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展]
'살바도르 달리'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언제인가? 달리를 아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질문을 듣자마자 그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을 떠올릴 것이다. 사실 작품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더라도 '나뭇가지에 걸린 녹아내리는듯한 시계'가 그려진 그림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나 역시 '기억의 지속'이라는 작품명을 떠올리지 못했던 사람 중 하나이며 나에게 '달리'는 빈지노의 'Dali, Van, Picasso'를 떠올리게 했다. 'Dali, Van, Picasso'에서 빈지노는 '예술에 미친' 자신의 고유한 예술적 영역에 대한 자부심을 달리, 반 고흐, 그리고 피카소와 같은 거장에 빗대어 드러낸다. '살바도르 달리展'을 감상하고 나면 빈지노의 가사처럼 달리 역시 예술에 미친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역시도 이를 인정한다.
미친 자와 나 사이에는 단 하나의 차이가 있다. 미친 자는 자기가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미쳤다는 것을 안다.
물론 이 말을 있는 그대로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그의 생애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겠지만, 달리가 그의 천재성과 특별함에 대해서 끊임없이 언급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의 과잉된 자의식은 간혹 그를 자만심에 빠진 인물로 보이게 만든다. 실제로 그는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원'을 자퇴했는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기에는 교수들의 수준이 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인생 혼자 사는 괴짜 예술가였을지언정, 다른 이들의 예술을 폄하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보다 윗 세대의 천재들을 존경했으며 이는 그의 예술 인생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달리는 '아무것도 모방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런 그가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밑거름은 '파블로 피카소'였다.
루브르 박물관을 가보기도 전에 가장 먼저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
만약 나를 포함해 프랑스에 처음 간 사람이 루브르 박물관이 아닌 다른 장소를 가장 먼저 가고자 한다면(에펠탑은 제외하고) 그 장소는 아마 그 사람이 프랑스 여행을 결심한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달리는 프랑스에 도착해 루브르 박물관을 가보기도 전에 피카소를 만났다. 그는 피카소를 처음 만났던 경험을 '마치 교황을 직접 알현하는 일'에 빗댈 정도로 감격했다고 표현했다. 이보다 더한 존경의 표현이 있을까. 피카소에 대한 존경심은 달리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입체주의 화풍을 연구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달리는 초현실주의의 대표주자가 되었지만 그의 작가 인생 말년까지 선배 예술가들들 칭송하며 그들의 작품들을 재해석했다. <아비뇽의 어린 여인들>은 그가 존경했던 피카소의 대표작 <아비뇽의 처녀들>을 따라 그린 것이며, <지질학적 메아리> 역시 거장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달리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그림이다. 이 밖에도 그는 디에고 벨라스케즈, 얀 베르메르 등 고전시대 거장들에 대한 존경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삶 전체에 걸쳐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 남과 다름을 분출했던 달리였기에, 그가 품은 '거장'에 대한 경외심은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의 변신은 전통이다. 왜냐하면 전통이란 바로 변화이고 또 다른 껍질의 재창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이 달리의 작품세계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의 작품이 '소재'가 아니라 '표현 방식'을 중심으로 변화해갔다고 느꼈다. 유년 시절, 뮤즈, 사랑, 시간, 무의식, 환각, 혹은 무의미(그가 참여한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에서처럼). 그가 작품 소재들은 많은 예술가들 역시 다뤘던 것들이었다. 그가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천재로 불리는 것은 그가 편집광적 비판이라든가 이중형상 기법 같은 참신한 표현방법의 선구자였으며 캔버스뿐만 아니라 삽화, 잡지 표지, 연극, 영화 등 그의 활동 범위를 끊임없이 넓혔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동안 고전주의 예술가들을 존경하면서도 다양한 학문, 특히 수학과 과학에 몰두하며 현대 과학과 고전 예술의 융합을 실험하기도 했다.
전시회 도록 중 '대가들을 바라보며 1980년대'를 보면 달리는 '옛 대가들의 기술과 정신을 분석하고 계승하면서, 동시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기를 들었다'라고 한다. 여기서 '의문과 반기'는 그가 선대의 작품에서 발견한 재창조의 여지를 뜻한다. 달리는 거장들을 존경함과 동시에 남과 다르고 싶어 안달 난 '진짜' 예술가였다. 누가 검정이라고 말하면 하양이라고 대답했고, 누가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면 침을 뱉었던 그였기에 달리는 위대한 장인들의 기술과 정신을 계승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했고 특별한 사람으로 남기를 바랐다. 그랬기 때문에 '존경'과 '의문과 반기'는 그의 작품세계에서 공존할 수 있었다.
보는 방법에 따라 새로운 것이 창조될 수 있다.
순도 100%의 창작이라는 것은 예술의 탄생 이래로 존재할 수 없었으며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번뜩이는 영감은 과연 예술가 고유의 능력 덕분일까? 아니면 그가 여태까지 경험한 모든 외부 세계와 자신의 내부 세계가 융합하며 빚어낸 산물일까. 나는 후자라고 자신한다. 이는 미술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의 예술에 해당되며, 특히 현대 음악에서 아티스트 한 명이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하다. 국내 래퍼로 범위를 좁힌다면 간혹 '더콰이엇'이나 '버벌진트'처럼 프로듀싱부터 시퀀싱, 작사,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혼자서 가능한 아티스트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혼자만의 힘으로 영감을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앞선 음악가들의 기술 없이는 자신만의 것을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보는 방법에 따라 새로운 것이 창조될 수 있다'는 달리의 말을 음악에 접목시키면 '샘플링'이 연상된다. 샘플링은 기존에 존재하는 음원을 재가공하여 아예 새로운 음악으로 재창작하는 작법을 말한다. 흔히 힙합이나 일렉트로닉에서만 샘플링을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현대로 넘어오면서 샘플링은 음악 전 장르에 그 영향력을 뻗치고 있다. 기존 음원을 편집하는 것뿐만 아니라 음악을 다시 연주하거나 멜로디 및 가사를 차용하는 것도 샘플링의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에 샘플링 없이 음악 산업을 논할 수는 없다.
Sting - Shape of My Heart (Official Music Video)
Juice WRLD - Lucid Dreams (Directed by Cole Bennett)
[RAIN/비] 2nd - How To Avoid the Sun[태양을 피하는 방법] [Official MV- 2003.10.16]
샘플링은 기존에 존재하던 창작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조한다는 점에서 '보는 것에 따라 새로운 것이 창조될 수 있다.'라는 달리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Juice WRLD'는 레옹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Sting'의 'Shape of My Heart'를 장르적으로 변형해 이모(EMO) 힙합곡으로 재해석했고, 박진영은 같은 곡을 기타 및 리듬의 변주를 통해 댄스곡으로 재탄생시켰다.
프로듀서 피제이가 작곡한 빈지노의 'Dali, Van, Picasso'는 'Chet Baker'의 'Alone Together'를 샘플링한 곡이다. 현재는 샘플 클리어런스가 완료된 곡이지만 사실은 표절시비가 불거지자 '선 발매 후 클리어'가 된 곡이다. 앞서 소개한 'Lucid Dreams' 역시 원곡자 Sting과 협의가 되지 않은 채로 발매되었다. 샘플링은 물론 아름답고 매력적인 작법 중 하나지만, 현실의 저작권법을 만나면 상황이 녹록지 않다. 샘플 클리어의 경우 창작자가 원곡자와 직접 접촉하여 해결해야 하며, 원곡자의 허락을 받은 경우 창작자는 원곡자를 공동 작곡가로 이름을 올리거나, 수입의 일부를 그에게 주어야 한다. Juice WRLD는 그렇기 때문에 Sting과 'Shape of My Heart'의 기타리스트에게 'Lucid Dreams'의 수익의 85%를 지급하기로 했다. (물론 수익 분배 방식은 이보다 훨씬 다양하다) 당연히 샘플 클리어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샘플링 곡을 발매할 경우 이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될 수 있다.
샘플링이 빈번히 사용되는 미국 팝 시장조차도 샘플 클리어는 쉽지 않다. 원곡자와 협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창작자의 명성 혹은 원곡자의 원곡에 대한 애착 등을 이유로 클리어런스 비용이 천문학적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보다 더하기 때문에 공식화된 샘플 클리어 루트는 따로 없다고 보는 것도 무방하다. 따라서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경우 현실적으로 샘플 클리어 이후 곡을 발매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 놓인 아마추어 프로듀서들, 혹은 샘플 클리어 과정을 거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여기는 프로 작곡가들은 샘플팩을 구매해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샘플팩의 소스는 구매 즉시 구매자에게 저작권이 넘어가기 때문에 얼마든지 재가공해 사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 K-POP 노래들도 서로 같은 샘플을 사용한 경우가 많다. 샘플팩 사용은 무단 샘플링보다는 확실히 도덕적으로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샘플 클리어 과정이 너무 어려워서 그냥 무단으로 샘플링해서 곡을 낸다는 변명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현재 시스템이 샘플 클리어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스템의 한계가 남의 창작물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못한다.
샘플링할 곡을 찾거나 혹은 그저 숨겨진 좋은 노래를 찾기 위해 이 음악 저 음악 뒤지며 탐구하는 행위를 '디깅(Digging)'이라고 한다. 그렇게 디깅을 하다가 '오, 이 노래 이런 식으로 샘플링하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든 순간, 창작자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가? 좋은 노래를 찾았다는 성취감, 이 노래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재탄생시킬 날을 기대하는 흥분감,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이렇게 사랑스럽고 멋진 곡을 세상에 놓아준 원작자에 대한 '존경' 역시 샘플링 아티스트의 마음가짐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바도르 달리는 피카소를 비롯한 그가 사랑한 거장들을 평생에 걸쳐 칭송했으며 그들의 작품을 재해석한 그림을 세상에 내놓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게 튀는 존재가 되고 싶어 했던 달리였지만 '내가 이 화가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새롭게 그려 봤어!'라는 사실에 대해 어떤 부끄러움도 없었다. 거장과 그의 작품, 그리고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녕 예술을 사랑하고 원작을 재창조한 자신의 작품이 자랑스럽다면 재창조한 사실을 숨기지 마라. 그리고 그 영감을 선물해준 수많은 선대의 예술가들에게도 리스펙트를 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치 달리가 그랬던 것처럼.
미술사 거장들처럼 그리고 칠하는 법부터 배워라 그 후엔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그럼 모두가 너를 존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