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꿈을 꾸었나
브로콜리너마저의 ‘졸업’이라는 곡에는 ”오후의 버스에서 깨어 방황하는 아이 같은 우리“라는 가사가 나온다.
나의 졸업을 이렇게나 완벽하게 표현하는 곡이 있다는 건 곧 나의 혼란스러운 감정은 모두가 겪는 평범함일 뿐이라는 거겠지.
뜨거운 태양이 아스팔트 도로를 데우고 있는 오후 세시.
나는 목적지도 모르는 채로 아무 버스에나 올라탄다. 카드를 찍자 “청소년입니다.” 하는 경쾌한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흘러나오고 나는 자연스레 맨 뒷자리로 이동한다. 창가 옆 맨 뒷자리. 그곳에 앉아 바깥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스르륵 잠에 든다.
눈을 떠보니 어스름한 달빛이 햇빛의 자리를 대신하고 주변의 온도를 낮춰주고 있다. 이제 집에 가야 하는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핸드폰은 먹통인 데다 주변에는 택시 한 대 없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목적지를 놓쳤을까 봐 걱정하다가 곧 버스에서 쫓겨나듯 내린다.
여름은 지나가버렸고 이제 나는 길을 잃은 한 어린아이일 뿐이다.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서 걷고 또 걷지만 제자리걸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려워서 수십 번씩 뒤를 돌아본다. 혹시 누가 쫓아올까 봐? 내가 두고 온 것들이 그리워서? 나의 시간과 추억이 나직 남아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계속계속 뒤를 돌아본다. 물론 내가 걸어온 길만이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괜스레 안심이 되어 속도를 올린다.
곧 별이 뜨고 달은 서서히 위치를 옮겨가기 시작한다. 나는 낯선 골목을 누비고, 낯선 가게를 지나치고, 낯선 사람들을 마주치고, 낯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나조차도 모르는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는 건 생각보다 잔인한 것이었다. 달리는 내내 불안에 시달려 속도는 자연스레 느려지고 심장박동은 빨라진다.
하늘을 누비던 구름의 윤곽이 드러나고 하늘은 색을 입는다. 두려움에 뒤를 다시 돌아보지만 모든 건 내가 지나온 그대로다. 그런 줄 알았다. 근데 가게들은 문을 열고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목적지를 아는 자의 확실한 발걸음으로 저마다 어딘가로 향한다. 지하철역으로 수십 명이 이동하고, 버스 정거장으로는 또 다른 수십 명이 이동한다.
따라갈까 싶지만 휘둘리지 않고 청춘의 무모함을 드러내며 걷는다. 목적지도 모르면서 전부 알고 있다는 듯한 확실한 발걸음을 흉내 내본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이제 아침이 밝았으니까 나의 일부를 훔쳐갈 괴한 따위는 쫓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젠 앞만 보며 달려가도 된다. 하늘을 바라보고, 산책하는 강아지를 귀여워하고, 작은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이들을 훔쳐보며 걸어도 된다.
차라리 잘됐다. 목적지를 모르니 방황도 해보는 거 아니겠는가. 목적지를 모르니 내가 목적지를 만들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애초부터 목적지는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당당한 발걸음도 모두 불확실함의 중력에 이끌려 살아가는 이들의 발걸음이었던 거지.
아무튼 나는 이제 졸업을 한다. 작았던 나의 학교를 두고 나오니 내 어깨에는 짐이 늘어나있지만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지긋지긋했던 중학교의 꿈을 잊고 이제 다시 걸어봐야겠다.
다음 달이면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 있겠지.
수백 명의 낯선 이들 사이에 서서 또다시 두려움에 시달리겠지.
근데 그게 인생의 진리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