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의 질문을 2026년에 보다
키신저가 이 글을 쓴 건 2018년이다. 제목은 「계몽주의는 어떻게 끝나는가」. 아틀란틱에 실렸고, 당시 그의 나이는 아흔다섯이었다.
외교관이 AI를 쓴다는 게 처음엔 낯설 수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해가 된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당대의 최신 기술 핵무기를 2차 대전 이후의 외교 지형, 인간의 공포, 국가의 이해관계 안에서 읽어온 사람이었다. 기술 자체보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봤던 사람. 그러니 AI 앞에서도 같은 질문을 했을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의 논지를 짧게 옮기면 이렇다.
인쇄술이 종교의 시대를 끝내고 이성의 시대를 열었듯, AI는 이성의 시대 자체를 끝낼 수 있다. 인간은 지금까지 종교로, 철학으로, 이념으로 세계를 해석해 왔다. 그런데 AI가 내린 결론을 인간이 더 이상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세계를 읽을 것인가. 그는 그것을 두려워했다.
글을 보며 문득 지금을 돌아본다.
2026년, 자유주의·보수주의·공산주의·사회주의라는 말들이 묘하게 옅어졌다. 미국 시장에는 규제가 들어왔고, 중국 공산주의에서는 성장과 개발만 보인다. 이념의 이름은 남아 있지만 내용물은 서로 닮아가거나 뒤섞였다. 20세기를 지배했던 언어들이 힘을 잃어가는 자리에, 무언가가 들어오고 있다.
키신저는 그게 AI일 수 있다고 했다. 설명되지 않는 알고리즘이 판단을 대신하고, 인간은 그 결과를 그냥 수용하는 방식으로.
이미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것을 보고, AI가 요약한 것을 읽고, 검색 상단의 답을 큰 의심 없이 믿는다. 내가 판단하는 건지, 판단을 소비하는 건지 경계가 흐릿해진 지 꽤 됐다.
키신저가 제안한 건 거창하지 않았다. 철학자와 인문학자가 기술의 테이블에 함께 앉아야 한다는 것. 기술이 먼저 달리고 철학이 뒤따라가는 지금의 순서를 되짚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글을 쓰며 그가 남긴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서두르지 않으면,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2018년에 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