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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La casa de espiritu, 이사벨 아옌데, 칠레! 한대 칠레?

by 안나


"결국 인간은 얼마나 사는 걸까? 천년? 단 하루? 일주일? 수세기? 인간은 얼마나 오랫동안 죽는 걸까? '영원히'라는 말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파블로 네루다-

영혼의 집을 읽다.


학부시절, 처음으로 영혼의 집을 읽었다. 스페인어로 되어있는 책이었다.

대학원에 들어가 다시 한번 책을 읽게 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학부시절에 읽었던 영혼의 집은 거의 읽은 게 아니었다. 사실 스페인어가 무척 딸렸고, 대체 무슨 말인지 몰랐으니까 말이다.

중남미 문학에 대해 다룰 기회가 많았는데, 거의 수강하지 않았다. 그곳에 나에겐 너무도 아득했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칠레의 굴곡진 역사와 마술적 리얼리즘은 이 책을 보는 내내 신비로움과 혼란스러움을 가중시켰다. 무언가 명확하거나 뚜렷하게 보이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강박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넘기다 보니, 클라라와 알바가 서로 대화했던 내용들에 하이라이트를 한 장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내가 이런 명언에 줄을 쳤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죽을 때도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한단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일 뿐, 현실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죽음은 탄생과 같은 거야. 그냥 옮겨가는 것일 뿐이지."


칠레의 한 정치가 집안에 로사와 클라라라는 두 딸이 있었다. 로사는 독이 든 음료를 잘 못 먹고 죽게 되고, 심령의 능력을 타고 난 클라라는 오랜 시간 침묵하며 살아간다. 로사의 약혼자였던 에스테반은 자신의 농장에 정열을 바쳐 부를 축적하고, 클라라에게 청혼한다. 그리고 에스테반과 결혼한 클라라는 긴 침묵의 세월에서 벗어난다.


에스테반은 바람을 일삼았고, 그 가운데에 태어난 가르시아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에스테반에게 복수를 맹세한다. 점차 포악해지는 에스테반은 자신의 친누나였던 페룰라를 집에서 내쫓고, 보수당 의원으로 민중 선동가를 혹사한다. 게다가 자신의 딸이었던 블랑카가 인디언 십장의 아들인 페드로와 사랑에 빠지자, 사회주의자라는 명분으로 페드로를 없애버리려고 하자 클라라는 딸 블랑카를 데리고 에스테반에게 떠나며, 침묵을 맹세한다.


블랑카는 페드로와의 사이에서 알바라는 딸을 낳고, 두 모녀는 늙어 외로워진 에스테반을 용서하고 다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한편 에스테반은 선거에서 보수당이 야당에게 져 정권이 교체되고 클라라마저 죽게 되니 더 큰 실의에 빠지게 된다. 더구나 군부세력은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뒤엎고 사회주의자와 관계를 가진 블랑카가 군부에 의해 잡혀가는데, 보복심에 가득 찬 가르시아가 그녀를 심문한다.

모진 고문을 받는 딸 블랑카에게 무력해진 에스테반은 대신 딸이 잡혀가기 전 부탁했던 것처럼 페드로의 위험을 무릅쓰고 캐나다로 피신시킨다. 마침내 블랑카는 석방되고, 에스테반은 딸 앞에서 그간의 죄를 뉘우치며 다시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하며 클라라 곁으로 돌아간다.


에스테반 트루에바는 매우 가부장적이고 탐욕적인 특권층 인물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권리는 거의 인정하지 않았던 극우적 보수 세력이었다.


이 소설은 트루에바 가문이라는 가문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역사의 질곡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칠레라는 나라는 외국으로부터 한 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던 나라, 지배층으로부터도 한 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던 나라였다. 기존의 사상과 미덕들을 수호하기 위한 보수층과 새로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혁신층의 대립은 선거에서 사회당 승리로 이어졌고, 보수 세력의 반발로 쿠데타가 일어나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이 후반부의 이야기는 이사벨 아옌데의 가족이었던 살바도르 아옌데와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야기와 일치된다. 1970년 칠레에서 살바도르 아옌데는 대통령이 되는데, 같은 정당인 인민연합은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 정당이 된다. 그는 사회주의를 향한 칠레의 길(La via chilena al socilaismo)을 외치며, 대규모 산업을 국유화, 정부의 의료 및 교육, 어린이 우유 무상 배급을 시행한다. 보수층과 미국의 방해로 칠레의 경제는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의 구리 가격 인하는 칠레 경제에 치명타를 가하고, 인민 연합이 지방선거에서 선전하자 보수층은 쿠데타를 통해 아옌데를 몰아낸다. 대통령 궁에서 버티다 못한 아옌데는 최후의 연설 이후 자살을 하게 된다.



이사벨 아옌데는 이 소설을 통해, 쿠데타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역사를 심판할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비극적 역사적 상황에도, 소설의 결말은 희망적이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가족들은 마침내 화해하는데, 에스테반 또한, 자신의 사위인 페드로를 용서하게 된다. 이는 보수파와 혁신파의 화합을 상징하며, 화해의 역사를 추구하는 이사벨 아옌데의 소망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증오심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도 없다. 내가 가르시아 대령과 그와 같은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서 증오심도 차츰 수그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 내가 복수를 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처절한 복수의 연장이 되기 때문에, 이제는 복수받아 마땅한 사람들 모두에게 복수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내 임무는 살아남는 것이고, 내 사명은 두고두고 증오를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원고를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영혼의 집은, 칠레 사람들과의 사회뿐만 아니라 그들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다.

또한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스토리 전개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독재 정권이었던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지고, 핑크 타이드였던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곧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는데, 라틴아메리카는 수많은 원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를 가지고 있는 대륙이기에 정치에 관하여서는 가끔 너무도 비관적일 때도 있지만, 그러나 이사벨 아옌데는 역사를 통해 화해의 미래를 그려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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