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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 Dec 14. 2022

이웃과 아무개

컨트리사이드 스토리

  나는 동네 친구가 필요한 I형 인간이다. (그렇다. 적극적으로 친구 만들기는 또 주저하는 i형 인간이다... 동호회, 각종 모임 사절이었던 인간.) 멋지게 차려입고 핫플에서 누군가를 만나 시간을 보내는 데는 크게 욕심이 없는데, 동네에서 잔잔하게 만나 뭔가를 먹고 헤어지는 부담없는 번개에는 욕심이 있다. 생활의 요소, 동네의 재미를 조금씩 나누고 공유하는 데도 관심이 있다. 


'밤에 떡볶이만 먹고 헤어질 동네친구 있었으면 좋겠다.'

'반찬 나눌 동네친구 있으면 좋겠다.'

'잠깐 강아지 같이 산책시킬 동네친구 있으면...'


  그래, 동네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중고등학교를 보냈던 인천 변두리 동네에서 친구들은 각자의 자취공간이나 신혼집으로 떠났고, 나 역시 집을 떠나 직장과 가까운 서울 오피스텔에서 살았다. 대학 친구들도 각자의 직장에 가까운 곳으로 멀어져갔다. 동네 친구가 있었던 시절은 학생 시절이 끝이었다. 나의 인간관계는, 가족 외에 고딩친구들, 대딩친구들, 직장 동료들이 전부였다.


  서울이라는 공간은 넓고 사람이 많으며, 수도권은 그보다 넓으니 우리는 보통 '홍대/합정/망원/연남동'이나 '한남동/신사동/약수/신당' 혹은 '을지로/충무로/종로'등의 핫플을 거점 삽아 약속을 잡는다. 직장인들의 보통의 약속 요일은 목~토, 퇴근 후가 국룰이다. 퇴근하고 밥 먹고 차 마시거나 맥주 한잔 하고 헤어져서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현관문앞에서 쓰러진다. 나같은 내향형, 집인간에게 주말 약속은 더 문제다. 인간다운 형태로 밖을 나서는 일에 나는 에너지를 많이 뺏긴다. 일찍 일어나 씻고, 세탁 및 다림질이 잘 된 깨끗한 옷을 입고 버스와 지하철을 고루고루 이용해 (인천에 사니) 최소 1시간 10분 이상의 거리를 이동해 약속장소에 도착해야 한다. 물론 집에 돌아가는 일도 마찬가지... 그 여정에 일단 출발전부터 질리는 기분이 들때도 있었다.


  남도 시골(정확히는 군 단위)에 살다 보니 인간관계가 매우 단순하면서도 다양다종해졌는데. 그 이유는, 모든 인간관계를 '이웃'이자 '동네친구'로 카테고리화시킬 수 있으면서 동시에 그 '이웃'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 옆집 할머니부터 밥집 사장님, 자주 인사하는 우리가게 손님들까지 모두 나의 이웃이자 동친이다. 그러나 그들은 대학친구나 직장동료처럼, 뭐랄까 하나의 집단은 되지 않는다. 각자의 성격과 나이, 취향과 관심사를 한데 묶을 수 없기 때문... 그저 '나의 이웃'이라고만 카테고라이징 할 수 있다. 


  고양이들 밥 챙기러 나오는 길에 옆집 할머니가 서 계시면 태우고 면사무소까지 내려다 드리고, 수영장에서 같이 도서관 문화 수업을 들었던 선생님을 만나고, 동업자와 동업자의 친구, 내 친구들끼리 시간이 맞으면 각자의 집에서 밥을 해서 나눠먹는다. 우리 가게 단골손님, 그 단골손님의 친구, 나와 내 친구를 연결해 같이 댄스동아리를 만들고, 근거리에 사는 선생님을 모셔와 댄스 수업을 진행한다. 서로에게 강아지와 고양이 밥을 부탁하기도 하고, 잠시 아기 고양이들을 집에서 케어하고 돌려주며 돌봄을 공유한다. 동업자가 고추밭을 정리하게 되면 같이 일손을 돕고 배추를 뽑아 심플하게 첫 김장도 담아본다. 국을 많이 끓으면 읍에 나오는 길에 친구에게 나눠주고, 친구의 친구가 만든 요리도 나눔받는다. 옆집 할머니가 나눠주신 김치를 받고 할머니께 쓰지 않는 컵들을 드린다(할머니는 너~무 좋아하신다.) 옆집 할머니는 내 반품 택배를 기사가 들고 간 날이면 '내 택배를 누가 들고 갔다'며 꼭 이야기해주신다.(그걸 은근히 다 지켜보고 계신거다. 그렇다. 시골에서는 할머니들이 곧 cctv다...)

  

  매일이 이웃과의 생활이다. 물론 인천에 살때 아랫집, 옆집의 친절한 가족분들과 잘 지내긴 했지만, 이 정도로 서로를 잘 알진 못했던 것 같다. 서울의 오피스텔에 살 때는 그 300세대에 사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롱패딩에 모자를 푹 눌러쓴 날 사람들은 조금 피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난 난생 처음 이웃이 생긴 것처럼 살고 있다. 


  물론 또 다른 솔직한 심경으로, 시골에 1년 넘게 살아보니 그 넓디 넓은 동네를 아무리 앞으로 걸어가도 친구를 만날 수 없는 '익명성'이 그립기도 하다. 연말이면 주황색 불빛을 빛내는 거리를 빠르게 걸어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나 역시 아무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가야할 곳이 있는 사람처럼 걸어다니는 그 기분이 그립기도 하다. 나는 퇴근하고 집에 가기 싫은 날이면 보통 종로 1가에서 광화문까지 걸어가서 교보문고에 잠시 들른 후 근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서대문까지 걸어가서 집에 가곤 했다. 따뜻한 오렌지 빛 불이 켜진 안락한 집에 들어갈 사람, 아니면 중요한 약속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길 즐기기도 했다. 지금 나를 벗어나 아무개로 존재하면서 나는 누구든, 어떤 계급이든, 어떤 스타일이든 될 수 있었다.


  여기서는 나는 그냥 나다. 아무개로 존재하기 쉽지 않다. 나 아닌 누구로 보이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나를 대충 안다. 대신 나도 사람들을 안다. 대충이라도 안다. 그리고 그 중에 내게 정말 좋은 이웃들이 있다. 내가 어려움을 겪으면 도와줄 이들, 고양이 밥을 부탁하고, 부당한 일이 생기면 같이 팔 걷어줄 이들, 음식이 생기면 나눌 이들. 


  그래서 남도 시골 마을에서 처음으로 이웃이 된다는 건 어떤걸까. 그리고 좋은 이웃이란 어떤 것인가- 생각하고 있다. '좋은 이웃'같은 가게를 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은 이웃이란 어떤 이웃일까. 이건 다음시간에 고민해보도록 하자 :) 오늘 글편지는 여기까지. 



짝꿍과 옆집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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