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사이드 스토리
'먹고 사는 이야기' 스핀오프, '마시고 사는 이야기'
술을 마시지 않는 내가 즐기는 마실거리는, 한국 성인이라면 대부분 좋아하는 커피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거의 매일 커피 내리는 일을 하게 되니 커피가 인생에 한자리쯤 차지 하게 되었다. 어딜 놀러가면 그 지역의 맛있는 커피를 꼭 마셔보고, 좋아하는 원두와 커피 맛이 생기고 에스프레소 추출이나 라떼 스팀을 위해 유투부를 자주 찾아보고 연습해본다. 돌아보니 나는 더 맛있는 커피를 위한 여정을 시작한 것 이구나.
설상가상? 짝꿍이 로스팅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커피를 좋아해와서 그런지 너무 재미있어 하는게 보인다. 그는 나보다 훨씬 전부터 커피를 내려 마셨다. 그가 최근에 볶은 과테말라 내추럴을 마시며 이 글을 쓴다. 20g 원두를 핸드 그라인더로 갈때 향이 탁 치고 올라왔다. 얄팍한 향이 아니었다. 이건 분명 맛있는 커피라는 생각이 드는 깊은 향. 그런 향기는 콧속으로 들어오면 뇌 어딘가 꽉 조여놨던 나사를 슬슬 풀어준다. 필터를 뜨거운 물로 먼저 적신 후 곱게 간 원두를 털어 넣는다. 물은 180g, 2분 내외로 추출 끝내기. 그러면 얻게되는 아, 너무 맛있는 필터커피 한잔. 하아- 소리를 뱉게 하는 첫 모금. 그리고 이 한잔이 끝나기 까지 내게 주어지는 '커피가 있는 시간'
인생에 커피가 필요한 이유는, 커피 한 잔을 마실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커피가 꼭 아니어도 좋다. 차 한잔, 술 한잔, 따뜻한 물도 좋겠다. 중요한 건 성인 현대인에게는 꼭 뭔가를 한잔 마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뇌에 조인 나사를 풀고, 잠시 한숨 돌리고, 멀티 태스킹으로부터 멀어지고, 이미 다 돌아간 건조기의 빨래를 잊고, 보내야 할 메일을 조금 미루고. 쉬어가는 거다. 커피가 열어주는 인터스텔라의 다른 차원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식기를 기다렸다가, 한입을 마신다. 둘이어도 좋지만, 혼자인게 더 좋겠다. 그리고 가방에 언제부터 들어가있는지 알 수 없는 책을 펼친다. 아무렇게나 페이지를 펼쳐 한장을 읽는다. 무방비상태에서 어떤 생각이 내게 들어온다. 잠시 허공을 보다가 작고 가벼운 노트를 꺼내 뭔가를 끄적여본다. 그냥 제로인 상태에서 아무거나 적어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무거나. 낙서 같은 가벼운 글도 좋다. 그리고 다시 마시는 커피 한모금. 잠시 멍 때리기. 그런 시간을 갖다 보면 뭔가가 명징해질 때도 있다. 고요하게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이 있고, 끄적이는 글 속에서 나의 문장을 길어올리게 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커피 인터스텔라가 아닌가. 커피 한잔이 쳐 놓은 다차원의 결계. 나는 계속 나인데, 다른 차원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만난다.....?!??!?!
무슨 자기계발서 같기도 신비체험 같기도 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후후. 카페를 하다보면 커피 한잔이 이렇게 과한 의미부며를 하게 되나보다. 그런데 뭐 난 이 의미부여가 맘에 든다. 왜냐면 커피가 있는 시간들이 성인 이후의 나를 만들어왔고 이런 나라도 어쨌든 이런 나를 완성하는 중이니까. 이것도 자기계발론이 아니고서야 무엇일까 흠. ^^
결론없는 오늘 글의 결론은 어쨌든 당신은 이 글을 읽고 정성 들여 내린 커피 한잔이 마시고 싶어졌다는 것 ^^ 우리 카페로 오셔라. 커피 신비체험 커피 인터스텔라! 단돈 사천원!(아메리카노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