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알바일기

알바 일기 #6 - 초등학교 도시락 배달(1)

출근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나는 초라함을 느꼈다.

by 루틴강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정해진 일과와 반복되는 생활패턴에서 벗어나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고 싶었다. 군 적금을 깨기 전에 어느 정도 수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동시에 곧 있으면 적금으로 생활할 수 있으니 잠깐 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구직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해볼 만한 일거리가 있는지 찾았다. 몇몇 아르바이트가 있었고, 고민하다 그중 하나를 선택했다. 집 근처에서 하는 일이었고, 회사 차량으로 혼자 배달하는 일이었다. 당시 코로나19가 유행 중이었기 때문에 비대면 일자리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하루 5시간만 일하면 되었고 일급 7만 원이어서 시급도 1만 원이 넘었다. 하는 일도 방과 후 초등학교에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이어서 나름 의미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밤늦게 간단한 소개를 적어서 문자로 지원했다. 연락은 금방 왔다. 밤 10시 즈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며칠 뒤로 면접 날짜를 잡았다. 그렇게 전역 후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면접을 보러 간 시각은 해가 진 저녁이었다. 문자로 받은 주소로 갔더니 일반적인 동네였다. 크다고 보기도 어렵고 작다고 하기도 애매한 교회가 있었고, 편의점이 있었다. 아이스크림 할인 매장도 있었고, 시장 입구도 있었다. 작은 교차로 사거리에 인테리어 시공업체도 있었다. 작은 부동산 업체도 있었고,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작은 미용실도 있었다. 내가 일할 곳의 간판도 보였다. 하지만 내가 일할 곳의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해서 도착했다고 말하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사장님의 목소리는 무척 다급했다. 배달이 밀려서 같이 배달하면서 면접을 보자고 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단 같이 가자고 해서 나도 모르게 차에 탔다. 속으로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생각했다. 일단 차량에 탔고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봤다. 당시 코로나19가 다시 유행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도시락 업체 근처 호텔에 격리 생활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곳에 도시락을 납품해야 하는 상황인데, 도시락이 늦게 만들어져서 얼른 가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차량 내부에서 내 소개를 하고, 앞으로 해야 될 일에 대해 들었다.


해야 할 일은 비교적 간단했다. 당시 방학 시즌이었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배달할 곳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6곳, 유치원 3곳, 대학교 내 매점 5곳 정도였다. 10시에 출근해서 3시까지 일하게 되며, 일급은 7만 원이고, 평일 5일 출근하는 조건이었다. 아침 9시 30분 즈음 나와서 차량에 도시락을 싣고 학교와 유치원, 대학교를 돌아다니며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이었다. 면접을 볼 때는 몰랐지만 도시락 수량이 꽤 많았다. 한 곳에 도시락 2-30개 정도였고, 박스로는 2-3개 분량이었다. 거기에 도시락으로 먹지 않는 곳은 식판과 철제 국통과 밥통에 담아서 배달해야 했다. 이것을 벌크라고 불렀는데, 벌크는 한 박스당 무게가 20kg이 넘었다. 벌크 수량은 대략 박스 8개 정도가 됐다. 스타렉스 그랜드를 개조한 차량에 박스 수십 개를 넣어서 배달을 하는 일이었다. 점심시간 전에 학교에 도시락과 벌크를 배달하고, 배달했던 역순으로 도시락과 벌크를 수거해서 가게로 오면 됐다. 가게에 도착해 박스들을 다시 정렬해서 모아두면 일은 끝났다. 그리고 차량을 주차해놓고 퇴근하면 끝이다. 첫 출근 날짜는 1월 4일이었다. 설 명절이 끝나는 날짜에 맞춰 일을 시작했다. 대략 이런 과정의 일이었고 그렇게 3주 동안 방과 후 학교에 도시락을 납품하는 배달 일을 하게 됐다.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9시 30분 즈음 가게 앞에 도착한다. 도착하면 내가 타고 다닐 차량을 꺼내야 했다. 내 차는 가장 안 쪽에 주차되어 있었다. 내 차를 빼려면 앞에 세워진 차량 두 개가 비켜줘야 하는데, 이 차량들은 2층과 3층에서 일하는 분들의 차량이다. 그래서 도착하면 2층과 3층에 계신 분들께 차량을 빼 달라고 전하를 하거나 직접 찾아가서 말씀드렸다. 두 곳 모두 옷을 수선하고 납품하는 곳 같았다. 두 곳 모두 친절하게 차량을 빼주셨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매일매일 하니까 너무 번거롭게 느껴졌다. 아무튼, 주차장에서 차량을 뺀 다음 좌회전을 해서 도시락 가게의 쪽문 쪽에 주차를 해둔다. 도시락 가게는 지하에 있었다. 쪽문 쪽에 주차자리가 있으면 정말 다행이었고, 없었을 때는 교회 주차장, 혹은 편의점 옆쪽에 주차를 해뒀다. 세 구역 모두 주차하기 쉽지 않았는데, 일반 주택가였기 때문에 도로 폭이 좁았기 때문이다. 가장 베스트는 쪽문에서 올라오면 바로 뒷 트렁크가 있는 곳인데, 이곳에 주차하기가 여간 어려웠다. 쪽문 쪽에는 미용실과 부동산집이 있어 문 앞을 가릴 수 없었고, 하필 차량도 커서 양해를 구하거나 얼른 물건을 싣고 나와야 했다. 교회 쪽은 쪽문에서 거리가 멀어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마음 편하게 세워둘 수 있는 곳이라 종종 애용했다.


그다음은 쪽문으로 내려가 물건을 꺼내오면 된다. 다만 이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단 쪽문이 말 그대로 쪽문이었다. 공간 폭이 내 어깨에서 5cm 정도 넓이여서 매우 협소했고, 계단 자체도 20개 내외였지만, 계단 수가 적은 만큼 계단 하나의 높이가 높았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쪽문이었다. 쪽문으로 내려가면 내가 배달해야 할 도시락과 벌크가 3중으로 쌓여있었다. 가장 먼저 차에 실을 것은 벌크였다. 벌크 4개를 지상으로 가져다 옮기면 10-15분 정도가 걸렸다. 20kg의 무게도 쉽지 않았지만 좁은 쪽문으로 그것들을 옮기는 게 만만치 않았다. 더욱이 지하 공간도 넓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시락을 준비하는 분들과 다른 배달기사분들이 함께 왔다 갔다 하면 정말 아등바등 PB 박스를 옮겨야 했다. 그렇게 벌크 네 박스를 옮기면 잠시 차에서 쉬었다. 그 사이 도시락 박스가 준비되면 그것들을 마저 옮겼다. 도시락 박스는 벌크보다는 무겁지 않았다. 3개 박스를 한 번에 들 수 있는 정도였는데, 대략 무게는 10kg 내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반에는 도시락과 벌크 준비가 늦어서 같이 포장하곤 했다. 지하 공간이 좁아서 다른 배달기사 분 박스가 먼저 나오면 그것들을 옮겨주기도 했다. 오전 3-40분은 도시락과 벌크를 차량에 싣는 작업을 했다.


이르면 10시 15분, 늦으면 10시 40분 정도면 물건을 다 싣고 출발할 준비가 되었다. 출발하기 전에는 내가 먹을 도시락 한 개와 물 한 병을 챙겨서 나왔다. 도시락은 배달이 끝나고 수거하기 전에 먹을 수 있었다. 초반에는 물 한 통으로 버텼지만 나중에는 출발하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서 마실 것을 샀다. 배달 출발하기 전, 이때가 유일하게 어딘가에 들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5분 남짓 정도가 다였다. 당시에는 흡연을 했는데, 벌크를 다 실었을 때와 출발하기 전에 담배를 피우곤 했다. 벌크만 옮겨도 녹초가 되었기 때문에 축 처진 상태로 골목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럴 때면 항상 출근하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요구르트를 판매하시는 분이 근처에 계셨고, 미용실과 부동산 집도 문을 열며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장 입구 쪽 가게를 여시는 분들도 계셨고, 지나가는 차량들도 있었다. 지친 얼굴로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어김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쳐다보았는지 아니면 그냥 지나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초라함을 느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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