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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HOLIDAY Jul 09. 2023

08/07/2023

 간밤에 회를 먹고 배탈이 났다고 한다. 온 가족이 먹었는데 자기만 아프다고.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어머니께서 등을 두들겨 주셨다고 한다. 아마 그 소란에 고양이도 잠에서 깨서 뒤척거렸을 것이다. 다 나은 줄 알았던 목감기가 하룻밤만에 다시 도져서 장난 삼아 앓는 소리를 하려다가 말이 쏙 들어갔다. 밤새 그렇게 아팠다는 소식에 눈이 번쩍 떠졌다. 


 빈속에 날 것을 먹어 급체라도 한 것일까. 그런데 체했을 때도 열이 나고 근육통이 생기나? 부모님께 여쭤보니 의학적으로 '체했다'는 개념은 없는 것이라고 한다. (두 분 다 의학계 종사자는 아니지만) 그렇다면 아마 급성 장염과 몸살이 한 번에 온 것 같다. 본인은 괜찮다고 해도 점점 일이 바빠 보였는데 지친 몸이 날것을 소화시키려다가 탈이 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서울에 살고 여자는 울산에 산다. 벌써 꽤 오랫동안 이런 연애를 해오고 있다. 적응은 됐지만 문득 너무나 보고 싶은 시기, 순간이 있다. 그 순간들이 서로 맞지 않는 것 같을 땐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오늘처럼 한 명이 아플 때 다른 한 명은 좌불안석이다. 아픈 사람이 걱정되는 것이 첫 번째다. 또한 아파서 서러운 상대방이 내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것은 두 번째다. 말로만 하는 걱정에 공허함을 느끼지는 않을까, 단지 몇 시간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고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결혼할 거 아니면 청춘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여자의 지인의 말이 생각나 남자는 묘한 죄책감에도 둘러 싸인다. 


 얼굴을 자주 볼 수 없는 연인들은 어떻게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까. 카톡에 붙은 하트의 개수? 전화 통화 중 얼마나 할 말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지? 아니면 한 달에 몇 번이나 얼굴을 보는지? 그것도 아니면 갑자기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얼마나 빠르게 눈앞에 나타날 수 있는지로 그 사랑을 재볼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우리의 사랑을 재볼 필요가 있는 걸까. 보고 싶을 때 보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굳이 가고 싶지 않았던 곳이라도 한 명이 원한다면 기꺼이 가던 우리였다. 단순하고 열정적이었던 우리의 사랑에 시간과 타인의 참견과 사회적 압박이 끼어들어 점점 복잡해진다는 생각도 든다. 


 쉽지 않은 인생을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풀어줄 수 있는 나만의 문장이 두 개 있다. '그럴 수도 있지'와 '굳이?'. 지금 우리의 관계에 다른 사람의 말을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굳이? 내가 서운함과 조급함을 느낀다면 그건 상대방의 잘못일까?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지. 행복은 순간이지만 사랑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어느 시점에 그 사랑을 확인하느냐에 따라 사랑의 크기가 달라 보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점'으로 된 그 순간의 사랑의 겉모습이 아니라 '선'으로 연결된 둘의 사랑이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약을 먹고 푹 자고 나니 한결 좋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근육통은 아직 심한데 동생 놈이 제대로 주물러 주지도 않는다고. 아픈데 보지 못해 서럽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한다. 아침보다 많이 힘이 붙은 목소리에 나도 한시름 놓았다. 아픈 모습만 보여주고 다시 서울로 가지 말고 건강할 때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오늘도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사랑한다, 잘 자라 라는 말로 하루의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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