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군만두를 닮은 맛, 엠빠나다

(Empanada)

by 올라소피

고등학교 시절, 수업이 끝나면 자석에 이끌리듯 학교 앞 분식집으로 향하곤 했다. 뽀얀 김이 오르던 찐만두와 고소한 기름 향을 품은 군만두 한 접시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우리 가족 단골 중국집에서 서비스로 나오던 바삭하게 튀긴 군만두는 늘 작은 경쟁이었다. 식구가 많았던 우리 집에서는 한 사람당 하나씩 돌아가던 그 만두를 놓치지 않으려 젓가락을 재빨리 움직이던 풍경까지 아직도 또렷하다.


음식은 놀랍도록 오래 기억된다. 맛보다 먼저, 그때의 우리가 함께 남는다.


타국에서 처음 마주한 ‘엠빠나다’에 마음을 빼앗긴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바삭한 껍질 너머로 오래전 군만두가 조용히 되살아났으니까.


내가 일하던 인터내셔널 마트의 보스는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세계 각국의 음식을 두루 경험해 온 그의 미식 이야기는 늘 흥미로웠지만, 엠빠나다와의 만남만큼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골프 모임을 마치고 우연히 들른 남미 식당에서 맛본 단 한 입이 그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고 했다. 운동 뒤 허기를 달래주던 그 바삭함을 잊지 못해 ‘진짜 엠빠나다’를 찾아 여러 식당을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음식이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무를 수 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오랜 탐색 끝에 마트에 새로운 메뉴로 엠빠나다가 들어오던 날, 우리는 함께 시식 자리에 모였다. 대형 오븐에서 막 꺼낸 엠빠나다는 노르스름하게 익어 있었고, 가까이 다가가자 고소한 향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손으로 집어 드는 순간 전해지던 따뜻한 온기 덕분에, 아직 한 입도 먹지 않았는데도 이미 마음이 조금 열리는 기분이었다.


처음 고른 것은 양파와 치즈가 들어간 푸가세타였다. 달콤하게 익은 양파와 부드럽게 녹아든 치즈가 어우러져 자극적이지 않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래 머물고 싶은 늦은 오후의 부엌처럼, 조용히 마음을 풀어주는 맛이었다.


이어 맛본 스파이시 스테이크는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큼직하게 씹히는 고기에서 번지는 육즙과 뒤따라오는 매콤함이 입안을 또렷하게 깨웠다. 낯선 음식인데도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져, 처음 만난 사람과 뜻밖에 말이 잘 통할 때처럼 금세 거리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쉬어 가듯 집어 든 햄과 치즈는 예상 가능한 조합이 주는 안정감을 품고 있었다. 짭짤한 햄과 고소한 치즈가 만들어내는 단순한 조화 속에서,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낯선 자리에서 발견한 작은 익숙함이었다.


시식에 참여한 엘살바도르에서 온 직원 H는 엠빠나다가 자신과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라고 소년처럼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열명이 넘는 대가족 속에서 자라 비교적 저렴한 음식이었음에도 마음껏 먹어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시식하는 내내 무척 행복해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오래전 군만두를 기다리던 기억이 겹쳐졌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왔지만 음식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닮은 추억을 발견했고, 그 순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날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풀드 BBQ 포크였다. 오랜 시간 공들여 결대로 찢어낸 돼지고기에는 은은한 스모키 향이 배어 있었고, 달콤한 소스가 그 결 사이를 천천히 채우고 있었다. 천천히 씹을수록 맛이 깊어졌고, 이상하게도 마음까지 느슨해졌다. 음식이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말이 이런 뜻일까 생각했다.


엠빠나다는 스페인어 ‘Empanar’, 즉 ‘빵으로 감싸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름처럼 반죽은 고기와 채소, 치즈 등 서로 다른 재료를 품어 하나로 만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도 이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 말이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이 음식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었다. 오후 네 시 반쯤, 슬며시 허기가 찾아오는 시간이면 동료들은 한 손에 엠빠나다를 들고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대화는 끊기지 않았고, 손짓과 웃음이 그 자리를 채웠다. 어제의 작은 실수는 농담이 되었고, 낯설던 이름들은 조금씩 익숙해졌다. 엠빠나다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사람들을 같은 자리로 불러 모으는 조용한 신호 같았다.


한식의 만두가 얇고 찰진 피로 속을 은은히 드러낸다면, 엠빠나다는 두툼한 반죽으로 재료를 단단히 감싸 안는다. 만두가 오래된 기억을 불러오는 그리움의 맛이라면, 엠빠나다는 낯선 타국 생활 속에서 마음을 기대어도 좋다고 말해 주는 다정한 위로에 가까웠다.


유난히 바쁜 날이면 동료와 나는 구내식당에 부탁해 엠빠나다를 몇 개 더 준비해 두곤 했다. 바삭한 껍질을 베어 무는 순간 들려오던 작고 경쾌한 소리, 그리고 그 온기를 나누며 이어 가던 대화들. 돌이켜 보면 우리가 나누었던 것은 간식이 아니라, 서로를 조금 더 알게 되고 또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인터내셔널 마트라는 작은 세계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낯선 음식 한 입이 사람 사이의 거리를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좁혀 준다는 것을. 그리고 식탁 위에서 시작된 그 작은 연결이 결국 우리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