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átano)
바나나가 밥 옆에 놓여 있었다.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 나는 잠깐 멈춰 섰다.
‘왜 바나나가 반찬이지?’
구내식당 트레이 위에는 노릇하게 튀겨진 바나나가 고기와 밥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디저트도 아니고, 장식도 아니었다. 정말로 ‘반찬’이었다.
Produce Section 매니저가 웃으며 말했다.
“그거 바나나 아니에요. 플라타노예요.”
플라타노(Plantain). 히스패닉 요리에서 사용하는 ‘요리용 바나나’였다.
생으로 먹으면 거의 달지 않고 단단하다. 하지만 기름에 튀기면 감자처럼 고소해지고, 충분히 익으면 설탕을 넣지 않아도 디저트처럼 달아진다.
같은 모양인데도,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남미에서는 밥이랑 고기 옆에 항상 올라가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 입 베어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완벽하게 취향인 맛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달콤함이 짠맛을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이를 부드럽게 메우고 있었다. 낯설지만,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지금 새로운 맛을 배우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기준을 배우고 있다는 걸.
히스패닉 식탁에서 플라타노는 과일이 아니라 거의 주식에 가깝다. 그래서 마트에서는 고객과 직원사이에 이런 질문이 오간다고 했다.
“바나나 있어요?”
“플라타노요, 바나나요?”
이 질문은 의미는
“달콤한 생과일 바나나를 찾는 건가요?
아니면 요리용 플라타노를 찾는 건가요?”
플라타노는 히스패닉 식탁에서
‘과일’이 아니라 ‘전분 기반 주식 재료’이기 때문에 마트에서 반드시 구분해서 묻는 것이라고 한다.
같은 모양이지만 전혀 다른 존재.
우리는 종종 익숙한 형태를 보면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는 걸 사실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는 또 한 번 ‘플라타노’를 만났다. 이번에는 사람의 모습으로.
특별 이벤트용 상품 패키지 100개를 준비하던 날이었다. 손이 모자라 고민하고 있을 때, 매니저 M의 소개로 히스패닉 직원 A에게 협조를 구했다. 그녀는 풍선 아트도 잘하고, 마트 각종 행사의 디스플레이와 꽃 코너를 맡아 늘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손이 빠르고 감각이 좋아서, 부탁하면 분명 잘 해낼 거라 생각했다.
하루 종일 함께 작업을 마치고, 다음 날 나는 작은 헤어 액세서리를 선물로 준비해 건넸다.
“나 혼자 했으면 훨씬 오래 걸렸을 거야. 정말 고마워. 큰 도움이 됐어.”
그녀는 씩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다음 날, 내가 선물을 건넨 사람이 정작 내가 도와달라 부탁했던 A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입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온 말은 단 하나였다.
“OMG.”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침착한 척 다시 선물을 포장하고, 진짜 A에게 제대로 건넸다. 다행히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받아주었다.
이상하게도, 처음 착각했던 B와의 관계가 그날 이후로 조금 달라졌다. 작은 선물 덕분이었을까? 전에는 눈인사만 나누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부터 먼저 인사를 건넸다. 딸이 키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 사소한 일상도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는 선물을 주고받기 전까지 한마디도 해본 적이 없던 사이였다.
내 실수는 관계 하나를 더 열어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두 사람은 충분히 헷갈릴 만했다. 같은 인종, 비슷한 키와 체격, 긴 헤어스타일까지. 멀리서 보면 하나의 이미지로 겹쳐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자세히 관찰해 보니 전혀 달랐다.
A는 화려한 아티스트였다. 때론 핫핑크 재킷을 입고 출근하기도 하고, 볼드한 액세서리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표정은 밝고 말은 빠르며, 일을 시작하면 손이 휘리릭 움직였다.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사람이었고,
반면 B는 조용하고 단단했다. 어두운 톤의 수수한 옷차림, 낮은 목소리, 많지 않은 말. 대신 맡은 일은 묵묵히 끝까지 해내는 사람. 드러나지 않지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두 사람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었다.
나는 바나나를 보고 있었던 게 아니라, 플라타노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겉모습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 버린 것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어떤 방식으로 삶을 익혀왔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천천히 자세히 보려고 한다. 쉽게 단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바나나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오래전부터 식탁의 중심이었던 플라타노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