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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틴강 Aug 17. 2023

아쉬운 마음과 그만하고 싶은 마음

8월 17일 목요일, 정리되지 않은 마음의 정리

73기 경찰간부 시험이 끝나고 곧바로 글을 쓰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미련이 남는 마음이 있어서일까. 고대하던 시험에서 낙방한 마음이 회복되지 않아서일까. 글의 주제만 생각해 둔 상태로 2주가 흘렀다. 그리고 이틀 뒤에 순경 2차 시험을 앞둔 상태다. 


경찰간부 시험을 끝난 직후 나는 떨어졌음을 직감했다. 그날을 돌이켜 보면 나는 무척이나 긴장을 했다. 시험 전부터 스트레스가 심했다. 시험 당일 1교시가 끝나고 나는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그리고 2교시에는 경찰학과 범죄학에서 멘털이 나갔다. 겨우겨우 마음을 다잡고 문제를 풀었지만 범죄학에서 모르는 문제가 10문제 이상이 나와버리니 흔들리는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릴 것만 같았다. 무튼 나는 끝난 뒤 나를 데리러 온 여자친구에게 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떨어졌다. 점수도 컷에서 20점 정도 멀리 있었다. 점수만 놓고 보아도 아쉬울 수 없는 점수였다. 한두 문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했다. 집에서 채점을 했고, 이틀 정도 쉬었다. 그리고 학원에 가서 해설강의도 찾아서 보고, 문제도 다시 풀어보았다. 헌법과 형사법에서는 부족한 부분을 틀렸다. 범죄학에서도 몰랐던 문제와 실수했던 곳에서 틀렸다. 경찰학 점수가 평소보다 더 안 좋게 나왔는데, 아쉬움이 남는 문제가 많았다. 실수하지 않았으면 또는 진작에 외워뒀으면 맞출 수 있는 문제가 보였다. 시험장 밖에서 보이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냐마는 아쉬움이 남았다. 


며칠은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들었고, 공부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냥 평소대로 학원에 갔고, 앉아서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했다. 아직 순경 2차 시험이 남았기 때문에 그것에 집중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쉽게 마음의 고요가 찾아오지는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자조 섞인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왜 평소보다 성적이 안 나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시험 당일 극도로 긴장한 이유도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이유는 체력의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4월 횡문근융회증을 걸리고 입원한 후로 계속해서 체력의 부족을 느꼈다. 운동을 할 때의 체력뿐만 아니라 공부할 체력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물론 체력의 부족은 횡문근융해증만의 이유는 아닐 것이다. 나는 기초 체력이 약하다. 그런데 그것을 간과했고, 시험이 끝난 뒤에 절실히 체감했다. 내가 생각할 때 공부할 체력은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유형들을 계속해서 풀고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과목별로 성적을 일정정도 올린 후부터는 이 정도면 되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같이 공부했던 친구 중 합격한 친구는 그 체력이 좋았다. 그 친구가 새로운 것에 더 몰두하고 시간을 쏟을 때, 나는 거기까지는 못 하겠다고 스스로 선을 그었다. 그리고 체력이 부족함이 여러 유형의 문제를 접하지 못하게 했고, 그것이 당일날 긴장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시험 문제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양한 문제를 풀어본 사람과 어느 정도만 풀어본 사람은 긴장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많이 풀었다고 생각했지만 나 스스로가 긴장을 덜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체력의 부족과 다양한 문제를 더 풀지 못한 노력이 시험 결과의 전부를 대변하지는 않겠지만 근소한 차이를 만들었다고 느낀다.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시험이 끝나고 한 친구는 순경시험에 집중하고, 순경시험에서 합격하면 다시 간부시험을 도전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학원을 옮기고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다시 공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둘 사이에서 고민만 많았다. 몸은 학원에 있지만 마음은 내년 간부 시험에 있었다. 하루는 나의 약점을 알았으니 다음 시험에 도전해서 합격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보냈다. 그리고 다음 하루는 이 힘든 시간과 과정을 다시 버티며 공부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고,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다는 회의감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이 두 마음이 하루마다 교차하면서 일주일을 보냈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내년에 한 번 더 시험을 보는 것도 순경 2차 시험을 마지막으로 그만두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무엇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헌법, 형사법, 경찰학 모의고사 책을 샀다. 그리고 하루에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풀고, 고치고, 암기를 반복했다. 의욕도 없고 의지도 없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했다. 공부하기 싫은 마음이 많이 들곤 했다. 


동시에 매일매일 운동을 하는 루틴을 시작했다. 여자친구가 순경시험에 합격하려면 체력시험도 잘 봐야 하니 연습하자고 했다. 나는 의욕을 보이지 않았지만 운동이라도 해야 시험까지 남은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 학원 5교시가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간다. 그리고 여자친구를 만나 하천에서 달리기를 했다. 첫날은 500미터도 다 뛰지 못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첫날에는 25개를 했다. 그리고 컨디션이 좋으면 팔 굽혀 펴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더니 기록이 좋아졌다. 2주 넘게 반복하니 1킬로미터는 뛸 수 있게 됐다. 아직 점수대는 형편없지만 조금씩 늘고 있다. 윗몸일으키기도 35개까지 할 수 있게 됐다. 마찬가지로 점수대는 형편없다. 그래도 늘고 있다는 것이 보이니 기분이 좋았다.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공부할 때는 공부량을 최대로 했으니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2주 정도 운동을 계속하면서 체력도 좋아졌다. 과연 좋아진 체력을 활용할 기회가 있을지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냥 생각 없이 하고 있다. 나는 요새 무념무상인 상태로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있다. 이것이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좌절을 맛보게 할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지속하고 있다. 


순경 시험이 끝나면 한 달을 쉴 생각이다. 쉬면서 내년에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보려고 한다. 최근 들어서는 간부 시험 준비는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치기도 했고 아쉬운 마음만으로 다시 1년을 공부에 매진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순경시험의 결과에 따라서도 앞으로 계획도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다. 최근 학원 시험에서는 3과목 합쳐서 평균 4개 정도 틀렸다. 이게 내 진짜 실력인지 아니면 그냥 학원 문제가 익숙해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을 다 잘 모르는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간부 시험이 끝나고 다짐한 것이 있다. 나는 기본 체력이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예전에 일할 때에도 주변에서 나에게 체력이 약하다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일할 때에는 체력이 부족하면 하루이틀 쉬거나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겨줄 수 있었기 때문에 큰 타격이 없었다. 그런데 공부는 내가 직접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체력이 부족하면 그만큼 더 발전할 수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체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또 무엇인가 도전하고 시도해 보며 살아갈 텐데 그때는 체력의 부족함이 내 발목을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매일매일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운동을 고민하다가 뒷산에 오르기로 했다. 하체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 숨이 차고 강도가 있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에 오르거나 달리기를 하는 것을 실천하려고 한다.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으니 단거리 마라톤도 해보려고 한다. 무슨 운동이든 하나는 꼭 실천하려고 한다. 이 실천은 10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집착이 생길 것 같다. 


내일모레 시험이 끝나보아야 이 수험생활이 끝일지 아니면 연장이 될지 알 수 있다. 순경시험에 합격하면 면접까지 잘 준비해서 합격하고 싶다. 최종합격이 되면 입교를 해서 순경을 할지 아니면 입교유예를 할지 그때 생각해보려고 한다. 나는 경찰이 되고 싶었던 것인데, 왜 간부시험에 낙방했다고 이렇게까지 낙심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순경이 되는 것만 해도 무척이나 감사한 것인데 그 감사함을 잠시 잊어버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순경시험도 떨어지면 기약 없이 쉴 생각이다. 어쩌면 이 정도의 수험생활,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공부했던 이 시기를 마무리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체력의 중요함을 깨달았다는 것 자체도 많은 배움이었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하면서 좋은 점이라고 느낀 것은 나를 조금 더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만 해도 경찰수험생활로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요새는 여기서 마무리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이 시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부족했다고 평가했던 체력을 키우고 암기도 꾸준히 해서 다음 도전을 기약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되었든 이틀 뒤 시험에서 나의 뱁새로써 지내온 경찰 수험생활이 한 차례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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