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친구가 없다.

조용한 정리 끝에 찾아온 나의 시간

by 호호엠이


나는 이제 친구가 없다.

어쩌면 ‘없다’는 말은 조금 과장일지도 모른다.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고,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들도 있다.

그런데도 지금 나는, 혼자다.

겉으로는 여전히 많은 관계 안에 있는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가 정말로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관계는 점점 희미해졌다.
진심을 꺼낼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나는 말없이 멀어졌고, 조용히 스스로를 감췄다.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과
‘내가 그 곁에 있어도 괜찮다고 느끼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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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관계를 정리하는 중이다.
그동안 애매하게 남겨둔 이름을 연락처에서 지우고,
무심한 말들을 모른 척하며 버텨야 했던 순간들을 흘려보낸다.

예전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내가 예민한가?” “그래도 좋은 사람이었는데…” 하며
나를 자책하고, 관계를 감췄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외롭게 하는 관계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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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동의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힘들어하면 그 감정을 내 일처럼 짊어졌고,
내 도움이 그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남은 건
나의 감정만 쌓이고, 돌아오는 공허함뿐이었다.
사람들은 힘들 때 나를 찾았지만,
정작 상황이 나아지면
나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그들에게 무엇이었는지보다,
내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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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쓸쓸하다.
관계를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지만,
아무도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 공기가 차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상태가 오히려 ‘정상’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전에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조율하고 조심하고, 마음을 감추며 살아야 했다.
지금의 고요함은 낯설지만,
그 안에서 비로소 나의 감정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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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남의 짐을 대신 들어주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짊어질 수 있는 것은
내 삶, 내 감정, 내 선택뿐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이건 이기적인 결심이 아니다.
오히려, 더 정직하게 연결되기 위한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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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말한다.
깊고 절대적인 관계보다,
얕지만 다양한 관계들이 더 건강하다고.
나 역시 이제는 안다.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기대는 방식으로는
결국 아무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나의 경계를 지킬 수 있는 사람,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야
비로소 더 나은 연결이 가능하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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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혼자다.
그러나 단절된 것이 아니라, 정리된 상태다.

이 조용한 시간은
내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맺고 싶은 관계의 방식과
살고 싶은 나의 방향을 새롭게 설계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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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나는,
내 짐만 들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정리의 끝에서
진심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과
조용한 따뜻함을 나누게 될 날도
오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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