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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청 Mar 08. 2024

브라질 타악기로 만나는 신명의 리듬

북치고 북파는 이웃, 북카름

사소한 오해와 뜻 밖의 우연이 모여 연결되는 인연이 있다.

하나, 제주도 북촌리 골목골목을 다닐 때 눈길을 사로 잡는 집이 있었다. 특징은 유리창에 있는 고양이레고, 녀석들은 이름도 가지고 있다. 이 집의 주인은 필시 귀여운 여성이리라. 언젠가는 만나봐야지 결심한 적이 있었다. 이주민 단체톡방에서 SNS계정을 알게됬을 때의 반가움이란!


북카름에 사는 카이, 부기, 르미


둘, 북촌리 뒷개할망 공연에 따라갔다.  사물놀이 리듬을 재현하는 본적 없는 타악기와 카리스마 넘치는 타악리더를 보며 신나할 때 쯤. 옆에 계신 삼춘이 말씀하셨다. "쟈이도 제주도아이라. 잘도 착해"  


결론적으로 그 집주인은 남성이었고, 그 카리스마 넘치던 타악 리더와 동일인이었다. 분장을 지운 뒤 만난 모습은 다정한 이웃이었으며 그도 제주에 정착한지 오래되지 않은 이주민이었다.

그의 집인 동시에 동네책방이자 복합문화공간인 쪽잡한 북카름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제주도에는 어떻게 오시게 되었나요?

A. 서사가 좀 길어요. 사회적경제기업이 화두가 되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 망할 줄 알면서도 청년들을 창업으로 몰고 있잖아요. 그 때도 그런 분위기였어요. 저도 사회적기업 창업도 생각했었고 비즈니스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에 일반기업에서 비영리단체, 청소년단체로 이직을 했어요.

사회에서 외면하는 친구들, 재판받고 위탁되는 청소년들과 함께 했죠. 그 아이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함께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면서 로컬크리에이터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독립책방을 하고 싶었죠. 끝내 함께 책방을 열진 못하고 그 회사에는 퇴사를 했구요. 안식월을 받아 제주에 와서 '해녀의 부엌'에 합류하게 되었고 2021년 6월에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Q. 급작스러운 이주였네요?!

A. 제주에는 2014년부터 살고 싶었어요.  타악팀이 있었거든요. 제가 서울에서 2012년에 브라질 타악을 시작했는데 2014년도에 제주에도 타악팀이 생겼어요. 인연과 친분이 생겼죠. 그러면서 제주에 이주해도 잘 적응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주중엔 일하고 주말엔 공연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제주도 브라질 타악팀은 운영이 잘 안되서 흐지부지 사라지는 형국이 되었죠. 제주에서 직업은 구했으니 살 수는 있겠지만 북은 못치겠구나 했어요.

그런데 살아보니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더라구요.  제주도 이주에 대해 염두에 두고 있으니 얼마나 많이 왔다갔다 했겠어요. 그때까지 여행으로 제주에 그렇게 많이 왔었는데도. 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구요. 제주는 지금도 해신제, 포제를 지내요. 영등할망 굿하는 것도 봤구요. 보통 무속에 대한 부분은 미신으로 치부되고 은연중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그냥 문화의 한 축이에요.

해신제 후에 음식을 바다에 띄워보내요. 영등신께 바치는 거죠. 브라질에서도 바다의 여신에게 제사를 지낸 뒤에 꽃을 띄워보내거든요.  그리스로마신화는 신과 인간의 경계가 명확하잖아요. 그런데 제주나 브라질은 인간이었다가 신이 되는 존재들이 있어요.

이런 문화를 보면서 제주도에서 브라질 타악을 해봐도 되겠다 생각했어요. 굿의 리듬을 이국적인 브라질 악기로 해봐도 좋겠다. 제주만의 팀을 만들자. 육지에서 여러 타악팀에 속했었지만 항상 팀원이었어요. 리딩을 해본 적이 없는데 무모하게 시작한거죠. ​​


Q. 브라질 타악과의 인연도 궁금해요.

A. 정말 우연한 계기였어요. 회사 동기들이 교육을 다녀와서는 쉬는 시간에 공연팀이 왔는데 너무 멋있더라 이야기롤 하면서 영상을 찾아보고 있는데, '라퍼커션'팀의 공연이었어요. 저는 그 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영상을 보는데, 북소리에 심장이 같이 울리더라구요. 그리고 공연을 보는 관객이 아니라 연주자들이 훨씬 더 즐거워하는게 보였어요. 그 때는 싸이월드 시절이라, 홈피를 찾아봤는데 멤버를 모집한다는 거에요!

브라질 타악그룹의 지향방향이 있는데요.  '블로꾸' 는 블록을 뜻하고 30명 이내의 팀을,  '에스꼴라'는 학교를 뜻해요. '라퍼커션'은 에스꼴라지를 지향하는 팀이었고 분기별로 멤버를 뽑았어요. 저는 보고 바로 지원해서 시작했죠. 2012년 3월에 동기 15명과 함께 했어요. 그 때 동기 중 한 명이 지금 달사막 사장님이에요.(함덕에는 달사막이라는 안주+분위기 맛집이 있다.)

여러 악기를 배워봤지만 멈추는 시기가 있었는데 타악은 계속 하고 싶었어요. 공연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서도 발견하게 되었죠. 나 주목받는거 좋아하는 구나! 더 잘하고 싶어졌어요. 타악을 하던 10년 동안 개인사에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지만 북을 치는 것 만큼은 변하지 않았어요. 단순히 타악을 하는 것이 예술로만 그치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보태는 일에도 동참하고 싶고요.


Q. 브라질 타악기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려요.

A. 해비끼 (포르투칼어로 종소리) 가장 높은 옥타브의  꽹과리같은 악기에요. 리듬의 뼈대이자 리드하는 악기입니다.

까이샤 (스네어드럼, 포르투갈어로는 상자, 박스라는 뜻) 리듬의 그루브를 잡아요. 레게느낌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 칩니다.

수르두(포르투갈어로 먹먹한)는 몇가지 사이즈가 있는데 가장 큰 북으로는 낮은 소리를 내구요. 18~20인치는 마라카성 (마킹한다는 뜻) 수르두 중 작은 사이즈로 악센트를 만드는 악기로 엇박을 담당하고 22~24인치의 푼두는 리듬의 뿌리로 기본 원투 박자를 계속 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Q. 이참에 팀 이름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세요.  

A. 블로꾸 뺄라지다인데요. '뺄라지다'는 제주말중 요망지다(야무지다)의 상위버전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것같아요. 엄친딸 엄친아느낌의 시기질투도 받고 되바라진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에요.(국어사전에는 '잘난 척하며 으스대거나 뽐내다'로 정의되어 있다.) 포르투갈어 발음과도 유사한데요. '뺄라'는 '~통해', '아지다'는 '행동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카름' 은 동네, 작은 마을을 뜻하고요. 그래서 제가 북치고 Book파는 북카름입니다.



Q.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여러번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선택을 할 때 고려되는 것들이 여러가지 잖아요. 우선순위가 궁금해요.

A. 비전과 사람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했고 돈이 가장 나중이었어요. 그래서 일반기업에서 사회적기업으로 이직을 했을 때, 연봉이 반토막이 났는데도 괜찮았어요. 제 가치관과 맞으니까. 저는 항상 메이저를 지향한다고 말하는데 결국 끌려서 선택하는건, 마이너 중에 마이너인것 같아요. 뺄라지다와 책은 다른 사람이 추구하는 비전에 올라타는 거 말고 내가 주도해보고자 했던 것이고 결국 제 가치관의 발현이죠.  


Q. 뺄라지다는 잘 성장하고 있나요?

A. 같이 북치던 누나가 5년 뒤 비전을 물어봤어요. 제가 그랬죠.  5년 후에는 제주의 모든 공연을 먹을거야.  관 주도의 행사에 파문을 일으켜 볼거야.

저의 무모함을 용기로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뺄라지다는 10명이 시작했는데 첫 공연에 6명이 참여했어요. 2014년에 이주를 꿈꿀때 제주에 있었던 타악그룹을 제가 비빌언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때의 저처럼 뺄라지다를 비빌언덕으로 생각하고 제주에 더 잘 정착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게 됬어요. 무모함을 용기로 해석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또 다른 가능성을 보고 있구요.

저희가 결성후에 3주만에 첫 공연을 했어요. 이게 놓칠수가 없는 공연이었거든요. 제주 내 시민단체 대표 200분이 참석하는 행사였어요. 미숙함을 감추기 위해  추가적인 연출을 더했죠. 그 공연 이후로 많은 대행사들을 만나고 다양한 기획들을 만나면서 올해만 해도 벌써 꽤 많은 공연횟수를 기록했어요. 청년 프로그램 기획도 맡게 되서 제주의 청년들과도 이야기를 함께 써갈 계획입니다.

블로그에 담지 않은 이야기와 듣지 못한 이야기들을 기대하며, 앞으로는 이웃으로 그의 행보를 지켜볼 요량이다. ​​



얼마전, 북카름의 외벽꾸미기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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