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UNE HOLIDAY Feb 9. 2023
‘어떤 수행에 오류가 생긴다면 그것은 사용자가 아니라 디자인이 잘못된 탓이다.’
디자이너 도널드 노먼의 책에 여러 번 걸쳐 나오는 말이다. 제품 디자인이 사용자에게 제품이 지니고 있는 행위 지원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용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제품이 갖고 있는 기능을 사용자에게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물론 디자인만으로 제품 기능의 100퍼센트를 전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좋은 디자인은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하다가 난관에 부딪쳤을 때 그 난관을 최대한 극복하기 쉽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디자인은 의외로 찾기 힘들다.
나 역시 안 좋은 디자인 때문에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 바로 어제의 일이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던 나는 추운 날씨 탓에 1인샤브샤브를 먹기로 했다. 사장님과 한 명의 직원으로만 운영되고 있었는데 가게 전체를 두르고 있는 바 테이블 때문에 동선이 협소한 탓인지 키오스크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작은 태블릿 pc로 주문을 하는 방식이었다. 각각의 자리에는 1인용 인덕션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 인덕션이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인덕션에는 세 개의 조절기만 존재했다. 가운데는 시계방향 혹은 반시계방향으로 돌려 온도(파워)를 조절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왼쪽 버튼은 약간 애매하지만 전원버튼이었다. 오른쪽의 세 줄짜리 버튼은 그 용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 경험상 메뉴 버튼(일명 ‘햄버거’ 메뉴) 일 것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 메뉴 버튼이 날 당황하게 만든 범인이었다. 샤부샤부를 먹는 도중에 나는 더 이상 국물이 끓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덕션을 보니 전원이 꺼져있던 것이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내가 전원 버튼이라고 생각했던 버튼을 눌렀지만 전원은 켜지지 않았다. 짧게 눌러도 3초 이상 꾹 눌러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으며 나는 결국 사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이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했는지는 아직까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 원인이 ‘햄버거 메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장님이 말하기를 오른쪽 버튼을 길게 누르면 타이머가 설정되어 인덕션이 머지않아 꺼지게 된다는 것이다.
약간은 창피했지만 나는 뻔뻔하게 기계 탓을 하기 시작했다.(물론 속으로) 이 버튼은 메뉴버튼이 아니란 말인가? 아니다. 아마 맞을 것이다. 다만 메뉴버튼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기능 중에 하필이면 재수 없이 타이머 기능을 켜버린 것이다. 시계 모양의 타이머 버튼이 따로 있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테지만 미니멀한 디자인을 위해서 버튼 네 개를 만드는 건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타이머가 켜졌다는 것을 알려주는 작은 시계 그림이나 ‘TIME’이라는 문구도 없었다. 하다 못해 타이머가 다 되어 전원이 꺼지더라도 전원 버튼을 한 번만 다시 누르면 전원이 켜지도록 디자인되었다면 어땠을까.
처음 보는 제품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 인생에서 처음 만난 제품을 제 것인 양 다룬다면 그것은 천부적인 재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나 PC도 쓰던 기능만 사용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는 없다. 다만 문제가 생겼을 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디자인이 안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