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ya Aug 05. 2016

시간 여행 #두번째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시간을 사랑하자

 




2-01 : 아직 (-13)





엄마랑 아빠는 여행 가는 내 얼굴을 보며 인사를 못할 것 같다며 아침 일찍 집을 나섰고

여행을 떠나는 날, 집에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넨건 동생 한 명 뿐이었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 이것저것 꽉 눌러담은 배낭을 어색하게 메고 신발장을 가니 운동화가 깨끗하게 빨아져있었다. 운동화가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건강하게 조심히 다녀오라고.

속에 더 담긴, 엄마 마음의 크기를 혼자 감히 상상해보고는 발걸음을 나섰다.


55일 지났다.

많이 변해있는 줄 알았지만 나는 아직도 가시가 덜 빠졌다. 날려오는 모래와 먼지에 목구멍이 따갑고, 계속 변하는 날씨에 발바닥은 까졌고, 잠들기 전엔 숨쉬기가 힘들었다. 고산지대에 익숙해지려고 하면 몸은 아니라며 감기에 걸렸고, 집이, 그 따뜻함이 그리웠다.


드디어 칠레에 왔다. 원래 계획이라면 우리는 11월 초에 칠레 산티아고에서 아웃이었다.

여행 초에, 아마 우리가 칠레에 도착했을때엔 돈이 다 떨어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틀렸고, 돈은 남았다. 까맣게 변해버린 운동화는 집을 가고 싶어하지만, 대륙 찍기가 아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여행을 하면서도 진짜 여행을 갈구하게 된다.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이 곳에 더 머물러야겠다.





2-02 :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시간을 사랑하자





 버스이동은 지루하기 짝이없다.

짧게는 5시간부터 길게는 31시간까지

혹시라도 표가 없을까 두려워 터미널에

6시간전에 도착하거나 혹은 투어를 하게 될 때,

투어 회사와 약속한 시간에 찾아가도 그들을1시간정도 기다리는 것은 일상이었다.

중간에 바퀴가 고장나서 다른 차가 오기까지 기다리기도 하고, 사람들을 모으기 전까진 이동을 하지 않기도 했다. 시간을 많이 쥐고 있는 적이 오랜만이라 불안하고 초조했다.


가끔은 '지금..뭐하고 있는거지'라는 바보같은 생각도 했다. 분명 여행중인걸 알면서도

터미널을 몇 번씩 돌아봐도, 낮에 산 과자를 계속 입에 밀어 넣어도 시간은 좀처럼 지나지 않는다.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부터

올해 초에 찍었던 옛날 사진까지 쭉 돌려보다, 여행 떠나기 전 엄마가 보낸 문자를 캡쳐한 내용에 눈이 머물렀다.


'소중한 건강은 꼭 챙기며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랑하자'


마음을 바꾸면 다르게 보인다는 걸, 속는 셈치고, 기다림을 사랑해보자. 4시간이 되어도 12시간이 되어도 긴 버스 이동이 지겨워도 엉덩이가 내엉덩인지 의자와 하나된건지 구분이 안가더라도


버스 옆자리 아이와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계속 손인사를 주고 받고, 일기장을 꺼내 끄적이고, 버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말도 안되는 풍경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채 쳐다보기도 하고, 주은이와 이어폰을 나눠끼고 노래를 들으며 고개를 까딱거린다던가, 지금처럼 글을 끄적이기도 하고, 좀 전에는 사람  만한 바나나를 반으로 나눠 먹는데 생각했던 맛이 아니다.

이틀 전에 트럭을 타며 형님들과 같이 먹었던 바나나과자의 맛이겠거니 하고 산 바나나과자를 먹는데 짠 김맛이 난다. 팔만한 바나나는 8개나 있고 짠 김맛이 나는 바나나과자는 두봉지나 두둑하게 있다. 31시간 이동할 우리의 밥이 너무 실패다. 실패인데, 맛이 없는데, 웃겨서 눈물을 찔끔 흘려가며 꺽꺽 소리나게 웃는다.


사진을 찍어가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우리처럼 기다리는 사람들과 영어로 더듬더듬 이런 기 저런얘기를 하고, 간혹 스페인어로 묻는 질문은 대충 때려맞춰 대답하기도 한다. 속는 셈치고 조금 느리게 여행 해야겠다. 기다리는 시간을 더 사랑하면서.







작가의 이전글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24시간도 채 안남았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