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식

by 호쿠시

20년 지기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떠났다는 표현보다 ‘등졌다’는 말이 더 와닿는 것은, 그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등졌건 떠났건 이제 친구는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화내고 싶어도 듣지 못한다. 그저 속 편하게 혼자만의 평화 속으로 들어간 듯, 환하게 웃던 그 미소 그대로 멈춰버렸다


가까운 이의 그러한 준비 없는 죽음을 오롯이 경험하며 느껴지는 말로 설명하기 참 어려운 그 상실감과 허무함, 미안함과 답답함, 화도 났다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다가, 휘이잉 부는 바람처럼 공허한 감정은 견뎌내기 힘들다. 이 죽음에 대하여 나의 마음을 글로서 남긴 다는 것도 꽤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아직도 친구의 부재가 믿기지 않는다. 마치 외국에 나가 어쩔 수 없이 연락이 되지 않지만,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믿음, 자리 좀 잡고 정리가 되면 연락 오겠지 하는 그런 기분이 든다. 친구를 보내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나의 생각을 남기는 일들이 어쩌면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그 남겨진 가족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몸에 난 상처는 꿰매던 약을 바르던 할 수 있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도리가 없다. 깁스를 할 수도, 감염을 막기 위해 매일 소독할 수도, 통증을 완화할 수도 없는 것이다.


친구와 대학 입학 때 처음 만나 같은 동아리에 있었지만, 정말 다른 성격으로 서로에게 큰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캠퍼스엔 같은 과에 친구와 나밖에 없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그날 우리는 의외로 잘 맞는 구석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잊고 지냈던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친구는 서로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던 시절, 각자의 밑바닥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함께 겪어냈던 사람이었다. 작은 고시촌의 방에서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위해 젊은 날을 아까운 줄 모르고 쏟아붓고 있었다. 그 시절을 보내며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색하게 숨을 들이마실 땐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고, 쳐진 등만 봐도 실망의 크기를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를 보며 실패의 위안을 삼고 안주하게 되는 것을 깨닫고, 결국 우리는 각자 다른 길을 찾아 떠났다.


서로 뒤늦게 시작한 각자의 직장 생활은 하루를 접어 달리듯 빠르게 시간이 흘러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며 간간히 연락하고 만날 때의 그 반가움과 익숙함에 안심했다. 그런 날들 사이에 내 인생 처음으로 친구와 잘 어울릴 것 같은 누군가를 소개해줬다. 나와 같이 회사를 다니는 동료였고, 좋은 성품과 배려를 갖춘 그 면모에 어느덧 두 사람은 사랑을 가꾸며 가족이 되었다. 또 어느 날은 아빠가 된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가끔씩 전해오는 소식들이 좋은 얘기들이라 또 안심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친구의 아이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함께 행복해졌다. 그렇게 '연락 한 번 해봐야는데', '다음에 한 번 봐야지' 하던 게 몇 개월, 1년, 2년이 우습게 지나가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생각으로 지냈다. 마음만 먹으면 20분도 안 걸리는 곳에 살며 연락도 뜸했다. 일상의 업데이트들은 내 동료이자 친구의 아내인 제수씨에게 듣게 되니, 친구는 육아하며 바쁘겠지 하고 짐작하며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몇 해 전, 친구의 누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로부터 얼마 후 어머님도 돌아가셨다. 그때 만났던 친구는 비통함에 두 눈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많이 놀랐고, 걱정되었다. 친구의 차를 옮겨줄 일이 있어 시동을 걸었을 때 계기판에 그렇게 많은 차량 경고등이 떠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다. 몸과 마음이 수습되면 다시 얘기해야겠다고 미루고, 그 후엔 아물어가는 친구 마음이 다칠까 배려한다는 이유로 아무 일 없듯 평소처럼 대했다. 그렇게 친구는 누구에게도 터놓고 말하지 못한 채 가버렸다. 그 속에 무엇이 있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친구가 아무 말도 없이 '.' 점 하나만 찍어서 보냈던 문자를 '잘못 보냈나' 하고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모든 것이 신호같이 느껴져 괴롭고 힘들었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씩이나 한다고 많은 것들을 그렇게 뒤로 미루었을까.


그리고 어느 날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제수씨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부르르 울부짖듯이 떨고 있는 화면을 보며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받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아니 받고 싶지 않은 기분을 느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있는 자기 사진 아래를 뛰어다니는 세 살 배기 아이와 아직 젊다 못해 어린 아내를 두고 세상을 등졌다. 우울증이었고, 주변에서 심각하게 여겨질 만큼 눈에 띄지 않았다고 했다. 너무도 가볍게 한 단어로 얘기하는 게 싫었지만 '우울증'이라는 말에 더 할 말이 없어졌다. 경험해보지 않은 우울증을 이해한다고 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었다. 친구의 죽음에 대한 퍼즐을 맞춰가다 보니 더 많은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그게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책감과 어떤 부채의식 같은 것들로 제수씨와 아이를 보는 것도 마음이 아렸다.


친구의 장례식 이후로 애써 생각하지 않으며 보내던 어느 날의 새벽이었다.

꿈을 꾸었다. 어떤 비행장 격납고 같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낙하산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철제 격납고에서는 이륙을 준비하는 비행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 역시 스카이다이빙을 앞두고 두근거리고 있었는데, 격납고 안쪽에서 뒷 문 쪽으로 흰 셔츠와 흰 바지, 흰색 운동화를 신은 친구가 걸어 나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너도 이 비행기를 타는 거냐?" 며 어깨를 둘렀다. 친구는 말없이 턱짓으로 담배나 피우러 가자고 하는 예의 그 동작을 했다. 나는 담배는 끊었지만, 이상하게 한 대 피워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같이 담배를 태우러 격납고 뒤편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비행기들이 이륙해서 가는 것을 어깨너머로 뒤돌아 보다 어느 익숙한 공간으로 장면이 바뀌었다.

친구와 20대의 어느 날을 보냈던 그 고시촌의 작은 방에서 늘 같이 끓여 먹던 버너에 냄비로 무언가를 끓이며 20대의 풋풋했던 친구의 모습과 마주 앉아있었다. 친구는 말없이 또 나에게 담배를 건네주었는데, 불을 붙이다가 자세히 보니 흰색 종이를 둘둘 말아놓은 것이었다. 펼쳐보니 볼펜으로 급하게 그린 듯한 하트 모양이 있었다. 뜨거운 불꽃이 손에 닿자 그때 나는 이것이 꿈인 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그리고 무언가 우물쭈물해 보이는 말없는 친구의 모습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야!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는 거지? 빨리 말해!"


친구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며 턱 짓으로 내 손에 둘둘 말아놓은 종이를 가리켰다.

종이를 펴보자 볼펜으로 급하게 그려놓은 듯한 하트 모양이 그려져 있었고,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현실의 나도 잔뜩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더욱 조급해졌다. 왜냐하면 예전부터 익숙한, 할 말이 있는 그 표정을 스물여섯의 그날의 모습을 한 친구가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아직 할 말 남았잖아! 나 꿈에서 깬단 말이야! 제발 빨리 말해!"


친구는 매우 힘겹게 입을 떼며 말했다. 그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되게 미안한 부탁을 하듯, 천천히.


"아 좀.. 가끔 함 봐주라."


나는 점점 밝아오는 의식을 느끼며 너의 아이를 잘 돌봐주겠다고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눈이 떠졌다.

그렇게 친구는 정말 떠났다. 땀이 비 오듯 나있었다. 한참을 천장을 바라보면서 눈만 끔뻑거리며 잊지 않으려 애썼다. 근데 잊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이 꿈은 잊힐 꿈이 아니라는 것 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후 하는 깊은 한숨과 함께 뭔가 같이 뱉어진 것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태어나 처음 해본 신기한 경험이었고, 그동안 꾸었던 꿈과는 확실히 무언가 달랐다.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 그만이지만, 난 친구가 마지막 인사를 하러 나에게 왔다 갔다고 믿고 있다.


친구의 죽음과 그날의 꿈 이후로 궁금한 사람이 떠오르면 바로 연락해보고 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만날 약속을 잡고 만난다. 현재를 소중히 하고,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를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나의 친구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던 시절을 함께 보냈던 것이 아닌, 무한한 꿈과 기대, 펼쳐져있는 가능성의 시간들을 함께 했던 것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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