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끝에 맛보다 감정을 먼저 만나는 샐러드
고추와 오징어 샐러드는, 한 접시 안에 기다림과 불, 그리고 사람의 성격이 모두 들어 있는 음식이다.
고추를 다질 때부터 이 요리는 이미 성급함을 거부한다. 씨를 털어내고, 손끝에 남는 매운 기운을 잠시 견디는 일. 파와 마늘을 섞고 레몬을 짜내는 동안, 부엌에는 서서히 방향성이 생긴다. 이 요리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떤 얼굴을 하고 테이블에 올라갈지 조금씩 드러난다. 강하지만 날카롭지 않게, 매콤하지만 혼자 튀지 않게...
오징어는 늘 정직하다. 불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조금만 오래 두면 질겨지고, 방심하면 순식간에 성질을 부린다. 그래서 센 불, 짧은 시간, 인생의 어떤 순간들처럼 기회는 길지 않고 타이밍은 명확하다. 오징어가 오그라들며 익어가는 그 몇 분은, 망설일 틈 없이 결단해야 하는 순간을 닮아 있다.
하지만 이 요리의 진짜 핵심은 굽는 시간보다 재워두는 시간이다. 불을 지나온 오징어를 고추 양념에 담가 실온에 두는 30분. 이때 맛은 급하게 완성되지 않는다. 뜨거웠던 오징어가 식으며 양념을 받아들이고, 고추의 매운 기운도 조금씩 둥글어진다. 삶도 그렇다. 불같은 시기를 지나온 사람은, 시간을 통해서만 자기 자리를 찾는다.
루꼴라는 이 모든 과정을 조용히 감싸는 존재다. 화려하지 않지만, 없으면 허전한 맛. 인생에서 그런 사람들처럼, 늘 곁에서 균형을 잡아준다. 씁쓸함이 과해 지지 않게, 산미가 혼자 나서지 않게...
이 샐러드는 복잡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강한 재료들이 모였지만, 누가 중심인지 굳이 정하지 않는다. 불을 쓰고, 시간을 쓰고, 그다음에는 손을 떼는 음식이다.
한 입씩 천천히 씹다 보면 맛보다 먼저 감정이 반응한다. 그래서 접시 앞에서는 말을 줄이게 된다.
씹는 동안에는 생각도 같이 느려진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요리초보도 헤드셰프가 되는 세상에서 제일 만들기 쉽고 맛있는 고추와 오징어 샐러드 만들기.
(Chilli and Calamari Salad)
준비 시간 1시간 10분, 조리 시간 5분, 6인분
● 재료
•빨간 고추 2개, 씨 제거 후 잘게 다진 것
•새눈고추 또는 청양고추 2개, 씨 제거 후 잘게 다진 것
• 대파 1개, 얇게 썬 것
• 마늘 2쪽, 으깬 것
• 큰 레몬 1개, 즙을 낸 것
• 발사믹 식초 1큰술
•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50ml
• 작은 오징어 1kg (손질 후 다리는 따로 보관)
• 루꼴라 50g (곁들 임용)
■ 만들기
• 1단계
큰 세라믹 볼에 고추, 파, 마늘, 레몬즙 1/4컵, 식초, 올리브오일 1/3컵을 넣습니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잘 섞어줍니다.
• 2단계
오징어 목 안쪽 살에 십자 모양으로 칼집을 내고 가로로 두툼하게 채 썰어줍니다. 오징어 채와 다리를 볼에 담고 남은 올리브오일 1큰술을 뿌려줍니다.
• 3단계
기름칠한 바비큐 그릴을 센 불로 예열합니다. 오징어 채와 다리를 올리고 각 면을 1~2분씩 또는 오그라들고 속까지 익을 때까지 굽습니다. 구운 오징어를 고추 양념에 넣고 실온에서 30분간 (냉장고에서는 더 오래) 재워둡니다.
(프라이 팬에 노릇노릇하게 구우셔도 됩니다.)
• 4단계
접시에 루꼴라를 깔고 그 위에 구운 오징어와 고추 양념을 얹어주면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