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다시 그길

프롤로그

by 호히부부

*이 글은 산티아고 순례를 떠나기 직전(2025년 9월 중순), 설렘과 다짐 속에서 쓴 프롤로그이며, 이후 이어지는 모든 글들 역시 길 위에서 그날그날 써 내려간 기록입니다. 다만 여정은 처음 그렸던 그림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지만, 그 다름까지 포함해 그때그때의 마음과 선택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길 위에서 배운 것은 오히려 그 안에 있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가을, 프랑스 길)을 걷습니다.

순례길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는
이미 이 길을 다녀간 수많은 순례자들이 자세히 기록해 두셨기에
저희가 굳이 덧붙이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걷는 동안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풍경 한 장면,
스쳐 지나가는 생각 한 조각이 있다면,
그때그때 소소하게 메모해 볼까 합니다.


글의 기록 말미에는 매일 걷는 것이 일과인 순례길에서마저

혈당수치를 열심히 체크하게 될,

당뇨인 '호'의 고군분투, '혈당일지'도 덧붙일게요.^^






-내년이면 결혼 40주년

이 가을, 다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800km)을 걷기로 한다.
2013년 봄에 처음 그 길을 걸은 후,

코로나가 막 끝난 22년 가을, 여행을 새로이 재개할 수 있음에 깊이 감사하며

산티아고 포르투갈 길을 걸었다.
그리고 언젠가 꼭, 기회가 된다면 '가을의 프랑스길'을 다시 한번 걷게 되기를

마음 한켠에서 조용히 기다려왔다.


지금, 우리 부부는 출발을 며칠 앞두고 있다.

내년이면 결혼 40주년.
그 시간을 미리 끌어와 의미를 보태며,
이번 순례를 그냥 저질렀다.

장장 50일이라는 시간과 그에 따른 비용의 무게가

마음을 짓누를 때마다
이 여정의 의미를
숨겨둔 비상약처럼 꺼내어 떠올릴 생각이다. ^^


-당뇨 20년 차, 와인 한 병과 혈당

‘호’는 20년 차 당뇨인이다.

다행히 운동과 식생활, 혈당약으로 꾸준히 섭생해 온 덕에
지금까지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잘 관리해오고 있다.

(세 달에 한 번씩 평균값을 내는 당화혈색소가 보통 5.8~6.8 사이이다.

당뇨인은 6.5 이내면 안정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외국에 나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들 앞에서 혈당은 어김없이 들쭉날쭉 흔들리기 마련.

그래서인지 여행 중에는 일반인보다 좀 더 예민하게,
좀 더 조심스럽게 식사 메뉴를 고르지 않을 수 없고,

혈당체크기를 가지고 다니며 매일 두 번씩 혈당수치를 재는 가운데

식단과 혈당에 대한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는 중이다.


이번 산티아고 길에서는
일기 말미에 ‘800km 혈당일지’를 덧붙일 생각이다.

한 곳에서 거주하는, 비교적 안정적인 한달살기와는 다르게

매일같이 환경이 바뀌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혈당을 최고로 잘 올리는 음식 중 하나인 빵을 거의 삼시세끼 주식으로 섭취할 것이고,

또 하나 산티아고 길에서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인 저녁식사 시간엔
맛난 스페인 와인 한 병(이상?)을 나눠 마실 계획이다.

매일.

그럼에도 과연 걷는 당뇨인에게 느린 기적이 찾아올 수 있을까?


걸음마다 혈당, 마음마다 평화가 깃들기를 희망하며...^^


2013년 봄, 온 가족(세딸과) 함께 걸은 산티아고 프랑스길
하릴없는 산티아고 길에서는 유독 그림자놀이가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