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한달살기(1)/프라하로 떠나기 전날

여행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by 호히부부

[호히부부]



여행을 떠나기 전날이다.

소풍 가기 전날 밤, 과자가 가득 든 가방을 바라보며

다음 날 아침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처럼

지금의 이 잔잔한 긴장과 미묘한 설렘은
그동안 기다리고 상상해온 시간만큼
천천히 가슴으로 스며든다.


20여 년 전, 두 번의 세계여행 중에
체코 프라하를 스쳐 지나가듯 다녀온 적이 있다.

지나가버린 시간은 왜 늘 그렇게 남는 걸까.
세월이 갈수록, 아쉬움으로 남아 있던 도시.

프라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도시를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한 달을 살아보기로 했다.

(어쩌면 우리가 다녀온 여행지들이 모두 조금씩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가 프라하를 선택한 데에는

사실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럽에는 매력적인 도시가 많지만,
한 달을 머물기에는 비용도, 거리도, 시간도 쉽지 않았다.

영국이나 프랑스, 스위스 같은 서유럽 도시들은
물가가 부담스러웠고,
프라하는 그에 비해 조금 더 현실적인 선택지였다.


무엇보다도, 이 도시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천천히 걸어볼 때 더 많은 얼굴을 보여줄 것 같았다.

구시가 광장, 카를교, 프라하 성,

그리고 골목마다 이어지는 오래된 건물들.

그 모든 풍경을 서두르지 않고 살아보듯 마주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그저, 우리에게 더 끌리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체코 맥주가 세계 최고라던데…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끌리면 오라.”

어디선가 들었던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프라하를 선택했다.


Gemini_Generated_Image_rbzfhsrbzfhsrbzf1.png 곧 걸어다니게 될 프라하 구시가 광장



돌이켜보면,
이 여행은 떠나기 전날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책과 영화, 인터넷을 통해
프라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낯선 도시가 조금씩 익숙한 이름과 장면으로 채워졌다.

아마데우스,
프라하의 봄,
벨벳 혁명의 기억들,
그리고 뷰티 인사이드까지.

화면 속 풍경이 이제는 언젠가 걷게 될 거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externalFile.jpg 꿈꾸는 시간은 즐겁다


그러는 사이,

여행은 점점 더 구체적인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전 여행에서는 현지에 도착해서 숙소를 구하거나
즉흥적으로 일정을 정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항공권을 시작으로 숙소, 렌터카까지 미리 준비해보기로 했다.

하나씩 준비를 마칠 때마다
여행은 이미 절반쯤 시작된 느낌이었다.


1. 항공권 예매

출발은 9월 중순으로 잡았다.

8월 성수기가 지나면 관광객이 조금 줄어들고,
날씨도 선선해지는 시기.

추석 연휴를 피해 날짜를 정하고, 항공권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스카이스캐너, 익스피디아, 네이버 항공권, 다음 카카오 등

여러 사이트를 번갈아 보며 며칠 동안 가격 흐름을 지켜봤다.

결국 선택한 것은 카타르 항공.
인천에서 도하를 거쳐 프라하까지 가는 항공편이었다.

가격은 1인 약 87만 원.
망설이지 않고 결제를 마쳤다.


2. 숙소 찾기

숙소를 찾는 과정은 생각보다 길었다.

구도심과 너무 멀지 않고, 걸어서 주요 장소를 다닐 수 있으며,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이 있는 곳.

조건은 단순했지만, 그에 맞는 숙소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에어비앤비, 트리바고, 호텔스닷컴, 부킹닷컴 등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조건에 맞는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비교를 거듭한 끝에 쉐어하우스 형태의 아파트를 선택했다.

후기가 많고, 수퍼호스트였으며, 가격도 한 달 약 118만 원.

예약을 마치자 호스트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프라하에 오시면 아파트 입구에서 만나겠습니다.”


아직 가보지도 않은 도시였지만
이미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3. 렌터카 예약

프라하에서의 한달살기가 끝나면
곧바로 이어질 15일간의 동유럽 자동차 여행도 계획했다.

슬로바키아를 시작으로
헝가리,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를 거쳐
다시 프라하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캠핑카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여러 조건을 따져본 끝에
좁은 유럽의 골목길을 감안해 일반 승용차를 선택했다.

공항에서 픽업과 반납이 가능하고, 보험이 포함된 차량.

비수기라 15일 렌트 비용이 약 20만 원으로, 아주 저렴한 편이었다.

이렇게 하나씩 준비를 마칠수록
막연했던 여행이 점점 구체적인 시간이 되어갔다.


여행자 보험과 국제운전면허증까지 준비를 마치고 나니
이제 정말 떠날 일만 남았다.

항공권, 숙소 바우처, 렌터카 계약서.
한 장씩 인쇄해 따로 챙겨두었다.


externalFile.jpg 그 많던 음식들이 다 어디로 갔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의 생활을 한 번 비워내는 일 같다


그리고,
집안의 일상도 하나씩 정리했다.

돌아오면 바뀌어 있을 계절에 대비, 집안일들도 많다.

그동안 늦장마 때문에 미뤄뒀던 빨래들도 세탁해 초가을 햇빛에 뽀송뽀송 말리고,

냉장고 안 등 주방을 정리하는 일은 기본이다.

휴대폰과 노트북의 공간을 정리하고.

빠뜨린 것이 없는지 체크리스트도 만들어 짐을 하나씩 챙겼다.


그러고보면 꼭 여행기간만큼이나 여행 전과 후로,

그만큼의 여행을 잘 하기 위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 같다.

세상에 공짜시간은 없는 법이니.


externalFile.jpg 한 달을 살아가기 위한 물건들이 결국 가방 두 개에 다 들어갔다


기다리던 여행지로 떠나기 전날, 이 시간이 참 좋다.

어쩌면 우리는 여행지에서의 시간보다
지금 이 순간을 느끼기 위해 다시 짐을 싸는지도 모르겠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고생이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또 이렇게 떠나게 되는 걸 보면 말이다.



*이 글은 체코 프라하 한달살기 중(2019년 가을),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남겼던

기록을 바탕으로 지금의 생각을 조금 덧붙여 정리한 글입니다.






"26년 3월 생각"



[호]


오랜만에 체코 프라하 한달살기 글을 정리하다보니

불과 7년 전임에도 마치 아주 오래된 추억여행처럼

그 시절만의 설렘이 풋풋하게 느껴집니다.


생각해보니 그간, 세계 한달살기를 한 10여년 중

유럽에서 머물러보기는 체코 프라하가 첫 도시입니다.

그만큼 이런저런 연유로 가까운 동남아를 많이 다녔고

정작 유럽으로 한달살기를 떠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2026년의 지금.

그때의 우리는 여행을 준비한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조금 다른 시간을 살기 위한 이유를

천천히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우리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이렇게 다시 그 시간을 꺼내볼 수 있고

그 시간은 그렇게 온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