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모든 것을 '잘' 해야 하는 것인가

한 번 잘 생각해 봅시다

by 진우리

잘 잤어, 잘 왔어, 잘 가, 잘 지내, 잘 먹었어, 잘살아, 잘 입어, 잘 샀네, 잘 맞네, 잘 봐, 잘 자, 잘 있어.

우리는 하루를 열고 닫을 때도, 사람을 맞이하고 보낼 때도, 마음을 전할 때도 유난히 같은 말을 쓴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무엇이든 잘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일도, 관계도, 쉬는 것도, 감정도 잘해야 하는 대상이 된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잘 버텨야 하고, 잘 견뎌내야 하고, 가능하다면 잘 웃기까지 해야 한다. 그리고 하루의 끝에는 어김없이 묻는다.

나는 오늘 잘 보냈나.


꽤 잔인한 질문이다. 하루 전체를 하나의 결과로 일축해 버리기 때문이다. 하루가 모여 이어지는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은 언제부터 이렇게 무거워졌을까.

어릴 때의 '잘'은 훨씬 단출했다. 넘어지지 않고 엄마에게서 아빠에게로 가면 됐다.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면 잘 먹은 거였고, 방학숙제를 하루 만에 해내면 진짜 잘한 거였다. 그 무렵의 잘은 기준이라기보다 '성장'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잘은 점점 높은 곳으로 옮겨갔다. 남들보다 나은 결과를 내야 일을 잘하는 것이고,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아야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이고, 더 많은 연봉과 좋은 집에 살아야, 더 큰 차를 가지고 하차감을 느껴야 잘 사는 것처럼 삶을 '평가'하는 말이 되어갔다. 우리는 그 평가를 스스로에게 또는 남들에게 매일같이 적용하며 살기도 한다.


그래서 잘하지 못한 날은 단지 피곤한 하루가 아니라 실패한 하루가 되기도 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날은 의미 없는 날이 되고, 쉬기만 한 날은 게으른 날이 된다. 잘이라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날 하루 전체가 잉여로운 하루처럼 느껴지며 시간을 버렸다고 느껴진다.


왜 우리는 모든 것을 '잘'해야 하는 것인가.


만약 '잘'이라는 단지 그 한 글자를 잠시 내려놓고 다른 관점에서 하루를 살아본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잘 대신 계속이라는 말을 떠올려보았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았느냐가 아닌, 오늘도 계속 살았느냐고 물어본다. 오늘 나는 중간에 멈추지 않았는지, 완벽하지 않아도 이어 갔는지, 도망치고 싶었지만 하루를 끝까지 데리고 집까지 왔는지를 묻는다. 결과를 요구하지도 않고, 태도를 묻지 않는다. 그냥 내가 어땠는지만 확인한다.


잘 대신 무사라는 단어로 하루를 살아본다. 오늘 하루가 무사했는지, 큰 사건 사고 없이, 마음이 완전히 부서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정도로만 지나갔는지를 묻는다. 무사는 대단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 남들과 비교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침에 눈을 떠서 지금까지 나의 몸과 마음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어떤 때는 잘 대신 솔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날이 있기도 하다. 오늘 나는 내 감정에 솔직했는지, 괜찮지 않은 것을 괜찮지 않다고 얘기했는지, 힘들다는 걸 스스로에게만큼은 인정했는지. 솔직한 하루는 사실 성과가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상당히 큰 일을 해낸 날일수도 있다. 그런 날은 힘들지만 후련하다.


잘하고 싶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참고 산다. 울고 싶을 때 애써 웃었고, 쉬고 싶을 때 어금니를 꽉 깨물며 버텼고, 그만두고 싶을 때 이유를 만들어 남았다. 잘해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제는 잘 말고 다른 단어가 필요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버텼다, 지나왔다, 견뎠다, 멈추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다, 용기를 내었다, 새롭게 시작했다 와 같은 말들.

이 말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정직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날을 사실 우리는 이 단어들에 더 가깝게 살고 있다.


잘하지 않아도 삶은 이어진다. 잘하지 않아도 계속되는 관계가 있다. 잘하지 않아도 내일은 온다.

꽤 너그러운 삶이다.

어쩌면 우리는 잘 살아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도 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고, 좀 느려도 괜찮고, 달라도 괜찮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잘이라는 앞에 붙는 그 말을 뒤에서 쫓아가느라 나의 기본값을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나의 기본값을 찾고 정의하는 것, 그게 더 중요하다.


자, 그런 의미로 오늘 하루를 다시 돌아본다.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고, 특별한 칭찬도 없었고,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침에서 밤까지 왔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이 글을 쓰고 읽고 있기에 그것으로 충분한 하루를 보낸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이렇게 말해도 좋겠다.

오늘 나는 잘하지는 못했지만, 무사했다.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계속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했다.


충분히 괜찮은 하루였다.

이토록 멋진 삶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