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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꿍 Nov 29. 2015

엄마가 아니어도 내 삶은 괜찮아.

셀프 난임 치유기

  

나는 평범한 9년차 직장인이다. 제때 졸업하고, 제때 취직하고 한 직장에서 꾸준히 9년까지 다닌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런데 그 이외의 삶에서는 평범하지 못하다. 결혼한지는 6년째이고 우리에게는 아직 아이가 없다.

결혼한 지 6년이 되었음에도 아이가 없다는 것은 이미‘평범’하기는 글렀다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 말이 뇌리에 스친다. 그렇다.

6년차에는 아이가 하나 또는 둘 있어야 하는 것이 평범한 부부라면 우리는 아닌 쪽에 속한다.  예전에 어느 포스터에서 7명 중 1명은 난임을 겪는다는 수치를 보았을 때 나는 당연히 6명 안에 들 줄 알았다. ‘내가 7명 중 안 되는 쪽인 1명이 될 수도 있을 거야.’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다면 그간 난임의 시간이 이토록 힘겹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아닐 거야’라고 부정하며 보냈고,
인정하고 나서는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난임을 겪기 전까지는 살아가면서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다. 부모님 덕에 결핍 없이 자라왔고, 노력하는 것들은 조금씩이나마 이룰 수 있었다. 어디 가더라도 노력하는 것들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처음이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되지 않는 것이 세상에는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걸 말이다.

아무리 용을 써도, 나의 모든 기운을 모아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가 끝인 지도 모르겠다. 임신이 돼야 비로소 나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절망의 방 안에 갇히게 되었다. 매일 운 적이 있었다. 하루도 안 빼 놓고 매일 운 적도 있었다.    


그런 나에게 인생의 한줄기 빛을 준 두 가지 일이 있었는데, 하나는 1년간의 난임 휴직을 한 것과 또 하나는 미친 듯이 책을 본 경험이다.     


회사, 병원을 병행하며 몸과 마음은 바닥까지 곤두박질쳤고, 나는 간절하게 쉬고 싶었다. 휴직을 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내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1년 간의 휴직을 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난 1년은 나를 바꾸었다. 완벽하게 나와 마주하는 시간.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그동안은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달려왔다. 학교 - 시험 - 자격증 - 취업 - 결혼..   그러나 이 기간 동안은 지긋지긋한 자기계발에서 벗어나,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문화센터를 섭렵하며 신나게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버킷리스트처럼 먼가 하고싶은 것들을 잔뜩 수첩에 써놓고 하나하나 지워가며 그 시간들을 즐겼다. 때로는 음악을 들으며 공원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한켠에는 1년 안에 임신을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조금씩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간 '회사땜에 스트레스 받아서 안된거야' 라는 핑계거리가 없어졌으니 줄어드는 휴직기간은 다시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제‘어쩌면 좋을까.’ 라고 고민하던 차에 내 발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남은 3개월의 시간을 책을 보며, 답을 찾기로 결심했다. 3개월간 100권이 책을 읽기로 결심을 하고, 완전히 책에 빠져서 정신없이 책을 보다보니, 책은 나에게 넌지시 답을 알려주었다. 중요한 것은 외부적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임신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 자체가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나를 놓아버리니, 마음은 끝없이 넓어지고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선택하기로 했다. (이 선택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교수님의 덕이 크다.)

나는 계속 난임으로 마음고생을 하며 불행하다고 느낄 것인가. 아니면 되도 안 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이 시간들을 행복으로 채울 것인가.

그리고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엄마가 아니면 어떠한가. 나를 찾았는데 말이다. 일단 나를 찾았으니 이제는 엄마가 되어도 안 되어도 나는 행복하다.


나는 이제 시작이다. 새로운 즐거운 것들로 내 인생을 채워나가는 출발점에 놓여있다.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는 거니까요!!'

 - 빨강머리 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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