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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Jan 09. 2022

지금이 좋을 때라는 말, 만고의 진리인가요

4살 고집, 누가 좀 말려주세요

봄인 4살이 됐다. 


작년 이맘 때는 세살을 알려줘도 두살이라고 우겼는데, 4살은 자신이 4살이 됐음을 금방 받아들였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봄일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분명 기어다니는 생명체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대화도 하고 호불호도 생긴 엄연한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놈의 호불호. 미운 네살이라는 멋진 워딩은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 기가 막히다. 시간도 그렇고 날짜도 그렇고 모두 사람이 매겨놓은 숫자에 불과할텐데 이상하게 21년이 22년으로 바뀌었단 이유만으로 봄이의 고집이 늘었다. 말이 더 유창해지고 그만큼 원하는 것도 늘어났다. 고집을 부리는 이유도 제법 잘 설명한다. 우는 횟수도 증가하고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집어던지는 일도 빈번해졌다. 하!


물론 고집이라는 어휘의 관점은 지극히 부모 중심이다. 아마 봄이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요구하는 정당한 행위일테지만. 그노무 파는 왜 이렇게 싫어하고 빨강색은 왜 그렇게 환장하고 좋아하는지. 이제 일일이 파를 걸러내고 밥을 먹느라 한 시간이 걸려도 그냥 그러려니 참아내고 있다. 아, 나도 자랐다 자랐어.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이맘 때 아이들이 모두 다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봄인 특히 자신의 물건에 대해 집착과 고집이 더 강해졌다. 자신의 것을 조금이라도 만지거나 먹으면 그 날로 아주 집안이 떠나가라 난리 법석을 부린다. 안 먹겠다고 해서 내가 한 입이라도 먹으면 지가 먹을 건데 왜 먹냐고 또 난리 난리. 그 과정에서 나는 결국 소리를 꽥 지르고 저리 가라며 손사레를 치기도 여러번... 그래도 이런 일들은 집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냥 내가 삐지고 화내면 끝날 일이었다.


토요일마다 봄인 트니트니를 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걸리버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그곳에선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그 날 그 날 활용하는 교구들이 형형색색이다. 예전에 수업을 올 땐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교구 하나를 집어 들고 어떻게하는지 시범을 보이는 와중에 봄이가 입을 열었다. 


"봄인 분홍색"


분홍색 교구를 달란 말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래 선생님 오시면 분홍색으로 주세요, 해" 라고 말하고 말았다. 


근데 변덕이 죽을 쑤듯 팔팔 끓는 이 봄이 녀석은 앞친구가 보라색 교구를 가져가는 걸 보더니 "봄이도 보라색" 하는거 아닌가. 그래서 "보라색 주세요"를 했다. 그리고 봄인 보라색을 받았다. 그 때부터 꽥꽥 소리를 지르며 분홍색을 외치고 울부짖었다. 분홍색!!! 분홍색!!!!!


진짜 한 대 쥐어박고 싶...


....아무튼 그런 봄일 보더니 선생님은 분홍색 보라색 파랑색 초록색 깔별로 다 주셨다. 맘 바뀔 때마다 쓰라며. 흑흑


또 그 다음 활동은 역기 들기가 있었다. 역기는 무게마다 색깔이 달랐는데, 그건 개인마다 주어지는 게 아니라 모두가 다 같이 가지고 활동하는 거라서 빨리 가서 맡는 사람이 임자였다. 


"봄인 빨강색"


벌써 한숨부터 나왔다. 시작을 외치자 마자 많은 아이들이 빨강색을 향해 달려갔다. 봄이도 잽싸게 달려 빨강색에 도달했다. 봄이보다 조금 어린 남자아이가 함께 교구 앞에 도착했다. 오메야


급하게 엉덩이를 들어 봄이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봄인 이미 완력으로 그 교구를 손에 얻어낸 상황이었다. 남자아이의 아빠는 아이를 높이 들어 다른 색깔의 교구로 향하고 있었다. 아. 이럴 땐 진짜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봄아, 이건 너 혼자 가지고 노는 게 아니야. 빨강색 한 번 했으면 내려놓고 다른 색도 들어보자. 니가 이렇게 들고 다니니까 다른 친구들은 못 하잖아. 내려놓고 저 파랑색 해보자. 어때?"


먹힐리가 없지.


봄인 열심히 빨강색 교구를 번쩍 들어 이리저리 들고 다녔다. 한참을 쫓아다니며 "봄아 그건 니 것이 아니라고!!!!" 를 아무리 외쳐봐도 소용이 없었다. 왠지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봄이가 이렇게 들고다니면 친구들이 섭섭해할 텐데. 봄이 혼자 놀아 그럼." 이러고 삐져서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그제야 봄이가 반응을 하고 빨강색을 내려놨다. 나는 신나는 목소리로 "와~ 파랑색 잡아보자 파랑색~~~" 하는데 어찌나 ......응응..응으응..


영광의 파랑색. 잘했다 잘했어

40분밖에 안 되는 시간인데도 정신이 쏙 빠진다. 트니트니를 가면 봄이가 몸을 움직여 체력을 단련하는 게 아니라 내 정신교육을 받고 오는 것만 같다. 오늘은 무슨 이유로 소리를 지를 지, 또 어턴 포인트에서 삔또가 상해서 엉엉 울어댈지 진짜 가늠도 안 가고 가늠하고 싶지도 않고 트니트니 한 번 끝날 때마다 삭신이 다 쑤신다. 머리도 몽롱해진다. 


제주도에서 2주살기를 한 적이 있다. 봄인 그 때 겨우 8개월이었는데, 남편이 애기띠로 아기를 들쳐 매고 성산일출봉도 가고, 사려니 숲도 가고 아무튼 힘으로 모든 걸 다 감당하곤 했다. 아직 어린 아기라서 식당을 가서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혹시 칭얼댈까 울까 똥을 쌀까 조바심을 내며 2주를 간신히 보냈다. 아기와 함께 제주를 다닌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고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제주를 돌아다니는 길목마다 꼭 한번씩은 들은 말이 있다. "지금이 좋을 때다~"

그 말을 그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가 좀 더 커서 왔으면 좋았을걸. 이 쪼마난 애랑 오는게 그렇게 좋은건가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제주 여행을 마쳤다. 비행기에선 또 얼마나 울었는지, 자리에 한 번을 못 앉고 혹시 피해가 될까 화장실 앞에서 서서 애기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때도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래도 지금이 좋을 때라며 한 마디를 남겼다. 


근데, 요즘에서야 조금 실감하고 있다. 지금이 좋을 때라는 말은 언제나 진리다. 아기가 배에 있을 때도 지금이 좋을 때고, 아기가 신생아로 누워있을 때도 지금이 좋을 때고, 아기가 기어다닐 때도, 이제 막 짚고 일어설 때도, 걸어다니며 넘어지고 아무거나 집어 먹을 때도, 조금씩 말을 하고 고집이 생겨 떼를 부릴 때도, 그리고 지금처럼 생각하는 아이가 되어 울고 불고 떼쓰며 난장을 필 때도 항상 지금이 더 좋을 때다. 


오늘도 시댁에 다녀왔다. 오늘은 아버님이 계셨다. 요즘 봄인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도 데면데면해서 소리를 지르고 숨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자 아버님이 그러셨다. "그래도 지금이 나아~"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는 선배 엄마들이 그랬다. 


"그래도 그 때가 낫다! 지금은 뭐 그냥 없는 셈 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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