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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곤 별다방 Sep 11. 2023

인생을 고치고 싶을 때마다 글을 고쳐 썼다

할머니의 자장가 1. 죽음과 애도 #1

할머니의 자장가

2023년 9월 11일 수정

분야: 소설


목차

1. 죽음과 애도

2. 엄마의 남동생

3. 할머니의 자장가

4. 나의 남동생

5. 엄마의 6·25 전쟁

작가의 말

추천의 글


1. 죽음과 애도


앨리스는 같은 건물 7층의 좁은 직원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식당내부는 길고 좁다. 팬데믹 중이라 투명한 칸막이까지 설치된 식당은 더욱 좁은 모양새다. 식당 내부 오른쪽 앞의 배식판을 가져가려면 식당입구부터 늘어진 줄이 계단 5칸을 더 내려와 있다. 먹고사는 일은 이렇게 중요하다. 줄을 서다 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 휴대폰을 들자마자 어깨너머로 무얼 보는지, 보려 하지 않아도 밝은 불빛에 현혹되어 톡을 하는지 다른 앱을 여는지 훤히 보인다.


다들 얼른 점심을 해결하고 공원을 걷거나 개인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다. 어느덧 앨리스 차례가 다가왔다. 반찬칸으로 4개의 네모난 모양과 밥과 국을 놓을 조금 더 큰 동그라미와 가장 큰 동그라미 모양이 있는 식판을 들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개인위생을 위해 얇고 투명한 비닐장갑을 끼는 일이다.


비닐장갑을 낀 왼손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집어 들어 식판 밑으로 겹쳐둔다. 음식을 덜어주시는 주방아주머니에게 식판을 내밀어 반찬을 하나씩 받는다. 조금만 먹고 싶은 김치반찬을 듬뿍 주실 때 앨리스는 "반만 주세요."라고 말한다. 만두튀김이 맛있어 보이는데 하나만 주실 때는 "만두 한 개만 더 주세요."라고 하면 순순히 담아주신다.


밥을 적당히 담아주시면 마지막으로 옆에 놓인 국그릇을 챙겨 식판에서 가장 큰 오른쪽 동그라미에 올려두고 내가 앉을자리를 찾아간다. 가끔 팩으로 된 음료수도 국그릇 옆에 놓여있는데 앨리스는 꼭 자리에 앉은 다음에야 눈치챈다. 옆 동료가 알려주거나 남들 밥상에는 다 있는 사과모양 음료가 눈에 띄면 다시 가서 받아온다. 직원구내식당이다 보니 얼굴은 모르지만 무슨 일로 마주칠지 모르는 타 부서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다. 때문에 정말 필요한 대화가 아니면 굳이 나누지 않는다.


앨리스가 식사를 하는 중에도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 휴대폰을 보고 여유를 부릴 새도 없다. 식당 본연의 업무인 먹고 마시는 일만 마치면 다시 식판을 들고 자리를 비워주는 게 예의다. 구내식당이지만 아직은 밥과 반찬이 맛있어서 다행이다. 반찬이 별로인 날은 국이 살리고 반대인 날도 있다. 오늘은 반찬이 맛있는 날이다. 식사를 마치면 숟가락과 젓가락을 이용해 반찬을 국그릇에 모두 모아 주방직원의 설거지를 편하게 도와준다. 개수대에 잔반을 덜고 빈 그릇을 올려놓는다. 치우는 주방직원에게 "감사합니다" 인사 한 뒤에 다시 들어왔던 좁은 길로 나가 음수대에서 시원한 물을 받아 한 잔 마신다.


아직도 다닥다닥 붙은 긴 줄 옆을 지나 점심 식사를 막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는 길이었다. 입사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사수와 딱 붙은 자리에서 업무를 익히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요즘이었다. 배가 부르니 휴대폰을 볼 여유가 생겼다. 여동생 로사의 부재중 전화가 떠있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계단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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