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은 이제 빠져 버려.
“왜 땅 모양이 이래서 이렇게 사람을 고민스럽게 만들지?” 땅 모양이 반듯한 정사각형이 아니어서 땅의 효율성이 낮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시작부터 복잡한 생각이 몸을 무겁게 한다. 그동안 세상을 단순하게 살아와서인지 ‘효율성’이라는 단어가 생각을 지배했나 보다. “반듯한 땅이면 땅 활용도가 좋겠지. 하지만 반대로 재미는 없을 거야.” 농장이라면 효율을 최고로 추구해야 되는 거 아냐?
NO.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속하기 위해서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공간적 재미는 경계가 반듯반듯한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 굴곡진 경계에서야 말로 공간적 재미가 극대화된다. 뷰의 사각지대가 생기고 그곳에는 돌들로만 벽을 쌓아 창고를 만들고 어느 한 구석에는 장미꽃으로 가벽을 만들자. 그런데 생각 연습이 안 되어 있는 관계로 와우 포인트가 될 만한 공간적 구상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식물 가꾸는 일을 하기 위해서 농장 일을 시작한 건지, 공간을 꾸미기 위해 일을 하는 건지 혼동스러운 나날이다. “아직 춥고 잡초가 땅에서 마구 솟아나기 전이니까 그런 거야”라고 애써 마음을 잡는다.
농장을 꾸미는 기본 재료를 선정했다. 적벽돌, 방무목, 개비온 철망, 땅에서 막 캐올 린 따끗따끗한 돌. 이 4인방으로 농장을 꾸밀 것이다. 음.. 어떻게 하는 것이 눈을 행복하게 할까? 한참을 봐도 도무지 나의 머리에서는 떠오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정답이 없는데도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답을 찾고 있는 나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 생각이 유연하지 못했구나. 할 수 없이 남들의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해 열심히 핀터레스트를 뒤적인다. 너무 멋진 이미지들이 많다. 그들의 아이디어를 농장에 그대로 적용해도 될 것 같다. 아니 적용하고 싶다. 그대로 말이야. 벽돌을 바닥에 쌓고 그 위에 목재를 고정시켜서 나무 펜스를 만들면 좋겠다. 벽돌은 적벽돌이 예쁘지.. 와우 소리가 날 만한 이미지를 이것저것 캡쳐 해 두었다. 그대로 따라 한다면 멀지 않아 예쁜 정원이 될 것 같았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따뜻하니까 2월에도 밭일을 시작할 수 있다. “자 우선 뭐부터 하는 것이 좋을까?” 발아래의 많은 돌들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다.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그것부터 해야 한다. 땅이 덕장의 황태처럼 부드럽게 변해 있는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설날 연휴에도 농장으로 총출동이다. 오늘의 목표지점은 도로와 농장 입구가 만나는 지점이다. 땅 경계를 따라 돌무더기와 흙이 뒤섞여 있는 둔덕이 있다. 삽은 절대 안 들어간다. 손으로 일일이 돌을 옮기고 사이사이에 있는 흙을 삽으로 옮겨야 한다. 이 둔덕이 있어서 농장 입구가 비좁아 보였는데 이것만 치운다면 꽤 땅이 넓어질 것 같았다. “차를 유턴도 할 수 있을 공간이 나올 것 같아” 그동안 농장 입구까지 차를 타고 들어와서 집으로 돌아갈 때는 후진으로 나가야 했었다. 그 불편함도 올해 봄이 오기 전에는 사라진다. 작업 후에 어떻게 땅 풍경이 변해있을지 구상해봤다.
돌 하나, 돌 둘, 돌 셋, 돌 넷.. 여전히 삽을 땅에 집어넣으면 날카로운 금속 소리가 울렸다. 발로는 도저히 삽이 땅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성격의 지대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에 분개했다. 손목과 허리가 슬슬 아파온다. 전략을 바꿨다. 땅에 한 구덩이를 제법 깊게 파고 구덩이 측면을 계속 공략하는 방법이다. 삽을 지렛대로 삼아 구덩이 측면 아래에서 위로 올리니까 땅 속에 숨겨져 있던 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보다 손쉬웠다. 땅 위로 올라온 돌들을 손으로 일일이 집어서 통에 담았다. 몸이 고생하는 만큼 땅에 대한 애착과 농장에 대한 오기가 생긴다. 그렇게 두 시간 뒤 조금씩 부드러워져 가는 흙들.. 삽이 푹푹 잘 들어가는 영역이 점차 넓어져 간다. 삽이 저항감 없이 푹푹 들어갈 때의 그 희열을 느껴봤다. 땅이 평평해져 가고 정리되어 가면서 눈도 편안해진다.
이제 늦은 오후가 되었다. 저물어 가는 해에 눈이 부셔온다. 개비온 철망 안에 돌을 넣는 작업을 했다. 철망 안에 제법 많은 돌들이 쌓여갔고 돌담 느낌을 마구 풍겼다. “이거 보겠다고 참.. 하하” 폭이 1미터짜리 철망 안으로 돌이 꽤나 들어간다. 청소기 마냥 주위 돌들을 다 쓸어 담는다. “아이구 이젠 돌이 부족하네.” 돌담을 쌓기 위해서 더 열심히 땅을 뒤적여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다시 돌 하나. 돌 둘. 돌 셋. 돌 넷. 아직 젊은이의 몸이지만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다. 돌을 줍는다고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허리가 무척 아프다. 장갑을 꼈지만 돌에 닳아서 가운데 손가락 부분에 구멍이 나서 맨 살이 드러났다. 지루하고 육체적 힘든 일을 인내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나팔꽃을 철망 부근에다가 심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 철망을 타고 올라가서 꽃을 피울 나팔꽃을 생각하면 올해가 기대된다.
나의 나팔꽃 기억은 1990년으로 올라간다. 제일 첫 번째 기억이다. 지방 중소도시의 초등학생 1학년 일 때이다. 등교 길에 한 물류창고를 지나야 했다. 그 창고 담벼락은 철망으로 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 시간 철망에 매달려서 보라색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진 기억이다. 녹슨 철망과 허름한 창고 건물, 정리되지 않은 공터였지만 그 나팔꽃은 그 모든 것을 아름답게 했다. 등교 길에 나를 이끌었다. 그쪽으로 꼭 지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동경하게 했다. 하지만 멈춰 서서 나팔꽃을 오랜 시간 볼 수 없었다. 걸어가면서 힐끗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을 내주어야 했다. 겉은 아무렇지 않은 척 속 마음은 “너무 아름답다.” 남자아이와 나팔꽃. 그 시대는 그랬나 보다. 어린아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아버지한테 꽃을 좋아한다고 핀잔이라도 들었나? 좋으면 좋은 거지. 언젠가 그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다. 30년이 지나서 나는 이곳에 그때의 기억을 재현하려고 한다. 하늘색 나팔꽃을 심을까? 자주색 나팔꽃을 심을까? 너무 행복한 고민이다. 드디어 나팔꽃을 마음껏 뚫어지게 볼 수 있게 될 운명입니다. 강화도 나팔꽃 농장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두더지가 조용하다. 땅의 돌을 제거한다고 마구 파헤치는 바람에 놀라서 도망을 간 모양이다. 매주 비닐하우스 안쪽까지 구멍을 만들어 놓던 녀석도 이젠 작업하지 않는다. 덕분에 겨울 쥐도 이젠 보이지 않는다. 햇빛 아래 몸을 누이고 있던 옆 집 개들이 고양이를 빠르게 뒤쫓고 있다. 그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