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기념일에 난 일하고, 내 기념일엔 또 일한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두 번째 숙제를 제출합니다.
비록 아직은 서툴고 부족한 글이지만,
언젠가 나만의 언어로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진심을 다해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아직 몇 번 써보지 않은 중수필이라 미숙한 점이 많지만, 끝까지 읽어주신다면, 글 안에 담긴 제 진심만큼은 조금이나마 전해지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매일, 조금씩 더 나아지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매일 누군가의 하루를 만든다.
그 하루의 시작과 끝, 행복과 기억에 작은 한 끼가 자리 잡는다. 그런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바로 나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셰프는 굶을 걱정은 없지 않아요?"
"재료도 풍부하니까 언제든지 원하는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잖아요."
나 역시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요리는 손쉽고 즐거운 일이리라, 내 생각은 단순했다.
하지만 정작 요리를 직업으로 삼고 나서야 깨달았다.
셰프로 산다는 것은 내 식사가 늘 '그다음'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남들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 나는 아직 그 음식을 완성하기 위해 불 앞에 서 있다.
칼끝으로 재료를 다루며 내 마음과 감정도 함께 다듬는다.
손님들의 특별한 날, 그들의 기념일을 위해 요리를 준비할 때면 더욱 정성을 쏟는다.
누가 봐도 특별해 보이는 음식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정작 내 생일이 언제였는지는 희미해져 버렸다.
바쁜 하루에 내 시간을 챙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호주에 와서 처음 주방에 들어섰을 때, 나는 단지 열심히 하면 된다고 믿었다.
낯선 땅, 낯선 언어, 낯선 재료들 속에서 하루하루 버텨 내며 손끝을 익혔다.
서툴던 내 손길도, 느리던 걸음도
그 시간이 쌓여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말한다.
"이제는 성공했네요."
"이민 와서 이렇게 자리 잡기 쉽지 않은데 대단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주방 타이머가 울릴 때마다 수십 번씩 움직여야 하고, 수백 그릇의 음식에 신경을 쏟으며
'맛'과 '책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내 삶의 무게를.
아이러니하게도 요리할 때만큼은
몸과 마음의 고단함이 잠시 뒤로 물러난다.
갱년기의 불편함도, 감정 기복도 조용히 사라진다. 몸은 지쳐 있지만 손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정신은 오히려 더 맑아진다.
주방 안에서는 내 기분의 흔들림 마저도 사치가 된다.
그렇게 하루를 견뎌내고 나면
내가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아내는 조용히 저녁을 준비해 둔다.
늦은 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따뜻한 국이 김을 내고,
반찬 하나하나에는 정성과 사랑이 스며 있다.
아들이 아직 잠들지 않았다면,
졸린 눈을 비비며 조심스레 내 곁에 앉는다.
혼자 식사하는 아빠가 안쓰러운 걸까,
그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일까.
우유 한 잔을 데워 마시며 말없이 옆을 지켜주는 그 모습에 나는 살며시 아들의 볼을 어루만진다.
그 짧은 순간이, 내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위로가 된다.
셰프로 산다는 것은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채우기 위해
내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일이다.
하루가 늘 뒤로 밀리더라도,
늦은 밤 식탁을 지켜주는 아내와 아들이 있어
나는 내일도 다시 주방으로 향한다.
그 따뜻한 존재들 덕분에
오늘도 나는 묵묵히 불 앞에 선다.
이 글은, 미야 작가님께서 따뜻한 마음으로 들려주신 진심 어린 강의의 마지막, 조용히 손에 쥐어주듯 내주신 ‘작은 숙제’에서 시작된 글입니다. 마치 마음속 깊은 곳에 부드럽게 내려앉은 한 마디처럼, 그 순간의 울림이 오늘 이 글을 써 내려가게 했습니다.
작가님의 강의 내용을 링크했습니다.
https://brunch.co.kr/@miya/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