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인문서적, 자기 계발서만 읽다 보니 언어가 한쪽으로만 맴도는 듯하다. 목이 마른다. 풍덩하고 흠뻑 빠지는 허구의 이야기가 절실하다. 게다가 봄인데.
봄이야말로 적당한 헛소리와 환상 정도는 기꺼이 눈 감아주지 않았던가. 새내기도 아니면서 괜스레 어리광 부리고 싶은 설렘이 흙먼지처럼 풀풀 날린다. 아직은 쌀쌀맞게 등살을 에우는 아침과 은근 땀이 배어 나오는 뜨거운 오후 햇볕의 변죽 사이에서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러다가 어둠 속에서 환히 빛나는 망울을 바라보기라도 한다면 그날의 시름은 한풀 꺾인다. 그러고 보면 봄은 가로등 불빛이 가장 아름다운 철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살랑이는 옷차림과 흐드러지는 음악과 달달한 영화를 찾듯이 봄 같은 문장과 이야기도 찾아 나서기 충분하다. 우리에겐 일렁이는 마음과 함께 달려줄 친구가 필요하다. 그래, 소설이 제격이겠다. 혹은 산뜻한 산문집이라던가.
겨울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려고 봄에 집안 대청소를 하듯이 독서에도 주기적인 환기가 필요하다. 트렌드 학자 김난도 교수는 생각이 안 날 땐 뭐든 읽는다며 특히 시집과 평론을 즐긴다고 한다. 새로운 이름을 떠올리는 창의력 그리고 텍스트 너머의 의미를 파악해내는 시각의 깊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다각도에서 관찰하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태도가 사물과 형상을 꿰뚫는 분석력과 통찰력을 가져다준다.
나 역시도 비슷하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더 잘 알아가고자, 잘하고 싶은 것을 더 잘하고자 흔쾌히 샛길로 빠진다. 일부러 잘 모르거나 혹은 읽은 지 좀 오래된 장르의 책들을 찾아 나선다. 결국 길은 통하게 돼있고 목적지는 내게 속해있다. 큰 고민 없이 가볍게 나서본다.생각보다 어렵거나 막막한 길도 더러 마주친다. 그래도 계속 가다 보면 의외의 낯선 곳들에서 가장 닮은 것들을 발견하고 기뻐할 것을 잘 알고 있다.이번에도 물씬 풍기는 봄과 그렇게 된 마음의 연유를 낯선 책에서 반갑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갈증은 좀 났지만 참 오랜만에 나풀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찾아나선 듯하다. 몇년 간의 봄은 어지간히 빠듯했고 녹진댔다. 팔다리가 가벼워지니 비로소 고개가 들린다.딴짓할 체력과 한눈 팔 각오가 준비됐다. 그렇게 둥둥 떠다니며 고른 산문집이 서한나 작가의 <사랑의 은어>이다. [일간 이슬아]에서 동료 작가를 소개하는 '친구 코너의 날'이 있었는데 거기서 그녀의 글을 처음 접했다. 제목은 <아무도 그 사람의 여자를 몰라>. 이슬아 작가는 이 글 때문에 봄에 하고 싶은 짓이 아주 많아졌다고 한다. 나 또한 그랬다. 내가 모르는 여자가 쓴 글에 욕망이 샘솟았다. 봄 같은 책이 읽고 싶어졌고 열심히 초저녁 거리를 쏘다니고 싶어졌고 하늘 따라 물 맑은 날에 저수지를 뛰어다니고 싶어졌다.
초록물이 바짝 오르기 전 이 책을 갖게 되어 행복하다. 다음번엔 똑같은 한 권을 더 사서 사랑하는 이의 책장 한편에 넣어주고 싶다. 그렇게 봄을 나누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