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꽤 소소하고 꾸준한 취미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주차장 감상이다.
물론 아파트나 큰 건물 내부 공동 주차공간의 빽빽하고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주차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난히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곳은 주택이나 작은 건물에 보너스처럼 더해 있는 사람 냄새나는 그런 차고를 좋아한다. 여행을 하며 익숙하지 않은 도시의 낯선 풍경들 속 주차 공간을 보면 같은 집이 하나도 없다. 차고 주인의 취향이나 성격들이 반영된 공간들에 색다른 재미와 깊은 인상을 받기도 한다. 종종 떠났던 일본 소도시 여행 중 만났던 자동차와 사람 냄새가 공존하면서 멈춰 있지만 흐르고 있는 풍경들을 나누고 싶어졌다.
종종 여행을 떠나는 일본에는 내 마음에 드는 아기자기한 주차장 풍경들을 접할 때가 많이 있다. 소도시뿐만 아니라 대도시에서도 유난히 차고와 공동 주차장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일본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특성 때문일 수도 있는데, 특히 주택 옆에 귀엽게 붙어있는 공간들에는 경차들이 많이 보였다.
일본에서는 경차의 비율이 무려 전체 자동차의 35%를 차지한다고 한다. 또한 일본인들은 우리나라보다 더 험한 산악 지형이 많고 평지가 적어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데 익숙하다고 들었다. 좁은 길에서 주차를 잘못하면 벌금을 고지받기 때문에 공간을 덜 차지하는 작은 경차가 선호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차고가 많은 이유 중 차고지 증명제도가 큰 요인이기도 한데, 알아보니 일본에서는 1962년부터 차고지가 없으면 차를 살 수 없게 되었다. 주거지 반경 2km 내에 주차 공간을 확보해야 차를 구매할 수 있다니, 주차장에 진심일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어느 식당에서 창가에 앉아 있는데 노랗게 물들어가는 햇살이 예뻐서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식당 앞으로 걸어가 전경을 찍으려 하는 순간, 조금 전 들어갈 때만 해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았던 차고가 보였다.
그리고 나이 든 강아지가 느릿느릿 한 발씩 옮기며 주차장에 놓인 본인의 방석 위를 빙빙 돌며 천천히 앉는 그 몇십 초 간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아지는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한 듯 자세를 잡고 코로 한숨을 내쉬고는 금방 새근거리며 휴식을 취했다. 너무나 평온한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몇 해 전 떠나보낸 우리 강아지의 모습이 떠올라 아련하고 애틋해짐을 느꼈다. 행복해 보이는 시간을 방해할 수 없어 멀찍이 서서 바라봤다.
주차장이라는 공간은 참 오묘하다.
금속의 차가운 존재가 따뜻하게 풍경 속에 녹아든다. 그게 자동차이든 자전거이든, 저곳에서 이곳으로 데려다준다. 사람이 없던 곳에 있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마치 강아지가 자기 자리를 찾아와 평온함을 속에 쉬면서 누군가를 기다리듯, 주차장에는 그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들이 멈춰있다가 흐르기를 반복한다.
삶은 이어지고, 주차장을 통해 마치 다른 세계로 가는 포털처럼 같은 사람이 역할만 바뀌어 집으로 들어간다. 사회에서의 직함을 떼어내고 아빠 엄마로, 아들로, 딸로, 배우자로, 연인으로, 친구로, 집사로 역할을 바꿔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주차장을 감상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의 핵심은,
공간을 보면 그곳에 머무는 사람이 느껴진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다. 마치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 앞 바닥에 그어져 있는 선 뒤편에서 바라보듯, 시선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며 감상한다. 한걸음 뒤에서 그림을 보듯 차고와 집, 그 주변까지 시야를 확장시켜 가며 바라보면 원래 알고 지낸 사람의 공간을 마주한 것 같은 익숙한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 공간에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의 주인은 어떤 성격을 가졌을지, 어떤 취미를 가졌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꽤 재미가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의 공간에 불쑥 들어가면 안 된다. 적당하게 건강한 거리를 두고 미묘한 묘미를 찾는 것. 그것이 주차장을 감상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길을 걷다 마주하는 비어있는 차고를 보며 생각했다.
길을 떠난 이는 다시 돌아온다. 비어있던 공간이 다시 채워지고 채워진 공간만큼 새로운 이야기들이 더해진다. 같은 모습의 사람이 없듯이 같은 풍경의 주차장도 없다. 나의 목표 중 하나는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주차 공간이 담고 있는 사람 냄새와 그 사이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다. 무심코 스쳐가는 공간 속 숨어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한 공간을 사진으로 담고, 글로써 사소한 것들에서 소중함을 이끌어내보고 싶다.
앞으로도 더 많은 도시들에서 나의 주차장 프로젝트를 이어갈 것이다.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공간에서 사람의 온기를 발견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