 여러 번 찍어내져 있다. 

심지어 브릴로 박스라는 작품은 세탁비누인 브릴로 박스와 완전히 똑같은 규격의 나무 상자를 구해서, 거기에 똑같은 디자인을 입혀 전시한 것이다. 관객들은 ‘뭐야 세탁세제 브릴로 박스잖아’라고 처음에 생각하다가 그것을 만져보고 나서야 ‘아, 이것은 실제 브릴로 세제 박스가 아니구나.’하고 알 수 있다. 워홀의 작품들은 실제 캠벨 수프, 코카콜라, 마릴린 먼로, 브릴로 박스와 똑같이 생겼지만 그것은 실제가 아니디. 그래서 사실 쓸 데가 없다. 실제 캠벨 수프, 코카콜라처럼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짜 달러가 아니라서 화폐로써의 가치도 없다. 또한 실존하는 인물들이 아니기에 연기를 하거나 정치를 하게 맡길 수도 없다. 한 마디로 그것들은 쓸 데가 없는 것들이다. 대체 앤디 워홀은 생긴 것은 실제와 똑같지만 기능이 없어서 쓸 데도 없고, 갖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는 그림들을 왜 그렸을까?


02

기능중심의

자본주의시대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물건을 보면 그 기능을 먼저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보면 그 자동차의 마력이 얼마고, 속도와 디자인은 보기에 어떻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노트북을 봐도 그것이 얼마나 속도가 빠르고 발열은 없는지, 화질은 좋은지, 그것을 소유하면 얼마나 다른 사람들 보기에 좋아 보이는지 등의 기능을 따진다. 그 기능들은 왜 따질까? 우리는 그것들을 소유하기 위해 그 값을 지불한다. 그리고 우리는 물건이 내가 낸 돈만큼의 값을 하는지를 따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건이 제 값을 제대로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는 물건을 볼 때 그 물건의 기능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물건에만 적용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에도 이 사람이 제 값을 하는 지를 따진다. 이 사람은 잘생겼는지, 예쁜지, 키가 큰지, 돈은 많이 버는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이 사람이 나에게 이득이 되느냐 안되느냐를 생각하고, 이를 통해 ’ 나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이라는 그 기능을 갖고 있는지로 사람을 판단힌다. 그리고 그 판단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드러나게 된다. 기능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친절함과 호감으로 다가서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차별하고 미워한다. 그것은 타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 자신도 이 사회가 요구하는 제 값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재고 판단한다. 이로 인해 스스로 낙담하고 무너지기도 하고, 때로는 자만하기도 힌디.


03

기능이 없어도

가치를 가지는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개인이나 사회에 이득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존중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충분히 의미가 있는 존재이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기능으로만 판단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앤디 워홀은 이러한 사회상을 꿰뚫어 본 듯하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품이나 인물들을 캔버스로 옮겨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기능들을 상실시켜버린다. 그리고 그 그림들을 아주 비싼 가격에 판매한다. 기능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능이 없더라도 예술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시키는 것이다. 앤디 워홀은 자신의 책인 ‘앤디 워홀의 철학’에서 예술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예술가는 사람들이 가질 필요가 없는,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사람들에게 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을 생산하는 사람이다. “

마치 앤디 워홀은 단순히 기능이 제 값을 하느냐 안 하느냐만으로 물건과 사람을 대하는 1960년대의 사람들에게 ‘기능이 전부가 아니야’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미학자인 아서 단토는 예술을 ‘무언가에 관한 것인 동시에 바로 그러한 이유로 작품의 적절한 감상을 위해 해석이 필요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일상적인 사물은 그것이 예술작품과 똑같이 생겨도 우리는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기능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은 기능으로써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술을 해석하고자 한다. 과연 이것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작가는 이것을 왜 그렸는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게 만든다.


04

물건 바라보듯이 아닌

예술을 바라보듯


우리가 만약 나 자신과 세상을 예술을 대하듯이 바라본다면 어떨까? 단순히 제 값을 하는가 아닌가의 존재가 아닌, 해석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혹시 스스로를 볼 때, 자본주의의 물건 보듯이 똑같이 기능으로서 판단하고 있지는 않는가? 마찬가지로 타인도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가? 그로 인하여 실망하거나 낙담하고, 아니면 남들보다 제 값을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자만하지는 않는가? 앤디 워홀의 작품은 당신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줄 것이다. 기능만이 전부가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예술이고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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