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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Apr 06. 2021

아리스토텔레스 미학, 예술은 행복의 요소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이 내용은 유튜브에서도 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DUH9Pyyh1B4


예술이 인간의 삶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많은 미학자들이 정의를 내렸다.  그렇다면 학문의 기초를 만든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인간에게 행복하게 살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이라는 책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은 인간만의 탁월함을 갖추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탁월함이라는 것은 어떠한 존재가 그것이게 하는 특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를 들어 동물은 가질 수 없는 인간만의 탁월함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중에 이성적인 체계를 가지고 원리를 알아내서 새롭게 창조하는 능력이 인간만이 가진 탁월함 중에 하나다. 그는 예술이 이 탁월함을 가지고 있고, 관람자로 하여금 인간 삶의 원리를 깨달아 자신의 삶을 창조적으로 생산해냄으로써 행복함을 느끼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시학』이라는 책에서 예술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잠깐만 '시학'은 예술이 아닌 '시'잖아?라고 물을 수 있다. 이 시학의 원래 제목은 그리스 어로 peri poietike이다. 이것은 “기예에 관하여”라는 뜻이다. 창조적인 일들을 당시에는 기예라고 불렀으니,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밝힌 시의 제작 방법이 예술 전반에 대한 제작 방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는 단순히 있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플롯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플롯은 '살면서 일어날 수도 있을법한 인간의 행위를 모방해서 그럴싸한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관람자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겠구나' 하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개연성과 필연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사건과 사건이 어떻게 개연성을 가지고 진행되고, 또 인간의 행동이 필연적으로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보고, 관람자들은 이 이야기가 정말 실제적이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동화되어, 일어날 수도 있을법한 사건을 대신 경험함으로써 대리 만족하게 된다. 직접 그 일을 겪지 않았음에도 감정을 쏟아내거나 정화할 수 있다. 이처럼 좋은 플롯은 모든 관람자가 '아, 나도 저런 일을 겪을 수 있구나' 하고 느끼게 만든다.


앞서 말했든 『시학』이라는 책이 기예 전반에 관한 책이라면, 훌륭한 예술작품은 훌륭한 플롯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해석된다. 좋은 예술작품은 단순히 있었던 일을 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든 나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느끼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이라는 작품에서 우리는 총을 맞는 사람 총을 쏘는 사람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거기에서 나오는 공포와 부조리, 이러한 일들이 언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것을 피카소가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작품으로 리메이크 함으로써 인간 삶 가운데 전쟁이라는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단순히 이러한 일들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전쟁이 있는 지역에서의 전쟁이 멈추기를 바라고, 다시는 이런 비극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마음에 세긴다.

이처럼 예술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인간 삶의 원리를 알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원리를 통해 남은 삶을 이렇게 살 것이다라고 하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 바로 창조적인 생산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바로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조건인 인간의 탁월성 중 이성의 부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예술은 관람자로 하여금 인간 삶의 원리를 알게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지금 이 시대에 내가 겪고 있거나 겪을 수도 있는 인간 또는 사회의 원리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인식함에 따라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기계나 동물과는 다른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한 예술은 행복하게 사는 것의 방법이라 주장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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