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게 구직자들이 그렇듯 나도 지난 몇 달 동안 아르바이트와 구직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내가 지원하고 있는 분야는 연구소였다. 막연하게 연구 활동을 하는 것보다 연구소에 들어가서 몇 개월이라도 연구소가 어떻게 운영되고, 연구 활동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우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곳의 연구소에 지원했고, 두 곳 모두 면접까지는 볼 수 있었다. 이 글은 최근에 보았던 연구소 면접에 대한 후기다.
서류 합격 발표 날짜에 맞춰 연구소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합격자 발표를 하기로 했던 시간보다 한참 전부터 혹시 올라왔나 궁금해서 계속 확인했다. 오후 5시에 올라온다고 공지가 되어 있었는데, 그 이후에도 올라오지 않았다.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사정이 있어서 늦게 올라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기다려도 올라오지 않길래 도서관에서 학교 수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 뒤에 집에 도착해서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부재중 전화가 8통이나 와있었다. 차를 놓고 외출했었기 때문에 주차문제로 전화를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며칠 전에 주차 문제로 실랑이했던 게 생각나서 아차 싶었다. 그리고 문자를 확인했다. 주차문제가 아니라 연구소에서 온 문자였다. '서류 전형에 합격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면접 일정 조율하려고 연락드렸는데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면접 일정은 저희가 정했습니다. 과제에 대한 설명도 문자로 보내드렸으니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일할 때 쓰려고 만들었던 번호인데, 하필 발표 당일에는 집에 두고 나왔던 것이다. 아무튼, 서류전형에 합격했다. 그리고 10분 내외로 발표할 과제를 부여받았다. 딱 봐도 쉽지 않은 주제의 과제였다.
전 날 밤 발표할 PPT 자료를 보냈다. 면접 당일이 되었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연구소 리플릿과 자료집을 보면서 기다렸다. 면접 시간이 되었다. 2층 면접 장으로 올라갔다. 다섯 명의 면접관이 앉아있었다. 누가 봐도 내 자리인 곳으로 갔다. 가방을 내려놓고 발표 준비를 했다. 면접은 총 30분 정도로 진행되었다. 준비한 과제 발표에 10분, 과제와 이력서에 대한 질의응답 20분이었다.
격식을 차린 듯 안 차린 듯 애매한 분위기였다. 발표를 하는 내내 긴장되었다. 내가 제대로 말하고 있는 것인지 속으로 생각했다. 준비했던 내용에서 생략되고 있는 내용이 많다고 느꼈다. PPT 한 페이지에 5줄을 말하려고 했었다면, 2줄 반 정도만 말했다. 발표할 주제에 자신이 없었다. 내가 준비한 내용이지만, 나 스스로도 아직 소화가 덜 된 내용이었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와 한석률의 발표 장면에서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한 장그래가 발표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마지막 슬라이드까지 발표를 마쳤다.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이미 합격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속으로 망했구나 생각하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질의응답을 할 자리로 갔다.
자리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제 어떡하지? 그냥 집에 갈까? 생각했다. 정신을 부여잡고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면접관이 하는 질문이 내 말문을 더욱더 막았다.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당연히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말씀드리겠다고 말했지만 면접을 마칠 때까지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다. 과제에 대한 질의응답은 어떠한 성과 없이 끝났다. 이력서에 담긴 내용으로 질문을 받았다. 이때는 내가 해온 활동에 대한 대답을 하면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대체로 내가 할 수 있는 답변을 하며 질의응답을 가졌다. 하지만 앞서 했던 과제 질의응답 때문에 평소보다 긴장한 상태였다.
한 면접관이 플랫폼 노동에 대한 질문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제도적 보호 방안을 대답했다. 그러나 그 면접관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말했던 답변과 다른 말을 하며 '이런 내용으로 말씀하신 거죠?' 다시 질문했다. 나는 그 말이 아니라고 하며 다시 한참 설명했다. 나는 열의를 담아 답변했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면접관들의 반응을 보아 약간 흥분하며 말했던 것 같다. 아무튼, 내가 답변을 마치자 질문했던 면접관은 내가 말했던 방안보다 '조금 더 새로운 방안을 기대했는데 그런 것은 없나 보군요'라고 말했다. 플랫폼 노동과 관련된 질문은 이것으로 끝났다. 다만 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이 찜찜한 기분은 뭘까? 기껏 열심히 답변을 했는데 별로라고 평가하는 건가? 속으로 생각했다.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다른 면접관은 방금 전 면접관과 내가 말했던 것을 두고 '논박'이라고 표현하며 다른 질문을 했다. 연구소에 지원한 동기와 연구와 관련한 관심사 등의 질문과 답변을 했다.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연구소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는지 질문을 받았다. 더 없다고 말한 뒤 면접이 끝났다.
면접이 끝나고 난 뒤에 정말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나는 왜 기분이 나빴을까?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나의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일까? 내 의견이 평가받았기 때문일까? 내 의견을 평가받는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평가받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듯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갖고 집으로 갔다. 괜히 억울하고 분했다. 활동가로서 갖고 있는 고민과 생각이 연구자들한테 깨진 기분이 들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은 당시 면접 과정을 평가해보며 좋은 점도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알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다. 마음을 달래려고 그날 밤은 고기를 먹고 맛있는 맥주를 먹으며 기분을 풀었던 것 같다.
면접은 자체는 찝찝함을 남겼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과제를 통해서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귀찮아서 실천하고 있지 않았던 주제에 대해 공부했다.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주제 자체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것인데, 다시 생각해도 대중적이진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내용이 조금 더 구체적이어야 할 것 같다. 면접 자체도 좋은 경험이 되었다. 여자 친구가 말하길 면접 자리에서 면접관과 논박을 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대부분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고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나도 고개 숙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는 이곳에 정말로 취업하고 싶었던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 연구소에 지원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면접이 끝난 뒤에야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았다. 나는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채용공고가 올라왔고, 내 나름 하고 싶었던 연구를 지원서에 썼고, 또다시 그것을 과제로 활용했다. 그러고 나서 면접관들에 대한 평가를 했다. 이게 무슨 심보인가. 나는 처음부터 그 연구소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막연하게 배운 것 하나는 연구자와 활동가가 사안을 바라볼 때의 차이점이었다. 한 면접관이 했던 '제시한 해결방안이 이뤄진다면 역순으로 문제로 제기한 것이 해결되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에 나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어떠한 논리구조를 만들 때 이렇게 생각해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연구소 면접은 알바도 아니었고, 일을 해본 것도 아니었지만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수많은 구직자와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내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면접을 보고 나와서 느끼는 자괴감과 자존감 하락, 정신적으로 지치고 힘든 이 과정을 수십 번 이상을 했을 누군가를 생각했다. 어떠한 위로가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