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건넨 꽃 한 송이- 느슨하지만 따뜻한 여성들의 연대
오전 9시 50분. 토스트 한쪽을 겨우 먹고 징징거리는 둘째를 안아 올리는데 아파트 안내 방송이 나왔다.
"금일, @@1동부터 @@6동까지 엘리베이터 점검이 있을 예정입니다. 10시부터 5시까지 엘리베이터 사용이 제한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갑자기 30도 가까이로 치솟은 날씨에 엘리베이터 중단 예고라니. 관리사무소에 전화해보니 우리 동은 낮 12시가 넘어 점검이 이뤄질 것 같다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기 전에 유모차가 나갔다 돌아와야 한다! 부랴부랴 내복 차림의 아기에게 모자만 씌우고 유모차를 태워 나섰다.
유모차를 끌고 한 시간 동안 땡볕을 걸어도 아기는 낮잠에 들지 못했다. 유모차에서 낮잠을 재우고 현관에 주차해놓은 다음 여유 있게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계획이 어그러질 참이었다. 바깥 풍경에 갈수록 또롱 또롱 해지는 아기의 눈을 확인하고 커피를 사러 카페에 들렀다.
카페를 다양한 식물로 꾸며놓은 여성 사장님이 아기를 보더니 작은 환호를 내뱉는다.
"아이고 예뻐라, 몇 개월이에요?"
여기서 마법이 시작된다.
몇 개월이에요?라는 상투적인 질문에서 시작되는 따뜻한 마음과 여성들의 느슨한 연대.
"우리 애는 이맘때 엄청 울었는데 이 아기는 순하네~ 효녀인가 봐~ 빵은 먹어요? 뭐라도 주고 싶은데~"
아직 이유식을 제대로 안 먹어 빵은 안 줘봤다고 하자 사장님이 두리번거리다 화병에 있던 꽃을 잡는다.
"꽃이라도 줘야지. 꽃같이 예쁜 아기니까."
"아유, 아직 꽃만 보면 꽃잎을 다 뜯어버리려고 해요. 아까운데..."
"아기 보느라 힘들 텐데 엄마가 보라고."
3500원짜리 커피에 만개한 카네이션 한 송이가 따라왔다. 꽃을 선물 받아본 사람들은 알 거다. 작은 꽃 한 송이가 얼마나 마음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지.
임신과 출산, 육아에 이르는 힘든 고비를 지나노라면 아이가 이렇게도 예쁠 수 있을까 싶어 놀랍고 행복하다가도 자꾸만 나 자신은 후퇴한다는 기분이 들어 우울감이 함께 찾아온다. 아이가 생겨 좋은 것 백만 가지만큼 힘들어진 것도 백만 가지나 되는데, 좋은 것 중 하나는 아이 키우는 엄마에 대한 주변 여성들의 따뜻하고 작은 위로이다.
나의 경우 첫 위로는 산부인과에서 시작됐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러 간 동네 산부인과에서 나보다 10살쯤 많아 보이는 여자 사람 의사 선생님은 제일 먼저 축하한다는 말부터 건넸다.
"요즘처럼 저출산 시대에 결혼 6개월 만에 그것도 만 34살에 임신, 진짜 MVP에요. 정말 잘했어요!"
임신을 하면 초기 5개월까진 아무리 배를 내밀어봐도 똥배인지 임신인지 잘 구별이 안 되는데 (특히 나처럼 전반적으로 살이 있는 체형은 더욱), 임산부 배지를 깜빡 잊고 나온 날은 물론이고 핸드백에 걸어놓은 날에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 한 번 얻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가끔 할머니들이 내 배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며 쩍벌남들을 쏘아보신 뒤 자리를 양보해주시곤 했다. '얼마나 힘든지 너네 남자 놈들이 알기나 하니?' 하는 힐난이 서려있는 눈빛이었다.
꽤 양성 평등한 분위기인 직장이라 남자 동료들도 최선의 배려를 다 하려 했는데, 그래도 언니들을 따라가긴 힘들었다. "환도 선다는 없어?"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출산 뒤엔 돈 좀 쓰더라도 꼭 체형 교정받아~." "살은 한꺼번에 빼지 마라. 나처럼 골병든다. 천천히 운동하고 밥 조금만 줄여가며 빼. 언젠가 다 빠져." 이전에 얼마나 가까웠는지와 상관없이, 여자 선배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첫째 출산 후 육아휴직 중엔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후배들과 셋이 공동 육아도 종종 했다. 당시 음식 배달앱이 막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는데, 돌아가며 엄마와 아기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점심은 간단히 배달 김밥으로 때우며 맹렬한 수다로 육아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그게 뭐 대단한 거냐,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큰 위로가 된다. 각자 조리원 단톡 방에서 얻은 정보를 아낌없이 풀어놓기도 했다. "침독엔 쁘**쥬 세럼을 써보세요." "우리 아기는 제**드 MD 처방받고 나아졌어요." "우린 @병원 @@@선생님에게 알레르기 진단 예약 잡았잖아요." "@@@ 물티슈가 어느 쇼핑몰에서 저렴해요."
복직 이후의 생활은 말할 것도 없이 주변 여성들의 도움 없인 불가능하다. 친정이 멀어 친정엄마 도움을 받기가 힘든데 그 자리를 시어머니와 시댁 숙모님이 채워주시고 있다. 코로나로 잠시 일을 쉬고 있는 동생에게도 둘째 출산 이후 자주 이모 찬스를 외치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힘들어 보이는 여성을 발견한다면 “몇 개월이에요?”라는 마법의 말을 한 번 건네주시길. 본인은 오지랖이라 생각할지라도 듣는 이의 마음은 따듯해질 테니. 아, 그렇다고 해서 애가 밥을 잘 먹니 안 먹니, 크니 안 크니, 하는 참견을 하라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