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없는 집 외동 냥이 레이는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믿지 못하겠지만(고양이를 키우는 사람 중 극소수 행운아들은 내 말이 맞다는 걸 알 것이다. 레이 인스타에 오래전 레이가 엄마~를 부르는 동영상을 올린 적도 있다.) 레이는 정말 “엄마~”라고 소리를 낸다.
짧게 끊듯이 엄마! 하기도 하고, 부드럽고 길게 엄마~ 하기도 하고, 응석 부리듯 작은 소리로 엄~마~하기도 한다.
방금도 베란다에서 밖을 보고 혼자 놀다가 책상 위로 올라오면서 “엄마~”했다. 주방에서 밥을 하는 그도 너무나 정확한 발음을 듣고 웃었다. 또 희한하게도 레이는 나에게만 엄마~라고 한다. 그에게 엄마~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레이를 처음 데려올 때 우린 레이의 형, 누나가 되자고 했었다.(고양이 집사라는 표현은 싫다.)
엄마라는 호칭이 부담스러웠다. (우리는 아이가 없다. 서로 합의 하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레이가 첫날 내 무릎에 올라오자마자 나는 자연스럽게 레이 엄마가 되었다.
레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라고 부른다. 덕분에 우리는 엄마, 아빠가 되었다. 서로를 부를 때 자주 레이 엄마, 레이 아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레이 관련 이야기를 할 때는 거의 그렇게 부른다. “레이 엄마, 레이 밥이 없는데 “, “레이 아빠야 레이 어딨어?” “레이 아버지, 레이 물 갈아줬어요?” “레이 어머니, 레이가 기다려요” 등등
레이는 우리가 포옹을 하고 있으면 멀리서 자다가도 일어나 우리에게 온다.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가기도 하고, 우리 다리에 몸을 부비기도 하고, 궁디팡팡을 해달라고 보채기도 한다. 마치 엄마 아빠 둘이 있는 걸 질투하는 어린아이처럼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려고 한다.
아이가 없어서 평생 엄마 아빠 노릇은 없을 줄 알았는데 레이 덕분에 엄마 아빠 놀이를 하는 중이다.
방에서 자다가 무서운 꿈이라도 꿨는지 갑자기 달려서 책상 위로 올라오며 엄마~ 하고 부른다. 읽고 있는 책 위에 올라와 만져달라고 한다.
레이는 우리가 외출했다가 집에 오면 언제나 마중을 나온다. 자다가 비틀비틀 나오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은 우리가 문 열기 전에 현관문에 코 박을 만큼 바로 앞에 와있다. 한참 동안 인사를 해줘야 한다. 대충 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가면 냥~ 울면서 더 해달라고 한다.
물론 귀찮게도 한다. 매일 놀자고 보채고, 졸리다고 칭얼거리고, 놀자고 물고, 졸리다고 물고, 밤에 자기 직전엔 흥분해서 다리를 물기도 한다. 레이가 아기일 땐 밥을 할 수도, 설거지를 할 수도 없었다. 세상에 궁금한 게 너무너무 많아서 모든 일에 참견을 했다. 도대체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밥을 해 먹고 사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한 명이 레이를 전담해야 다른 한 명이 밥을 하거나 설거지를 할 수 있었다.
책에는 하루에 20분 정도 상호작용 놀이를 해주면 된다는데 레이는 두 시간을 해도 모자라다고 보챈다. 그림을 그리려고 물감, 종이 등을 꺼내면 종이를 깔고 앉고, 물감에 코를 박고, 붓 씻는 물을 마시려고 한다. 책을 읽을 땐 책 위에 올라앉고, 컴퓨터를 할 땐 자판 위를 걸어 다니거나 올라앉는다.
청소도 많이 해야 하고, 건조기도 사야 하고, 비염과 눈 가려움과 재채기를 달고 살고, 종종 귀찮지만, 더 많이 사랑스럽다.
물론 아기나 고양이나 잘 때가 제일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