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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성당

by 안나

이냐시오, 너도 알다시피 누나는 심한 강박이 있다. 취미도 강박적이고 무언가 일을 할 때도 그 성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도 그 강박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관찰 하며 살아왔기에, 이제야 내 강박을 조절할 수도 있고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강박에서 벗어나며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


한국에 들어와서 생긴 취미가 전국의 성지와 성당을 다니는 것과,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답사를 모두 완수 해 보는 일이였다. 강박적으로 너무 많이 다녀서 어디가 어딘지 이제 정신이 없고 기억 조차 증발 되었다. 그래서 강박이 좋은게 아니란다. 몰아 세우고 방전되고 그리고 돌아서면 기억이 증발되니 말이다.


이번 가을에 충북 감곡 성당에 다녀왔다. 전주 전동성당이나 익산 나바위 성당처럼 기품이 있었다. 그런데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수북히 쌓인 은행나무와 성당 입구 바닥에 씌여진 라틴어였다.


라틴어… 참 나하고 라틴어의 관계는 끈질기다. 라틴어 때문에 학교 생활에 유급을 당했으니 죽을 맛이였다. 스페인어로 작품을 따라가기도 너무 빠듯했는데, 라틴어로 작품을 읽어야 하는 수업은 거의 내게 상형문자 같았다. 이 시간만 잘 버티면 어떻게든 되겠지 했는데, 꼭 피하고 싶은 것은 마주치기 마련이였다. 그렇게 라틴어와의 인연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감곡성지 성당 입구에 씌인글이 인상적이다.

감곡성당 문 입구에는 이러한 글들이 있다. “Dominus custodiat introitum tuum et exitum tuum, 나거나 들거나 주님께서 너를 지키신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시편 121편 8절.

영원이라는 말,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용어이지만 그러한 의미를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든든한 말인가! 아퀴나스의 영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예전, 신학대전을 읽어보려고 들었다가 다시 고이 접어 보내드린 기억이 있다(한 장 읽고, 그 후로 펴 본적이 없다.)

감곡성당 가밀로 신부님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왠지 사랑받는 느낌이 든다. 우리를 만나기 전 부터 사랑했다니! 내 부모도 나를 만나기 전 부터 사랑했을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인간은 모두 마땅히 사랑받아야 하는 존엄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2014080424245268.jpg Undying, 강종열 작가, 출처: 강종열 작가 홈페이지

바티칸에 기증했다는 강종열 작가의 작품이다.

어때? 너무 멋지지 않니? 특히, 난 엄마의 시선에 눈이 간다.

생명의 귀한 탄생을 표현주의 기법으로 나타냈다. 강종열 작가는 여수 출신인데 동백꽃을 많이 그렸다. 한국에 놀라운 지역 작가들이 많다. 점점 지역 작가들이 좋아지는 이유는 지역만의 색깔, 그 어느 곳에서도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교황에게 준 탄생 그림은, 동백숲의 어느 봄날 대자연의 기운과 함께 형형색색의 새, 나비, 토기 등의 환희와 축복 속에서 어린아이를 생명수 한줌 쥔 첫 목욕하는 모성애 짙은 엄마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강종열 작가는 흑인 엄마가 백인 아이를 낳는 모습을 그리면서 전쟁과 인종차별 없는 세상, 평등사회, 가난과 병에서 해방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여순사건에 대해서도 붓을 들었는데, 그가 그린 붓은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그림이였다.


인간의 삶은 참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정말 재미있다.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고나면 별 일 아닌 일들이 더 많다. 오늘도 몇몇 일이 일어나서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탔긴 했지만, 그래도 하루가 알차게 지나갔으니 그걸로 만족하고 기쁘게 잠을 청하련다.


너도 잘 자렴,

누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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