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50대 부모님과 삿포로 여행을 간다면 (8)
<차례>
- 니꾸우동 '엔'
<든든하게 먹고 싶다면 우동+덮밥 세트를 추천한다>
- 연말 이자카야 탐방기
<연말의 삿포로는 술집도 예약이 필수>
만약 당신이 50대 부모님과 올 겨울 삿포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시리즈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활동적이지 않은 두 부모님과 가까스로 평균 체력을 넘는 두 20대 남매가 다녀온 삿포로 여행 일정을 소개한다. 이 일정이 심심하다고 생각된다면 마음껏 자기 취향대로 코스를 추가해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삿포로는 유명한 관광지 외에도 구석구석 뜯어볼 곳이 많은 매력적인 여행지다. 그러나 한 가지만 명심했으면 좋겠다. 눈 내린 삿포로를 '걸어서' 여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부디 가족의 체력과 여행 성향을 고려해 무탈한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
오타루와 삿포로를 오가는 힘든 여정을 마치고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 구글맵에서 우동집을 검색했다. 구글맵 상의 정확한 명칭은 <だし茶漬け+肉うどん えん 日本生命札幌ビル店>지만 너무 긴 관계로 <우동 엔>으로 줄인다. 일본생명삿포로빌딩 지하에 있는 가게였는데, 계단으로 내려가 보니 삿포로역 내부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만약 야외의 빌딩 정문으로 들어가서 지하 1층으로 가면 가게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건물 지하에서 찾는다기보다 지하상가에서 찾는다는 생각으로 가게를 찾는다면 쉽게 도착할 것이다.
일본생명빌딩으로 가는 길에 <아카렌가 테라스> 근처에서 일루미네이션을 발견했다. <오도리공원>을 비롯해서 삿포로 시내 곳곳에는 이렇게 일루미네이션이 진행되고 있으니 잠시 발길을 멈추고 사진을 몇 장 남기기를 추천한다.
주린 배를 붙잡고 찾은 <우동 엔>은 한 마디로 한국의 '역전우동'과 같은 분위기였다. 혼밥을 하는 직장인과 여행객이 주요 고객층이었다.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자리에서 기다리면 서빙해 주는 시스템이었는데, '태깅'이 되지 않는 카드는 사용이 어렵다. 일본에서 느낀 것이 대부분의 카드 결제가 IC칩을 꽂는 것이 아니라 태깅으로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니꾸타마고우동과 참치세트를 주문했다. 한국에서 사케동은 먹어봤지만 생 참치가 올라간 덮밥은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는데 참치가 간장소스에 짭짤하게 양념이 되어 있어 쌀밥과 매우 잘 어울렸다. 참치 양은 조금 적었지만 감칠맛 도는 소스와 특히 밥맛이 너무 좋아서 우동이랑 먹으면 속이 든든했다. 우동 역시 저가 프랜차이즈를 찾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깜짝 놀랄 만한 맛이었다. 한국의 면과는 달랐는데, 과하게 탱글탱글하지 않고 부드러운 생면에 약간의 찰기가 있는 느낌이었다. 쉽게 뚝뚝 끊기지 않고 매우 부드러운 떡으로 된 면을 먹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시장이 반찬이라 더 맛있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지만, 추운 겨울 늦은 시간에 배를 채울 곳이 필요하다면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우동이 땡긴다면 더더욱.
식사를 마친 동생은 꼬치구이와 술을 한 잔 하고 싶어 했다. 동생도 평소에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여행을 와서, 더군다나 연말에 가족끼리 한 잔 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이자카야 탐방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네 군데 정도의 술집을 방문했는데, 모두 자리가 꽉 차 있던 것은 물론이고 예약 손님도 있었다. 우리나라보다 예약 문화가 더 자리 잡은 일본이라서 그런지 작은 술집도 연말에는 예약이 필수인 듯했다.
결국 동생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사 온 후에 간단하게 회포를 풀었다. 과일이 먹고 싶어서 산 달콤한 홋카이도 귤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크로스호텔 삿포로>로 돌아와 이 날도 어김없이 대욕탕을 찾았다. 대욕탕이 있는 18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려면 카드키가 필요해서 가족들과 목욕 시간을 맞춰야 했는데, 공교롭게도 항상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의 퇴근 시간과 겹쳤다. 삿포로의 미끄러운 빙판길 탓에 낮에도 연락을 자주 하지 못했는데, 밤에도 전화를 오래 하지 못하니 미안하고 아쉬웠다. 남은 이틀 동안 꼭 여자친구 마음에 들만한 선물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편의점 귤과 진저 에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