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로빈 Mar 01. 2017

마트료시카처럼 숨어 있는 소도시의 성

포르투갈 여행기(6) : 신트라


교외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성이나 궁전은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이국적인 풍경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 볼거리 중 하나다. 도심에도 많은 성이나 궁전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번잡하고 볼 거리 많은 도시에 있는 것들보다는 숲속에 오래된 나무처럼 고즈넉한 외곽에 우두커니 있는 성들을 좋아한다. 몇 백년 전 이 정원과 숲길을 먼저 걸었던 이 성의 주인공들은 어떤 사람들일지, 그들을 둘러싼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이야기는 무엇일지, 그들이 수백년 전에 창밖으로 바라보았던 경치와 지금 내가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조용히 곱씹고 싶기 때문이다. 한적하게 자연에 둘러 싸여 있어야 비로소 성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그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는 성에서 조망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소도시에 있는 성을 찾게 만드는 이유다.

리스본에 가는 여행객이라면 한번씩은 당일치기로 들러 보는 신트라에는 페나 성과 무어 성, 성이 두 군데나 있다. 가만 생각해 보면 페나 성은 궁전에 더 가까운 듯한데 높은 곳에 위치해 요새 역할도 있었으므로 전혀 다른 느낌의 두 곳이 모두 성이라고 불리우지 않을까 싶다. 퓌센에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갈 때도, 그라나다에 알함브라 궁전을 갈 때도, 성을 가려면 '성이 없었다면 오지 않을 법한 작은 마을'의 중심가에서 잘 오지 않는 시골 버스를 타야 한다. 때로는 한참을 걸어야 하기도 하다. 소도시의 성은 그렇게 여러 번 인형을 꺼내고 또 꺼내야 하는 마트료시카처럼, 마을 깊은 산중턱에 숨어 여행객들을 번거롭게 하고 기대하게 만든다. 신트라에서는 오전 열시만 되면 기차역에서 페나 성과 무어 성으로 향하는 관광객들이 개미떼 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우리는 멋모르고 카페에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다가 한시간 동안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오후 한시가 넘어서야 겨우 페나 성에 도착했다.


사진에서도 햇빛의 따뜻함과 눈부심이 느껴진다. 사진에서 보이는 노란 성벽 건물을 따라 한 바퀴 돌며 신트라를 내려다볼 수 있다.


건축가 루트비히 폰 에슈테게는 마누엘 양식과 기하학적 타일 장식, 독일식 첨탑 등의 절묘한 조화를 이뤄 페나 성을 완성했다.


강렬한 색감의 페나 성. 성의 외관을 저렇게 발랄한 색으로 칠할 수 있는 나라라서 포르투갈이 좋다.


보랏빛이 도는 타일에 노란 벽면, 동그란 돔 지붕, 비정형의 건물. 그리고 시선강탈 언니.



노란색과 오묘한 붉은 색의 벽면과 톱니바퀴 같은 성벽의 울타리, 벽면을 수놓은 보라색 타일과 동그랗고 뾰족한 저마다의 지붕들이 일러스트 삽화 같이 아름답다. 페르난두 2세가 19세기에 아내 마리아 2세를 위해 지은 성인데,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지은 건축가 루트비히 폰 에슈테게에게 노이슈반슈타인 성보다 더 멋지게 지어달라고 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언제나 동화 같은 왕과 왕족들의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디즈니 로고에도 들어가는 바람에 훠얼씬 유명해졌지만 전작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성을 건축한 건축가의 기발함과 창의성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나니 성이 더욱 친숙해져 온다. 마치 숨어있던 보석을 발견한 기분. 포르투갈을 여행하면 내내 그런 기분에 휩싸인다.



성 너머로 신트라의 풍경을 내다 보며 생각한다. 몇백년 전 이 성에 살던 사람들도 나와 같은 경치를 보았을까.


흡사 미로처럼 곳곳에 길이 있고 문이 있다.


둥글고 뾰족한 탑이 솟은 지붕은 이슬람 양식의 느낌이 난다. 햇빛 잘 드는 곳에는 빼놓지 않고 자리한 카페테리아.


보는 각도에 따라 매번 전혀 다른 건물처럼 보인다.


외관에 취해 성문을 통과해 광장인듯 마당인듯 한 공간으로 들어서면 베란다인지 테라스인지 너머로 신트라의 마을 풍경이 들어온다. 가만 보니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따라 걸을 수 있다. 돌벽을 따라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요리조리 신트라를 살펴 본다.

오랜 줄을 기다려 내부로 들어갔다. 아기자기한 외관만큼 내부는 그리 넓지 않지만 성은 성이니만큼 여러 방들이 쭉 펼쳐져 한번 둘러봄직하다.


유럽 어느 곳에 가도 성당과 스테인드 글라스를 볼 수 있지만, 막상 이렇게 햇빛이 창을 통해 색색깔의 그림을 흩뿌리는 장면은 보기 힘들다. 그래서 더 좋았던 페나 성의 내부.


벽면과 바닥을 가득 메운 모자이크 장식들.



페나 성 인근에는 귀여운 페나 성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무어 성도 자리하고 있다. 페나 성이 궁전이라면 무어 성은 그야말로 성곽이다. 남자들이라면 웅장하게 성곽이 펼쳐진 무어 성을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무어 성은 페나 성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정문입구와 입구를 잇는 버스도 있다. 페나 성에서 지도를 받으면 성 주위로 성 면적의 몇 배는 넓은 정원(인지 숲길인지)이 보이는데 이곳은 왕의 사냥터였다고 한다. 지도로만 보기에도 너무 넓어서 무어 성까지 오르려면 페나 성 관람의 또 하나의 백미라고 하는 곳을 포기해야 했다. 언젠가 이 정원을 다시 올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정원을 뒤로 하고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산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페나 성에서 아득하게만 보였던 무어 성 입구가 나타났다. 쇠사슬로 된 옷을 입은 기사들이 투구를 쓰고 창과 방패를 들고 말을 타고 나타나야할 것만 같은, 돌로 쌓은 성이다. 만리장성과 비교할 데는 못 되겠지만, 흡사 만리장성을 축소해 놓은 것처럼 성곽이 구불구불 펼쳐진다.



잘고 고른 동물의 이빨처럼 늘어선 무어 성의 성곽


저 높은 산에 저 많은 돌들을 누가 쌓고 끼워 넣었을까?


돌계단을 따라 오르고 내리며 하나씩 하나씩 깃발이 꽂힌 탑을 정복해 간다.


그러다 아래를 내려다 보면 길게 이어진 구불구불한 성곽이 무어 성의 위용을 나타낸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매우 힘들다.


무어 성의 꼭대기에서 바라 보는 페나 성의 모습은 또 색다르다.


부실한 무릎을 달래며 정상에 오르자 사방에서 상쾌한 바람이 불어왔다.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여행을 하다가 하루에 페나 성과 무어 성까지 둘러보는 것은 분명 힘들었지만 무어 성 꼭대기의 경치와 시원함이 고단함을 녹여준다. 당일이나 1박만 했더라면 분명 느끼기 힘들었을 여유다.




페나 성과 무어 성, 기차 역을 다니는 버스는 순환 버스라 무어 성에서 시내로 내려갈 때는 따로 티켓을 끊지 않아도 된다. 단순한 우리는 슬슬 걷는다는 명목 아래 그 고단한 무릎으로 시내까지 걸어 내려왔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계단 무더기에서 결국 남자친구에게 업혀야 했다. 계단 아래 있던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를 보고 웃었다.

작가의 이전글 뭐니뭐니 해도 소도시 여행이 제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