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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걸 하기 어렵다면 싫어하는 걸 하지 말고 살자

by JUNE HOLIDAY

나이를 먹으면서 ‘좋아하는 걸 하세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세요’ 같은 말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한창 시니컬했던 중고등학교 때는 ‘참 나, 어떻게 하고 싶은 거만 살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년, 2년 시간이 흐르고 다양한 매체와 주변 사람들을 보니 내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같은 전공을 공부한 친구였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직업을 가진 친구도 있었고 자기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례들을 보면서 ‘사회적인 흐름에 휩쓸려 가지 않아도 괜찮구나’라는 위안도 얻었다.

그러나 현실은 또 다른 문제였다. 좋아하는 것이나 취미는 많지만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는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시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어떻게 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전문가 수준으로 잘하는 분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자격증이나 시험이 있는 분야도 아닌데…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밥을 벌어먹으면서 살 수 있을까 라는 걱정과 불안함이 쌓여갔다.


그런데 이 걱정과 불안 속에서 다시 한번 내 반골 기질(?)이 꿈틀거렸다.


‘그렇다면 지금이나 나중이나 한결 같이 하기 싫은 것들만 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순 없더라도 하기 싫은 걸 최대한 배제하면서 살 수만 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평안한 삶일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앞으로 살면서 최대한 피하고 싶은 유형의 것들을 ‘환경’과 ‘사람’으로 분류하여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환경>


효용성이 떨어지는 업무 지시


일을 하다 보면 ‘업무를 위한 업무’를 지시받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특히 현장과 사무실 업무가 구분되어 있는 곳일수록 그런 사례가 빈번하다. 현장과 사무실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체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장의 직원들은 ‘뭐 이 정도 문제는 금방 처리하면 되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반면 사무실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재발 방지를 위한 업무를 추가적으로 지시한다. 물론 지금은 사소한 문제라도 나중에 큰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재발을 방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내 경험을 돌이켜 봤을 때 그 ‘재발 방지’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많았다. 오히려 제발 방지보다 상급자로부터 한 소리 듣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보여주기 식’ 지시도 적지 않았다.


이런 업무는 결과적으로 일을 두 번 하게 만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특히 상급자 눈치 보기에 급급한 일 처리는 상처를 치료하지도 않고 봉합하는 것과 같다. 오히려 본질적인 해결책을 연구하면서 적용하는 것이 빠른 문제 해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효율보다 중요한 것이 많지만 업무는 효율과 효용이 필수적이다.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고 유사한 문제가 앞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특히나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작동할 만한 방지책을 찾지 못한다면 똑같은 문제가 다시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물론 영원히 작동하는 방지책 따위는 없다. 하지만 직원들은 빠른 의견 교환과 피드백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상급자는 부하 직원들에게 눈치 주지 않으며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반복적인 단순 업무


지금까지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나는 눈앞에 성장과 변화가 보이지 않는 업무를 계속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여자친구와 이에 대해 예전에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적잖이 놀랐었다. 나는 ‘창조적’이진 않더라도 하루하루 새롭고 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자친구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것도 좋지만 매일 정해져 있는 일을 하는 것도 피곤하지 않고 나름의 장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 놀랐다. 사람들이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은 단지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불안한 고용 상태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단순 반복적인 일을 참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짧았던 것이다. 세상에는 위험을 감수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과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람, 두 부류가 존재하며 나는 그중에서도 전자에 속하는 것이다.



불청결한 화장실(?)


어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화장실의 청결함은 나에게 있어 중요한 환경적 요소다. 위의 두 가지에 비하면 충분히 참고 넘길 수 있을 만한 사안이지만 ‘싫어하는 환경’을 꼽으라면 반드시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누구든지 이처럼 주변 환경에 있어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자신만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을 것이다. 점심 먹을 식당이 다양한 지, 5분 거리 이내에 카페가 두 곳 이상 있는지, 회사 건물에 편의점이 있는지 따위 말이다. 나의 경우 점심에 맛집을 가는 것보다 깨끗한 화장실이 주변에 있다는 믿음이 심적으로 더 안정감을 준다.



<사람>


남의 일에 관심이 ‘너무’ 많은 사람


적당한 관심은 애정이지만 과한 관심은 참견이다. ‘적당한’의 의미를 열 명에게 물어보면 아마 열 개의 다른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만큼이나 적당한 관심을 구분하는 선은 복잡 미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을 대략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데 바로 사생활이다. 사생활, 그중에서도 상대방과 관련된 과거와 사람에 대한 것은 묻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 내 짧은 인간관계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다. 그래서 나는 나와 상대방이 형성하는 관계 내에서만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만났다면 직무에 대한 질문, 음악 동아리에서 만났다면 음악 취향에 대한 질문만 하려고 한다. 친밀감을 쌓는 데 오래 걸린다는 단점도 있지만 적어도 애써 쌓아 올린 친밀감을 한 방에 무너뜨릴 일은 없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관심에 대한 사람들의 기준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생활을 침범당할 각오는 필수다. 내 경우엔 예상외로 처음 대면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일이 빈번했다.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며 불편함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방법도 배웠다. 다만 완곡한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혹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을 피하고 싶을 뿐이다.



고집은 OK, 억지는 NO


나 역시 고집이 세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다. 그러나 이런 경험 때문에 고집부리는 사람들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고집은 인간관계는 물론 문제 해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고집은 이해할 수 있어도 억지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집이라는 단어는 생각 외로 긍정적인 상황에서도 사용된다. 대표적으로는 ‘장인의 고집’ 같은 표현이 있다. 초밥 장인, 목공 장인, 금속공예 장인 등 범인(凡人)들은 이해하지 못 하지만 장인들은 반드시 따르는 자신만의 ‘고집’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장인의 고집에는 반드시 이유가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장인들이 오랜 경력과 경험, 연구들을 바탕으로 부리는 고집은 단순히 고집이라는 이유로 매도할 수 없다.


물론 타당한 이유가 뒷받침된다고 해도 그 고집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같은 현상을 두 사람이 정반대로 해석해서 대립하기도 한다. 각자의 해석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면 그 대립은 토론이 되는 것이며, 건강한 토론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어떤 논리도 없이 자기 말만 정답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게 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고집’이 아니라 ‘억지’를 부린다고 표현하고 싶다. 이들은 이유를 댈 생각조차 않는다. 나 역시 항상 논리적인 것도 아니고 타당한 이유를 대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나보다 상대방의 논리가 더 맞다는 생각이 들면 뭔가 지는 기분이 들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인정하고 따른다. 내가 피하고 싶은 것은 논리적인 주장을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결론>


‘피하고 싶은 환경과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광범위해서 예외도 있고 애매모호한 점도 많다. 특히 글을 쓰면서 내가 특정 유형의 사람을 재단하는 것 같아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생각이 정답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내가 피하고 싶은 상황을 눈에 보이게 정리해 보려는 시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싫어하는 것 거르기’는 ‘좋아하는 것 고르기’보다 효과적일 때가 많다. 단순하게는 저녁 메뉴를 선정하는 것부터 앞으로의 진로와 같은 복잡한 문제를 다룰 때도 쓸모가 있다. 무언가 뾰족하게 좋은 방법이 안 떠오르거나 정확히 알 수 없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을 때 ‘싫어하는 것 거르기’를 실행해 보면 어떨까. 적어도 내가 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보기에서 거를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소거법으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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