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알바일기

알바 일기 #6 - 초등학교 도시락 배달(2)+에필로그

나무젓가락 양쪽을 뗄 때 나오는 먼지의 양을 처음 본 순간

by 루틴강

이제 학교로 배달을 시작한다. 배달할 곳의 루틴은 정해져 있다. 사장님이 정해준 루틴이었다. 정해준 루틴이 제일 괜찮았다. 첫 초등학교에 가서 도시락 박스 3개를 두고(1층에 1개, 2층에 2개), 옆에 있는 유치원에 가서 벌크 1개를 내려주고 다시 차량에 탑승한다. 벌크는 끌개를 이용해서 이동해야 한다. 첫 학교에 배달을 마치면 5분 거리에 있는 다른 학교로 간다. 유치원에 벌크 2개를 내려주고, 다시 차량에 탑승해 산 중턱에 있는 학교에 가서 도시락 박스 3개(1층 1개, 2층 2개)를 배달한다. 이곳은 도시락이었지만 수량이 많아 무거웠다. 그리고 다음 학교로 향한다. 벌크 3개를 배달(1층에 1개, 2층에 2개)한다. 이 학교로 갈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배달할 때도 힘들었지만 수거할 때도 쉽지 않았다. 2층에 있는 벌크 2개를 한 번에 가져오기가 어려우니 두 번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마지막 주에는 요령이 생겨서 들지 않고 2개 를 동시에 끌고 내려오기도 했다. 마지막은 도시락 박스 2개였는데, 이건 가볍기도 했고 바로 앞까지 주차할 수 있어서 나름 편했다. 이렇게 하면 초등학교와 유치원에는 배달을 마쳤다. 여기까지 배달을 마치면 대략 12시 즈음이 된다. 빠를 때는 11시 45분이었는데, 이런 날은 며칠 없었다. 늦은 날은 12시 20분 정도가 되었다. 마지막 주에는 학원에 납품할 벌크 한 개가 추가되었기 때문에 12시 언저리가 되어서야 끝났다.


다음 배송지는 대학교 내 매점이었다. 여기까지 오면 체력의 절반 이상을 쓴 상태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많이 느꼈다. 점심 도시락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12시 이전에 배달해야 됐다. 도시락을 최대한 빠르게 배달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초행길일 때는 헤매기도 하고, 길이 막히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도시락 준비가 늦어서 출발을 시간이 밀렸던 것이 가장 빈번했다. 대학교 입구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차량 속도를 높였다. 교내 속도를 준수해야 했지만 시간을 맞추려면 지키기 어려웠다. 대학교는 평균 5곳 정도 배달을 했는데, 처음 배달하는 곳과 마지막 배달하는 곳의 거리가 멀어서 차로 5분 정도를 가야 했다. 더군다나 마지막 배달 지역은 산 꼭대기에 있는 곳이어서 서둘러 갈 수도 없었다. 초반에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내비를 찍고 다녔다. 하지만 내비가 알려주는 곳은 차량을 세우기도 어렵고, 내 출입증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도 아니었다. 내비로 시간을 줄일 수 없게 되자 길을 찾기 위해 거칠게 운전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어려웠던 점을 꼽으라고 하면 나올 때 차량을 되돌리는 것이었다. 택배 차량과 배달 오토바이 등이 입구에 즐비할 때면 차량을 돌리기 어려워서 후진으로 나오기도 했다. 때로는 차를 돌리다가 조수석 후방 측을 긁은 적도 더러 있었다. 맨 마지막까지 배달을 마치고 나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마침내 짧은 점심시간이 찾아온다.


점심은 대게 마지막 배송지 주변에서 먹게 된다. 출발하기 전에 챙겨 온 도시락을 먹었다. 항상 식어있는 도시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기진 속을 달래기에는 충분했다. 대체로 10분이 안 되어서 도시락을 다 먹었다. 처음에는 허겁지겁 먹곤 했다. 아침부터 활동량이 많아서 그런지 11시만 되면 배가 고팠다. 일이 적응된 이후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꼭 아침을 먹고 출근했다. 점심은 대부분 차 안에서 먹었다(딱 한번 대학교 내 야외 테이블에서 먹었다. 하지만 너무 추워서 다시 차에서 먹게 됐다.). 접이식 박스를 접어서 테이블로 만들고 그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았다. 이것도 적응이 된 이후에나 생각했던 방식이었다. 그 전에는 그냥 한 손에 들고 먹었다. 차에서 밥을 먹으면서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면 나무젓가락의 양쪽을 떼어는 것이었다. 이때가 아니었으면 나무젓가락을 떼어낼 때 먼지가 이 정도로 많이 나오는 줄 평생 몰랐을 것이다. 평소에도 나무젓가락을 사용했지만 새삼 신기했다. 차 안에서 밥을 먹으면서 배송업 종사자 분들은 차에서 밥을 드실 때 어떤 심정일까 생각하곤 했다. 물론, 알바 후반기로 이런 생각은 하지 않고 점심을 빨리 먹고 수거하러 갈 생각만 했다. 당시에는 모르고 이후에 의약품 배송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송업에 계신 분들은 점심을 잘 챙겨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이렇게 정차해놓고 나름 휴식을 취하며 밥을 먹었지만 그분들은 점심을 거르거나 가벼운 빵 같은 것으로 끼니를 해결하셨다. 나무젓가락을 떼어내면서 느꼈던 씁쓸함이 배송업계에서 종사하시는 분들의 결식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밥을 다 먹으면 대략 12시 40분 정도가 됐다. 시간이 되면 바로 수거하러 갔다. 사장님은 수거하러 갈 때는 1시 이후에 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일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그냥 갔다. 배달했던 역순으로 도시락 박스와 벌크를 수거했다. 수거하는 것은 배달하는 것보다 덜 힘들었다. 음식물이 제외된 무게여서 아주 약간 가벼워졌다. 하지만 수거할 때는 한 곳이 더 추가되어서 그곳까지 다녀와야 했다. 마지막 장소까지 들렀다가 가게로 돌아가면 빠를 때는 1시 50분 즈음이었고, 늦을 때는 2시 30분 정도가 되었다. 평균 2시 즈음에는 가게에 도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착하면 쪽문 앞이나 교회 쪽에 차를 세워두고 짐을 내렸다. 보통 15분 정도면 짐을 다 내렸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차를 옮겼다. 가장 안쪽에 주차해야 됐기 때문에 2층과 3층에 계신 차주분들께 말씀드려 차를 뺀 뒤에 차를 넣었다. 차 자체도 큰데 주차공간의 폭이 넓지는 않아서 조심조심 주차했다. 골목길 주변에 외제차들이 많았기 때문에 긁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주차를 마치고 나면 모든 일이 끝났다. 지하로 내려가 사장님께 인사하고 퇴근하면 마음의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을 했던 3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집까지 한 걸음에 달려갔다. 얼른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일한 시간은 대략 4시간 30분에서 5시간 내였지만 몸은 8시간 이상 일한 것처럼 피곤했다. 마지막 주에는 집에 도착해서 2시간 정도는 잠을 청했다. 잠을 안 자면 체력이 돌아오지 않아서 다른 활동을 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어했고, 일을 빨리 끝내고 집에 오고 싶어 하면서 3주를 지냈다. 마지막 날 일을 마치고 다음날 통장에 100만 원 조금 넘는 돈이 들어왔다. 뿌듯함보다는 이 일에 질렸던 기억이 난다. 성취와 보람까지는 아니어도 고생한 나에게 대견하단 생각 정도는 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일 구할 때 조금 더 고민해보고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에필로그]


아직도 이 일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기억밖에 안 난다. 몸도 힘들었지만 마음도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이 일을 하면서 나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일을 하고 있을 때는 그 이유를 몰라서, 정말 이유 없이 화가 나곤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화가 많고 예의가 없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지인들을 만나서 요즘 이런 일을 하는데 왜 이렇게까지 힘든지 잘 모르겠다고 토로하고 다녔다. 누군가는 육체노동 강도가 심해서 그런 것일 수 있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타인에게서 받는 모멸감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시선에서 오는 초라함'이라고 나 스스로 정리했다. 1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나가는 행인들의 시선에서 느꼈던 초라함도 있었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학교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초라함, 사장님과의 대화에서 느꼈던 초라함, 운전을 하면서 느꼈던 초라함 같은 것이 있었다.


배달할 학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람은 학교 보안관 분들이다. 대게 50대 이상의 남성이었다. 대부분 별말씀 없이 출입문을 열어주셨다. 하지만 때로 언성을 높여 차를 세우시기도 했다. 온도를 재고 가야 한다는 이유였다. 중요한 이유였다고 생각하지만 소리 지를 건 아닌데 싶었다. 그리고 또 다른 분은 다 드신 도시락을 가져가 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셨다. 물론 가져간 도시락은 내가 정리하거나 설거지를 하지는 않았지만, 어느샌가 당연하게 내 차에 싣는 모습을 볼 때면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도시락 수거해주는 사람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학교 내에서 버릴 수 있는데 나한테 왜 부탁하지? 생각했다. 그분은 악의는 없었을 테지만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대학교에서는 경비 업무를 하시는 분들과 부딪혔다. 지정된 주차구역에 주차해놓고 배달하라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지정된 구역에서 배달하러 가는 건물까지 거리가 꽤 멀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대학교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 한 곳이라도 빨리 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 세우지 말라며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니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곤 했다. 내 사정도 모르면서 왜 저렇게 뭐라고만 하는 거지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르신들의 말이 다 맞는데 그때는 그렇게 억울했다.


배달하는 도시락이 점심식사 대용이었기 때문에 시간적인 문제가 항상 있었다. 그분들께는 점심 삭사였고, 안 그래도 짧은 점심시간이기 때문에 도시락이 빨리 도착해야 했다. 늦었을 때는 왜 이렇게 늦었냐며 지탄을 받기도 했다. 가끔은 왜 이렇게 늦었냐며 나에게 짜증 섞인 말을 내뱉는 분도 계셨다. 내가 늦고 싶어서 늦은 것은 아닌데 내 사정은 역시 고려 대상이 아니란 느낌을 받곤 했다. 그리고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사장님의 전화였다. 배달하는 도중에 사장님한테 전화가 오기도 했다. 대게 사장님의 전화는 내 위치가 어디인지 묻는 전화였다. 도시락이 아직 안 왔다며 컴플레인이 들어왔다고 했다. 결국 내 위치가 어디인지 물어보는 전화였고, 그럴 때면 항상 나는 왜 늦었는지 설명해야 됐다. 초반에는 길을 잘못 들어서 늦어졌던 것이 있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도시락 준비가 늦어졌기 때문에 배달도 늦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은 내 상황을 이해하기보다 컴플레인이 들어온 곳에 얼른 배달해주기를 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운전했던 차량은 그랜드 스타렉스였다. 차량의 뒷 트렁크 문이 고장 나서 반만 열렸다. 물건을 싣고 내릴 때마다 허리와 등으로 트렁크 문을 지탱해야 했다. 옆문이 없는 차량이었기 때문에 항상 뒷 쪽 트렁크로 물건을 빼야 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물건 뺄 때 큰 차이가 있다. 뒤쪽으로 가서 깊이 있는 물건을 꺼낼 때 항상 허리를 숙여서 들어가야 했다. 당연히 허리에 무리가 가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거기에 1-20kg의 무게가 더해져 허리에 받는 힘의 강도가 더 높아졌다. 만약 옆쪽에 문이 있었으면 정리할 때 조금 더 수월했을 것이다. 다른 배달 기사의 차량은 옆문이 열리는 것을 보며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 내 차에 없는 옆문이 부러웠다.


가장 잊지 못할 장면은 주차할 때의 일화였다. 작은 사거리 교차로에서 일방통행을 역주행해야 가게 주차장이 나온다. 통행량이 많은 곳은 아니었지만 이따금씩 차량들이 통행하는 곳이었다. 여느 날처럼 모든 업무를 마치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러 가고 있었다. 쪽문에서 후진으로 사거리 교차로로 진입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려고 하는 차가 보였다. 비상등과 손짓으로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며 차를 돌리고 있었다. 차를 돌린 후 옆쪽으로 비켜서 전면에 있는 차에게 지나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하지만 그 차의 운전자는 바로 지나가지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조금 이상했다. 창문을 내리더니 무척 격앙된 목소리로 '아저씨 여기 일방통행인데 그렇게 앞에서 차 돌리고 길 막고 있으면 어떡해요.'라고 소리쳤다. 순간 너무 황당하고 억울해서 말문이 막혔다. '가게 주차장을 가려면 이렇게 가야 하는데 날더러 뭘 어떡하라는 거냐'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냥 그 사람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지나갔다. 감정이 요동쳤다. 왜 나에게 저렇게까지 말하는 거지 싶었다. 주차를 하고 나서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집에 가서도 똑같았다. 그날 하루가 다 지날 때까지 감정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었던 최악의 하루였다.


내가 느꼈던 초라함은 결국, 이곳에서 나를 고려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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