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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곤 별다방 Sep 14. 2023

인생을 고치고 싶을 때마다 글을 고쳐 썼다. #2

1. 죽음과 애도 #2

인생을 고치고 싶을 때마다 글을 고쳐 썼다.

1. 죽음과 애도 #2


할머니의 자장가

2023년 9월 14일 수정

분야: 소설


목차

1. 죽음과 애도

2. 할머니의 자장가

3. 엄마의 생일

4. 남동생

5. 남겨진 이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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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과 애도 #2



무슨 일일까. 내가 근무시간임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문자메시지만 보낸 게 아니라 전화를 했다면 무언가 결정을 빨리 내려야 하는 일이었다. 함께 온 동료에게 먼저 2층 사무실로 내려가라고 말한 뒤 앨리스는 여동생 로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점심시간이라 7층 직원식당을 이용하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이 많았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사무실 바로 위층인 3층에서 멈췄다. 휴게실 옆 화장실로 들어가 휴대폰에서 로사 연락처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방금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나온 청소아주머니와 눈인사를 하고 아무도 없는 화장실의 창가에 서서 통화를 했다.


"언니, 카톡 봤어?" 평소와 다르게 웃음기 없는 차분한 목소리이다.

"왜? 아직 못 봤어. 요즘 인수인계받느라고 휴대폰 볼 새가 없어"


"외할머니 돌아가셨대."

"아, 많이 아프셨대?"


"몰라, 엄마는 아빠하고 같이 출발하셨대"

"어딘데?"


"일산이라는 것 같아, 언니는 회사 언제 끝나? 만나서 같이 갈까"

"넌 혼자 갈 거야, 제부랑 같이 갈 거야?"


"그냥 혼자 갈 거야."

"그래, 그럼 나도 혼자 가야겠다. 팀장님한테 물어보고 연락할게."


전화를 끊고 화장실 밖으로 연결된 투명한 유리창을 바라봤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높이 떠있었다. 공원을 산책하기 좋은 화창한 날씨였다. 아직 읽지 못한 휴대폰 메시지함을 천천히 살펴봤다. 부고메시지가 앨리스 폰으로 전달된 건 2022년 5월 26일 목요일 오전 9시 19분이었다. 친정 가족이 모인 단톡방에 엄마가 올린 메시지였지만 무음으로 되어있던 휴대폰에서 앨리스 눈에 제대로 읽힌 건 4시간이나 지나서였다.


"모친 故 정 마리아 님께서 2022년 5월 25일 소천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여동생 로사와 통화를 마치고 부고메시지를 확인한 앨리스는 엄마가 문득 궁금해졌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엄마는 무얼 하고 있을까.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링" 벨 소리만 허공에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이동 중인 걸까 도착해서일까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앨리스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느 때 같았으면 식사를 마친 뒤 고민 없이 바로 커피를 한 잔 들고 공원으로 산책을 갔을 시간이다. 오늘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남은 점심시간 동안 커피를 마실까 양치를 할까 잠깐 고민하는 사이 앨리스의 휴대폰에 엄마의 전화번호가 떴다.


인수인계로 정신없는 사무실 책상 한편에 앉아 통화를 했다. 평소와 다르게 울먹거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앨리스의 목소리도 같이 떨리게 했다. 마치 남처럼 살면서 얼굴 본 일이 손에 꼽을 정도인 외할머니였다. 나에게 정이라곤 별로 없을 것 같았던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엄마와 통화하다가 내 눈물도 쏟아지다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흑흑 알았어 엄마, 이따가 갈게"

"아냐, 너희들은 안 와도 돼."


"엄마가 갔는데 우리도 가야지."

"그래, 너희도 올래? 고마워"


엄마와 예상치 못한 통화를 마친 뒤, 앨리스는 눈물이 번져 더 이상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곧장 화장실로 가서 수돗물을 콸콸 틀었다. 세차게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고 연거푸 눈물을 닦았다. 흐르는 물과 함께 외할머니의 인생도 씻겨나가는 듯했다. 흐르는 눈물로 자꾸만 뿌옇게 변하는 거울 속 앨리스의 얼굴을 보며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을까 떠올렸다.


지금은 칠순이 넘은 엄마가 예순이었을 때였다. 엄마는 환갑잔치를 집에서 조촐하게 열었다. 외할머니와 외삼촌 그리고 이모를 집으로 모셨다. 일산에서 멀리 수원까지 오신 할머니는 한 손을 이마에 얹고 "내가 멀미를 하나보다"라고 말하며 거실에 힘없이 앉아 계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는 축 처진 할머니의 가녀린 어깨를 겨우 잡고 한 발짝식 부축해 방으로 모셔 편히 누워계시게 했다. 가까이에서 외할머니를 본 건 그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앨리스는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었다.


"엄마. 새신랑 하고 같이 외할머니한테 인사 가고 싶은데 언제 갈까?"

앨리스는 결혼한 뒤로 문득 외할머니가 생각날 때면 엄마에게 통화하며 넌지시 물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단호하게 그럴 필요 없다고 하셨다. 앨리스는 첫째를 낳고 문득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엄마, 외할머니한테 손녀 보여드리러 갈까?"

엄마는 "그럼 이번 명절 전에 인사 갈 테니 같이 갈까" 하셨지만 막상 걷지도 못하는 갓난아이와 함께 아기띠를 메고 먼 길을 가는 일이 힘들게만 느껴져 한 해 두 해 미루다 보니 어느새 앨리스에게 둘째가 생겼다. 일곱 살 터울로 생긴 둘째를 낳고도 외할머니에게 인사를 가야겠다는 생각만 뿌옇게 했지 뚜렷하게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둘째가 28개월이 되었을 때 앨리스는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결국 외할머니는 앨리스의 신랑도, 앨리스의 딸과 아들도 한 번 못 보고 돌아가셨다. 한이 될 것까지는 아니지만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나 싶은 마음이 잠시 스쳐갔다. 그래서 앨리스는 엄마와 통화할 때 더 눈물이 왈칵 쏟아졌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인생은 흐르는 물과 함께 비누거품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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