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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Feb 10. 2021

이중섭의 그림 속 아이들은 왜 앞을 보고 있을까?

예술을 공부하는 이유

얼마 전 유튜브 구독자 중 한 명이 이중섭 작가에 대해서도 꼭 이야기를 다뤄달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당황했다. 나는 이중섭에 대해서 공부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작가에 대해서 공부한다고? 그림을 그림으로만 보면 되지 왜 공부를 해야 해?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전시회를 가거나 글을 쓰기 전 꼭 작가의 성장배경과 작품이 그려진 시기를 공부한다. 그러면 작품이 어떤 것을 나타내는지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고, 또 감동이 더 커진다. 

이중섭의 어린이 그림

그래서 이중섭에 대한 논문들을 찾아서 읽어보고, 2016년 mmca에서 열린 『이중섭 백 년의 신화』라는 책을 빌려 이중섭의 그림들을 봤다. 그렇게 그의 작품을 보던 중에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의 그림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그 아이들은 모두 얼굴이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어울려 노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마치 관람자를 향해 있었다. 이중섭의 그림 속 아이들은 왜 앞을 향하고 있을까?




01

이중섭과

아이들 그림


이중섭의 모습

이중섭(1916~1956)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에서 부유한 집안의 2남 1 녀 중 막내로 태어나 일본 유학을 거쳐 국내에서 활동하며 한국의 현대미술에 큰 발자취를 남긴 화가다. 이중섭의 작품은 소, 어린이, 게, 물고 기, 새 등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친근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는 이들을 단순하고 유머와 해학, 따뜻한 분위기로 표현해 감상자들이 편안하게 작품을 즐길 수 있게 해 주고, 이에 대한 감정이입이 쉽기 때문에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중섭의 작품 후기, 특히 은지화에는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의 작품 속 아이들은 혼자서 등장하는 법이 별로 없다. 그들은 몸이 얽혀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들은 발견하기 어렵다. 아이들의 얼굴은 대부분 정면을 향하고 있고, 이러한 모습들은 이중섭 특유의 화법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중섭의 초기 작품들

이중섭이 처음부터 정면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그의 1945년 작품 세 사람에서는 각자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눈을 가린다거나 무르팍에 고개를 파묻는 등 자유로운 시선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40년 대 엽서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옆모습을 가지고 있거나 사선의 시선을 가지는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이중섭 특유의 정면을 향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특유의 정면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50년대에 그려진 것들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40년에서 50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중섭 개인에게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02

이중섭과

가족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난다. 이중섭은 이를 피해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피난을 간다. 힘든 피난 생활이었지만, 그는 1년 동안 제주도에서 가족과의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  이중섭은 51년 부산으로 돌아오지만, 일본인이었던 부인은 상속문제와 생활고로 인해 아이들과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때부터 이중섭은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게 된다. 

이중섭의 편지 삽화

그의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시인 구상은 이중섭이 이 시기에 가족들을 굉장히 그리워하며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한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과 하루빨리 만나 다시 함께 살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종이 살 돈이 없어 자신은 담배 포장지에 그림을 그리더라도 일본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좋은 종이에 그림을 그려 편지를 썼다. 이중섭은 이때부터 아이들과 가족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많이 그린다. 그는 아이들의 모습에 두 아들의 모습을 투영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림에서만이라도 자신과 얼굴을 마주하길 바랬다. 그의 이러한 마음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의 삽화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그림 속 아이들을 보며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웃고 있습니다


"다 같이 사이좋게 건강하게 또 여유롭게 지내기를 바래요 조금만 기다리면 아빠가 우리 가족이 사는 미슈쿠에 갈 테니까... "

"아빠는 매일 열심히 건강하게 그림을 그려요. 조금만 있으면 아빠가 도쿄에 갈게요. 건강하게 아빠를 기다려 주세요."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

이중섭의 그림 속 아이들이 정면을 향하고 있는 것은 그림에서만이라도 아이들과 대면하고 싶은 작가의 무의식이 투영된 결과이다. 나는 이것을 알고 다시 그림들을 접했을 때,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 작품을 그림 작가의 마음이 전해진 것이다.



03

예술을 

공부하는 이유


우리는 작품을 관람할 때 두 가지의 태도를 보인다. 아무런 정보 없이 작품 그 자체와 마주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작가의 삶과 배경을 공부하고 마주하는 사람도 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가장 잘 투영된 것이 꿈과 예술이라고 이야기했다. 어떤 예술은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어서 정보 없이 한눈에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어떤 예술은 예술가의 삶과 배경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작가의 무의식이 투영된 작품이 비로소 이해되고 더욱 크게 공감되는 작품들도 있다. 

작가 이중섭

이중섭에 대한 공부를 하고, 그의 삶을 알게 된 뒤 작품을 접했을 때,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난 것처럼 예술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예술을 더욱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 글은 영상으로도 관람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0MBGP-z5a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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