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以前)과 이후(以後)

나는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by JUNE HOLIDAY

고등학생 시절 수학을 그렇게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몇 시간 동안 끙끙 앓던 문제를 혼자 힘으로 풀어냈을 때의 쾌감을 느껴본 적은 몇 번 있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만큼 짜릿한 것은 문제 자체의 오류를 찾아냈을 때였다. 처음부터 풀 수 없었던 문제로 몇 시간동안 고생했다는 것에 분노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문제의 오류를 발견함과 동시에 문제에 대해 순간적인 우월감을 느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문제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다가 최근 정말 오랜만에 오류 있는 문제를 컴활 문제집에서 마주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문제에 오류는 없었으며 오히려 나의 무지를 확인하고 반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가 오류가 있다고 착각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kb기본급'은 입사일, 근무년수, 급여증가분을 인수로 받아 기본급을 계산하여 되돌려줌


입사일의 년도가 2015년 이전이면 기본급은 1000000 + 근무년수 x 급여증가분으로 계산하고 2016년 이후이면 800000 + 근무년수 x 급여증가분으로 계산


부끄럽지만 난 이 문제를 다 읽자마자 '어? 그럼 입사년도가 2015년이면 어떻게 되는거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2015년 이전'이라는 표현에 2015년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문제의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답지를 찾아 보려는 찰나에 나는 내 자신도 모르게 '2016년 이후'를 '2016년을 포함한 그 다음 연도들'이라고 받아들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뭔가 착각했다는 것을 느끼고, 문제에 오류가 없다는 전제 하에 함수식을 작성해 보았다.



SELECT CASE Year(입사일)

Case is <=2015

kb기본급 = 1000000 + 근무년수 x 급여증가분

Case Else

kb기본급 = 800000 + 근무년수 x 급여증가분

End Case




'Case Else' 부분이 입사년도가 '2016년 이후'인 직원의 기본급을 구하는 식이다. 즉 '2016년 이후' 에 포함되지 않는 기간은 'Case is' 부분에 포함되어야 하며 결국 2015년도도 이에 해당되어야 한다. 답지를 확인해보니 위의 식이 정답이었다. 결국 문제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 머리속에 '이전/이후'라는 단어의 개념이 정확히 잡혀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내 의식의 흐름 속에서 '이전/이후'의 뜻이 혼선을 빚은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이전/이후'의 개념에 대해 곱씹어 보던 중 자연스럽게 초등학생 때 배웠던 '이상/이하', '초과/미만'의 개념을 떠올렸다. 이상과 이하는 기준이 되는 숫자를 범위에 포함하며 초과와 미만은 그렇지 않다. '이전/이후'의 개념은 '이상/이하'와 유사하다. 그렇다면 네 단어에 모두 들어 있는 '이' 자는 같은 한자를 쓰는 것일지 궁금해져 국어사전을 검색해 봤다. 검색 결과, '이전/이후', '이상/이하'는 각각 '以上/以下'와 '以前/以後'로 모두 '써 이(以)' 자를 공유하고 있었다. '기준을 포함하는 범위를 칭한다'는 개념의 유사성 때문에 '以'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니 '이전/이후'의 개념이 정립되는 듯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국어사전에 등재된 '이전'의 뜻은 다음과 같이 두 개였다.



1) 이제보다 전


2) 기준이 되는 때를 포함하여 그보다 앞



'이후' 역시 마찬가지로 뜻이 두 가지였다. '이제'라는 것은 '지금'을 뜻하므로 '이전'은 기준이 되는 시기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 '1) 이제보다 전'을 의미하고 '대공황 이전', '산업 혁명 이전'처럼 시기가 명시되어 있을 경우 '2) 기준이 되는 때를 포함하여 그보다 앞'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는 '써 이(以)' 자가 '~부터'라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금 더 찾아보니 '이전'과 '전'은 엄연히 다른 뜻이라고 한다. '정상회담은 설 이전에 열릴 것이다' 라고 했을 때, 정상회담이 설 당일에 열릴 가능성이 없다면 '정상회담은 설 전에 열릴 것이다' 라고 써야 맞는 말이다. 마치 '이상'과 '초과'가 다르듯이 말이다. 다만 사람들이 '이전'과 '전'을 엄밀히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정상회담은 설 이전에 열릴 것이다' 라는 기사를 읽더라도 '아, 설날이 되기 전에 정상회담이 열리겠구나'라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처음 문제를 읽었을 때는 내가 설마 '이전/이후'의 뜻을 오해하고 있었을 것 이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고, 문제의 오류로 치부했던 내 자신이 그저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 단어의 한문 표기와 정확한 뜻을 찾아보면서, 부끄럽긴 하지만 내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여기던 개념들의 뿌리가 생각보다 깊지 못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내가 안다고 여기는 것 중에 정말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앎'은 '넓이'가 아니라 '깊이' 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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