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초크의 꽃말은 ‘고독, 경계, 건드리지 마세요’라고 한다.
마트 Produce 코너는 늘 분주하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채소들에서 특유의 흙내가 올라오고, 바이어는 당도와 신선도를 설명하느라 바쁘다. 나는 그 옆에서 습관처럼 진열대를 훑어보다가, 어느 초록빛 덩어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겹겹이 단단한 잎을 닫은 채, 아직 피지 않은 꽃처럼 둥글게 웅크리고 있는 것. 표면은 살짝 회녹색이 돌았고, 잎 끝은 미세하게 뾰족했다. 이름표를 확인하는 순간, 오래전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어느 싱글하우스, (3대가 함께 살고 있는 대가족) 해가 막 지고 있었고, 창밖 잔디는 고르게 깎여 있었다. 할머니, 며느리, 아들, 인형 같은 십 대 딸들과 함께 긴 식탁 위에는 흰 리넨이 반듯하게 펴 있었고, 은은한 조명이 물 잔을 비추고 있었다. 초대받은 저녁 식사 자리. 나는 그곳에서 아티초크를 처음 만났다.
호스트가 자연스럽게 접시를 건넸다. 잎이 겹겹이 쌓인 채 통째로 쪄진 아티초크였다. 사람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잎을 하나씩 떼어 소스에 찍어 먹고 있었다.
남편은 잠깐 멈칫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보았다. 그도 이 음식이 낯설다는 것을. 그러나 그는 곧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잎 하나를 떼어 입에 넣었다. 씹었다.
나는 그를 따라 해 보았다. 잎을 하나 떼어 입에 넣었지만, 질긴 섬유질이 이 사이에 남았다. 씹을수록 더 질겨졌다. 사람들 앞에서 뱉을 수도 없어 몇 번을 더 씹다가, 결국 냅킨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아무도 보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집으로 돌아온 밤, 그는 소파에 앉아 배를 움켜쥐었다.
“배가 좀 아픈데…”
나는 순간적으로 그 초록 잎이 떠올랐다.
“혹시 그거… 삼킨 거야?”
그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그렇게 먹는 줄 알았지.”
그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조금은 억울하고, 조금은 민망하고, 그래도 끝까지 체면을 놓지 않으려는 얼굴.
나는 웃었다. 그때는 그게 너무 우스웠다. 늘 정확하고, 늘 준비된 사람이라고 믿었던 그가, 하필 그날은 가장 기초적인 질문 하나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런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그날 그는 ‘몰라서’가 아니라 ‘묻지 못해서’ 삼킨 것이었다.
낯선 공간, 사회적 긴장, 호스트에 대한 예의, 그리고 스스로를 유능한 사람으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자주 나타나는 반응을 ‘인상 관리(impression management)’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조정한다. 모른다는 사실이 능력 부족으로 해석될까 봐, 순간적으로 질문을 미루고 대신 행동을 택한다.
또 하나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다.
‘나는 눈치 빠르고 상황 판단이 빠른 사람이다’라는 자기 이미지와
‘나는 이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 모른다’는 현실 사이의 불편한 간극.
그 간극을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묻는 것이 아니라, 일단 삼켜버리는 것이다.
나는 달랐을까? 아니다.
나는 잎을 삼키지는 않았지만, 모른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했고, 어색함을 삼켰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잎을 삼키고 있었던 셈이다.
아티초크의 겉모습은 날카롭다. 단단하고,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쪽에는 ‘하트’라고 불리는 가장 부드러운 부분이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도 이와 비슷하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겉을 단단히 여민다. 모른다는 말을 하지 않고, 약한 모습을 숨기고,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능숙한 척을 한다.
겉은 가시처럼 단단해지지만, 속은 여전히 연약하다.
마트에서 다시 아티초크를 바라보며, 나는 그날의 남편을 떠올렸다. 잎을 끝까지 삼키던 모습. 그리고 집에 와서야 배를 움켜쥐던 솔직함.
그때의 나는 그의 실수를 웃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장면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는 체면을 지키려 했고, 동시에 상황을 망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장면에서 우리는 종종 ‘질문하는 사람’보다 ‘알고 있는 사람’이 되기를 선택한다. 그 선택이 때로는 배탈로 돌아오더라도.
지금이라면 우리는 다르게 행동할 것 같다.
잠시 멈춰 서서 묻고, 웃고, 배우고, 천천히 맛볼 것이다.
아티초크는 잎 끝을 살짝 긁어먹고, 마지막에 남는 하트를 즐기는 식물이다. 겉을 다 벗겨내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중심.
생각해 보면 관계도 그렇다.
서툰 날의 체면과 방어를 조금씩 벗겨내야, 서로의 하트에 닿는다.
나는 장바구니에 아티초크 하나를 담았다.
이번에는 잎을 삼키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벗기고, 긁어내고, 안쪽을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 혹시 또 누군가 모른 채 잎을 씹고 있다면, 그때는 웃으며 말해줄 생각이다.
괜찮다고.
모르면 물어도 된다고.
가시는 방어일 뿐, 본심은 언제나 그 안쪽에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