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치커피와 재즈의 부드러운 만남
한국은 여러모로 느리게 살기 힘든 곳이다. 이력서에 몇 달 간의 공백이나 1, 2년의 휴학은 물론, 주말에도 여유를 즐기기보다는 무언가라도 하기 바쁘다. 사람과 차의 도시 서울은 더욱 그렇다. 바쁜 서울에서도 그나마 초록을 느낄 수 있는 화랑대 철도공원 근처, 시간이 잠시 느리게 흐르는 카페 '에슬로우'가 있다.
에슬로우의 커피 음료는 모두 '더치커피' 베이스다. 아메리카노와 라떼 모두 에스프레소 기반 음료에 붙는 이름이지만, 이곳에서는 그냥 '더치커피 아메리카노', '더치카피 라떼'로 부른다. 둘 다 질감이 부드럽고 텁텁한 맛이 남지 않았으며, 뒷맛은 살짝 달콤했다. 특히 더치커피 라떼는 커피 맛이 강하지 않고 살짝 비어있는 듯한 맛이 특징인데, 그 빈 공간을 우유의 고소함과 달달함이 채워주었다.
주방에는 에스프레소 머신 없이(아마도) 작은 스팀 머신이 있으며, 당연히 그라인더에 원두 가는 소리 역시 들리지 않는다. 에슬로우의 이름을 달고 나온 드립백이나 더치커피 세트를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도 있을 만큼 더치커피에 진심인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콜드브루'로도 많이 알려진 더치커피는 커피 원두를 차가운 곳에 오랫동안 천천히 우려내는 추출 방식이다. 길게는 꼬박 하루 동안 한 방울씩 추출하며, 추출 후 며칠 동안 숙성을 거치는 방식도 있다. <에슬로우>가 몇 시간이나 커피를 우리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라인더 소리, 에스프레소 머신의 보일러 소리, 시끄러운 주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에슬로우>는 그 이름처럼 느리고,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카페였다.
2층의 공간은 작업이나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거의 자리마다 콘센트가 마련되어 있고, 창가의 바 테이블은 초록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무엇보다 1, 2층에 흐르는 재즈 음악은 <에슬로우>를 더욱 느린 공간으로 바꿔준다. 플레이리스트의 대부분이 가사가 없는 재즈 연주곡이 대부분인데, 곡에 박자를 맞추다보면 가사가 있는 음악보다 집중이 잘 되는 기분이 든다.
가끔 카페가 너무 바쁘거나 직원의 사장님의 지친 표정을 보면 노트북을 꺼내기 미안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에슬로우 공릉점 인스타그램을 보면, 2층의 좌석에서 여유를 즐기며 작업하는 것을 장려하는 것을 알 수 있어,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공간을 오래 쓰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시그니처 크림 메뉴 중 하나인 '로투스 아이스크림 라떼'를 주문했다.
로투스 아이스크림 라떼 역시 더치커피 베이스인 듯 했다. 더치커피 라떼 위에 달콤한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로투스 분태, 그리고 로투스 한 조각. 감자튀김을 아이스크림에 찍어 먹듯, 로투스 하나를 아이스크림에 찍어 맛보고 커피를 홀짝이며 바깥 풍경을 한 번 바라보았다. 바쁜 할 일 때문에 찾은 카페였지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곳에서 우린 잠시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느리게 살고 싶어도 주변의 시선이 자꾸만 우리를 등떠미는 한국 사회에서, <에슬로우>는 흐르는 시간을 더디게 해주는 휴게소 같은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