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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Mar 24. 2021

내 첫사랑을 하루키에게 바친다

첫사랑뿐만 아니라 마지막 사랑도 차지할듯...하앜하앜

언젠가 한 번 가슴이 미어지게 헤어진 적이 있었다. 떠난 사람을 다시 잡는다는 게 그렇게 아프고 힘든 일인 줄 모르던 시절, 언제까지고 그 사람은 내 옆에서 당연한 듯 내 농담을 받아주며 곁에 있어줄 거라는 바보같은 생각을 하던 시절, 첫사랑이던 그 사람은 불현듯 내 곁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던 어딘가 우울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책을 옆에 달고 살았다. 내가 나타나면 보던 책 속에 책깔피 대신 영수증을 넣어 책을 덮고 내게 인사를 했다. 나는 그 웃는 듯 마는 듯하는 표정을 좋아했다.

갑작스런 이별통보에 잠시 멀뚱멀뚱 쳐다봤다. 나는 그냥 그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매번 헤어지잔 얘기를 하던 건 나였는데, 그런 나를 어르고 달래며 없던 일로 만드는 것도 항상 그 친구의 몫이었는데, 몇 천 번이고 바보같은 농담을 다 받아주겠다던 상냥하던 사람이, 그리고 여전히 상냥한 모습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이유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그 때까지 단 한번도 누군가를 잡아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울었다. 울면서 가지 말라고 잡았다. 그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인 "통한의 울면서 잡기" 였다.


생각보다 여파는 컸다. 먹는 족족 토를 했다. 보란 듯이 살이 빠졌다. 그 때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별의 아픔이란 것을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느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냥 폐인의 삶을 살았다. 모든 순간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만 지낼 순 없단 생각이 번뜩 들었다.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기에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생각했다. 그 친구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읽고 있던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였다.


무슨 얘길 하려고 이런 진부한 얘기를 하나 싶겠지만, 이게 내가 하루키를 처음 만난 시작이다. 그 전에도 책을 종종 잡곤 했지만 항상 삼국지나 초한지같은 중국 고전을 좋아했다. 대륙의 전쟁사가 나는 그렇게 재미있었다. 현대작가의 소설은 사실 잘 보지 않았다. 일본소설은 읽어보려는 시도 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가 있는 줄도 몰랐다.


상실의 시대를 하루키의 첫 작품으로 접한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게 만약 언더그라운드였거나 양을 쫓는 모험이었다면 생각보다 나를 위로하는 효과는 그닥 대단하지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기사 일본의 사린 사건이 나의 슬픔을 어찌 위로하고 지금도 난해하게 느껴지는 양을 쫓는 모험을 봤다면 틈틈이 슬픈 생각이 내 우울감을 덮쳐서 엉엉 울었을 것 같으니까.


그 친구를 이해하려고 시작한 책이었는데 되려 책에 점점 빠져들었다. 거짓말처럼 책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친구가 아닌 다른 생각을 한건 처음이었다. 정말 너무 재미있어서 책 외의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내 책을 읽었다. 상실의 시대를 읽은 다음엔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다. 그 다음엔 태엽감는 새를 읽었다. 갈 수록 사랑이 아닌 이야기에 더 깊은 흥미를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아쉬웠다. 빠르게 읽다가도 다시 속도를 늦춰 천천히 읽고 또 곱씹었다. 이 책이 끝나는 게 두려웠다. 그 다음에 읽을 책이 없을 까봐 노심초사했다.


정말 다행이었던건 하루키가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읽어도 읽어도 하루키의 책은 계속 나타났다. 물론 후다닥 읽어버린 단편도, 생각보다 흥미롭지 않았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하루키는 소설에서 그치지 않고 수필까지 줄줄이 내준 덕에 이제는 하루키의 상상 속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루키가 지내온 행복한 이야기들만으로도 내 머릿속을 즐겁게 했다. 읽으면 읽을 수록 마음이 가던 사람이라서 더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앗흥앗흥 사랑해용 하루키


하루키 이야기는 아껴놓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예쁘게 포장해서 꾸며놓을 글도 많다. 정말 쓰고 싶을 때 쓰려고 계속 고이 모셔두고 있었다. 사실 이 글은 예전 하루키의 소설이 나오지 않을 때 언제쯤 또 소설을 내려나, 하면서 오래 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의 일부분이다. 간만에 일인칭단수라는 하루키의 자서전 같은 소설을 읽으며 역시 재밌는 사람, 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슬쩍 긁어왔다.


언제 봐도 행복하고 유쾌한 사람, 하루키가 오래오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 나보다 늦게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수하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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