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중국인 몽타주일 뿐인데…
"그날, 내 얼굴이 만든 가장 미묘한 오해"
몇 주 전, 우리 팀 레스토랑에
앳돼 보이는 아시안 여직원이 새로 들어왔다.
FOH, 즉 Front of House 쪽. 손님 응대 담당이다.
아시안 직원이 거의 없는 팀이라 그런지 괜히 반가웠다.
"같은 아시안인데 내가 좀 더 챙겨줘야지~"
자기 합리화 90%, 민족애 10% 섞인 이상한 정의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정든 낯 같고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내가 다가가면 시선 회피.
인사하면 희미한 미소 후 급 후퇴.
대화 시도하면 자연스럽게 딴청.
딱 봐도 "이 아저씨랑은 눈도 마주치지 말자!" 전략이 착실히 실행 중이었다.
처음엔 당황했다.
'내가 뭐 실수했나?'
'혹시 말투가 불친절했나?'
'아니면... 입에서 냄새라도...?'
머릿속에서 자책 루프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결국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을 확인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냥 평소의 나였다.
심지어 이날은 나름 신경 써서 미소까지 장착했는데.
그녀와는 별다른 접점도 없었고,
나는 그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다가갔었는데
점점 혼자 민망해지고,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내 안의 자책과 어색함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밀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주방 집기를 정리할 일이 생겼다.
드디어, 대화의 찬스!
(하지만 나도 살짝 긴장했다. 이 타이밍이 또 어긋나면, 정말 회복불능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으니까.)
나는 조심스럽고도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어떻게 돼요? 어디서 오셨어요?"
그녀는 약간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 대만이요."
그 순간... 퍼즐이 착착 맞기 시작했다.
'아... 그녀는 처음부터
나를 중국 출신으로 오해했던 거구나...
그것도 꽤 엄격한 배경이 있는 중국 공산당원으로...'
그녀의 경계심과 회피,
그 모든 눈치 작전이 순식간에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녀 입장에선 나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누군가'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잠깐이었지만, 마음이 묘하게 저려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어디 출신으로 보이는가'가 먼저 판단의 기준이 되는 현실.
익숙하지만, 여전히 낯선 기분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 그동안 중국 분인 줄 알고... 죄송해요..."
그 말속에는
"그동안 내가 왜 그랬는지... 제발 이해해 줘요..."라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나도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론 참 많은 생각이 스쳤다.
하긴 내 생김새란 게...
길거리만 나가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확신에 찬 눈빛으로
"니하오~!"를 날리고
심지어 중국어로 길까지 묻는 얼굴이다.
실제로 몇 년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시드니 강연 일정이 있어
아침 첫 비행기를 타려 골드코스트 공항에 갔다.
탑승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내 옆엔
시드니행 단체 중국인 관광객 무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뭔가 시끌벅적하다 싶었는데,
갑자기 중년 투어 가이드가 내 앞에서 손짓을 시작했다.
"왜 안 와요?"라는 표정과 함께
나를 향해 손을 휘적이며 부른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고
'관광객 아니에요!!!~'라는 제스처를 했지만
그는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며 격앙된 톤의 중국어로 뭐라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이어폰을 빼고 말했다.
"Sorry, I'm not Chinese, and I'm not part of your tour group."
말 끝에 약간의 억울함과 자존심도 묻어 나왔다.
그제야 그도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헛웃음 섞인 "쏘리쏘리~"를 남기고 돌아섰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다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었지만,
마음 어딘가에는 묘한 씁쓸함이 감돌았다.
'나는 한국 사람인데... 지금은 그냥 누군가의 "실수"로 규정된 사람이구나.'
어쩌면, 나는 이민자의 삶 속에서
늘 누군가의 '착각' 속에 존재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게 악의가 없더라도,
이름보다 생김새가, 마음보다 오해가 더 먼저일 때가 많았다.
누가 봐도 내 얼굴은 '중국 본토 100퍼센트 몽타주'인가 보다.
그녀가 날 오해한 것도 어쩌면 그녀 잘못이 아니라 그냥... 내 유감스러운 외모의 승리(?) 일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그녀는 조금 더 편해진 눈빛으로 내게 인사했고,
나도 이전보다 조심스러운 거리감을 두게 되었다.
우리는 아주 조심스럽고도 절묘하게,
'내가 누군지'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문화의 이해란... 때로는 스테이크처럼 뜨겁고,
크림소스처럼 미끄러우며,
파스타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리조또처럼 끈기 있게 저어야 겨우 형태를 갖춘다.
겉은 티라미수처럼 달콤해 보여도,
속은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고 씁쓸할 때가 많다.
그리고 사람마다 가진 정체성이란...
때로는 얼굴 하나로 결정되기도 하고,
말보다 먼저 오해로 도착하는 거울 같기도 하다.
겉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속엔 전혀 다른 언어, 역사, 감정이 담겨 있다.
그 모든 복잡한 풍경 한가운데,
정작 아무 정치색도, 악의도, 의도도 없이
그저 요리만 하며 살고 싶었던 한 사람.
중국도, 대만도, 한국도 아닌
단지 '나'로 살고 싶었던
요리하는 이민자 한 명.
내 손끝에서 피어나는 향과 맛으로
사람의 마음을 데우고 싶었던,
그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인생'을 요리하고 싶었던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