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스체어와 오드플랫 (EAMES CHAIR & ODDFLAT)
인테리어와 가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마도 엄마를 닮아서다. 집에는 늘 집과 공간을 다룬 잡지가 가득했고, 어릴 적부터 차 뒷좌석에 타 엄마를 따라 앤틱샵을 다녔다. 외국 나갈 일이 있어도 가구샵 방문은 필수였으니 말 다 하지 않았나. 각종 자석이나 인형을 파는 기념품 가게보다 로컬 인테리어 소품샵에서 물건을 사는 게 더 신났다. 이십 대 중반 읽었던 책 한 권. <명품 가구의 비밀>은 '나도 나의 가구를 가져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했다. 2016년도에 출간된 이 책은 19세기부터 현재까지 빼놓을 수 없는 가구들을 선별·취재한 내용을 담았다.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가구들을 이미지로 볼 수 있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초보자도 쉽게 알 수 있는 입문서다. 디자인 가구가 단순히 비싸거나 예쁘다는 이유로 명품이 되는 게 아니라, 사용자를 배려하는 설계와 시대를 아울러 호감을 살 기능적 요소, 마지막으로 디자이너의 심미적 고뇌까지 더해져야 완성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디자이너 임스 부부(Charles & Ray Eames)도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 남편 찰스 임스는 건축을 공부하다 1936년에 미국의 유명한 디자인 학교 크렌브룩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아내 레이 임스는 마사 그레이엄에게 무용을 배우다 갑자기 그림 공부를 시작해 1940년, 남편과 같은 아카데미에 들어간다. 두 남녀는 다른 졸업생들과 함께 Organic Design in Home Furnishing 공모전에서 1등을 했다. 당시 선보인 '플라스틱과 목재 기술을 적용'하는 기법은 추후 임스 디자인의 모태가 되었다. 1941년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는 캘리포니아에서 임스 오피스를 열고 합판 의자 디자인을 연구했다. 더 나아가 광고 디자인이나 전시기획, 장난감 디자인, 대기업 자문, 심지어 영화제작도 하면서 자신들의 창조적 기질을 마음껏 발휘한다. 임스 부부는 점차 유명 인사가 되는데, 항상 서로의 손을 잡고 다정한 모습으로 다녔다고 한다. (이들의 로맨틱함 역시 완벽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임스 부부 [Charles & Ray Eames] (20세기 디자인 아이콘 : 산업디자이너, 최경원, 월간 <디자인>) 참고
레이 임스: '예술적' 측면인 형태와 '창조성'에 주력
찰스 임스: 기술·기능과 같은 '공학적'인 면 책임
이들 부부에 대한 동경. 그리고 1950-1970년도 사이에만 한시적으로 생산된 유리섬유 의자에 대한 마음이 날로 커졌다. 그리하여 내 돈 주고 처음으로 산 가구. 임스 체어(Eames Chair). 해외에서 빈티지 임스 제품들을 수집해 가구 복원과 수리 과정을 거쳐 파는 곳을 발견했다. 금호동 언덕 넘어 조그맣게 위치한 오드플랫(ODDFLAT)이 바로 그곳. 내가 처음 방문했을 땐 금호동에 있었지만 지금은 성수동에 더 큰 쇼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스 체어 열풍이 불기 전부터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오드플랫은 여타 샵들과는 다른 차별성이 있었다. 처음 쇼룸이 금호동에 있을 때 임스 체어 두 점을 구입했다. 그 후 추가적으로 의자 한 점을 더 구매하기 위해 다른 샵들도 알아봤지만 본인들이 파는 제품에 대한 이해도와 지식 없이 그저 '이건 얼마 저건 얼마'라는 식의 태도에 실망만 가득했다. 결국 나는 남편과 함께 처음 임스 체어를 만났던 오드플랫에서 재구매를 하기로 결정했다.
금호동 시절 쇼룸은 아담하다. 작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 시선을 끄는 요소들이 다분했다. 형형색색의 쉘들이 쌓여있는 선반. 의자 다리가 얼기설기 놓여있는 모습. 아직 수리 전이라 새로운 모습으로 순서를 기다리는 체어들, LP 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빈티지 조명. 작은 소품들과 액자, 한쪽 구석에 있는 작업실, 그리고 조용하면서도 친절하신 사장님. 이 작은 공간 안에 과하지 않으면서도 꽉 찬 내공의 기운이 편안함을 자아낸다. DSS Tan Light (1959-79), DSS Olive Green Dark (1972). 이날 구매한 의자들이다. 처음에는 색감이 쨍하고 강한 컬러를 생각하고 갔지만, 집과 어울리면서도 금방 질리지 않는 색이 낫지 않겠냐는 남편의 권유에 결정을 바꿨다. '그래! 우선은 점잖은 컬러로 시작을 하고 나중에 포인트용으로 도전해 봐야지' 하면서.
확장 이전한 성수동 쇼룸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일단 공간의 규모가 커지니 더 많은 제품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응대하는 직원들 수도 늘어났다. 미리 생각해둔 컬러가 있어 전화로 해당 컬러가 있는지 문의 후 방문했다. 제품 상태를 확인한 후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 오드플랫은 인스타그램을 주로 운영하며 네이버를 통한 예약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온라인 구매와 재고 확인이 가능한 홈페이지가 생겼다. 최근에 오드플랫에 방문을 했는데, 그날은 사장님 혼자 계셨다. 달라진 점은 빈티지 제품이 아니라 새 제품도 취급한다는 점과 포스터 액자의 종류가 상당히 늘어났다는 거다. 마음에 드는 체어가 없어서 빈티지 포스터 액자를 하나 구입해 돌아왔다.(해당 내용은 이사 후 인테리어 부분에서 추후에 다루겠다) 이전 금호동에 있을 때는 첩첩산중에 은둔한 고수의 모습이었다면 새로 이전한 오드플랫은 세상 밖으로 나와 조금 더 대중에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빈티지라는 이유로 낡은 물건을 그대로 파는 곳이 있다. 비싸게는 샀는데 금세 고장이 나거나 불편해서 애물단지 되기 딱 좋다. 그러나 오드플랫은 빈티지 의자가 다시 '잘' 쓰일 수 있게 전문적(부품만도 판매한다)으로 수리를 해준다는 점이 강점이다. 그 과정이 본래 제품이 가진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적정이 이뤄진다는 거. 보증기간이 있어 추후 관리 면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구매를 하러 갔을 때 물건과 해당 시기나 디자인에 대해 여쭤보면 전반적으로 세세히 설명을 해주셔서 지식을 하나씩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물건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느껴지는 곳, 이게 바로 오드플랫이 독보적인 위치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진심이라 생각한다.
많고 많은 가구 중에 내가 유독 의자에 푹 빠지게 된 건 왜일까. 의자가 갖는 '자유로움' 때문일 거다. 다른 가구들에 비해 부피가 적어 어느 공간이든 의지만 있다면 옮길 수 있다. 그리고 사람 피부와 가장 많이 닿아있는 '접촉성'을 갖는다. 큰마음 먹고산 가구지만 정작 방 한구석에 모셔두는 경우가 꽤 있다. 그렇기엔 가구의 운명이 너무나 불쌍하지 않나. 반면 의자는 매일 주인의 체중, 어쩌면 그 하루의 무게를 받치며 함께 한다. 그곳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어내는 생산성을 뿜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편한 휴식을 선사하기도 한다. 내가 임스 체어와 함께 생활한지 2년이 되어간다. 그 위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셨고, 이사 갈 곳에 대한 자료며 아이 육아에 대한 공부 등을 해가며 우리 가족의 미래를 그리기도 했다. 이렇게 소중한 순간들이 베여있는 의자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