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드래빗 Sep 16. 2018

그 줄 뒤에 서있지 않아도 괜찮아.

숙대 쪽에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대로 후암동을 지나 한남고가차도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너기 위해 다리 위로 진입했다. 다리 시작점에서 1km도 채 못돼 올림픽대로를 타야 했기 때문에 오른쪽 끝 차선으로 차를 붙이고는 아차 하고 후회가 밀려들었다. 올림픽대로가 막히는 중인데 강변북로에서 올라오는 차량까지 합류해  가장 오른쪽 차선은 그야말로 전혀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저 앞쪽으로 끼어들기 차량까지 한 줄 더 늘어서 있다.

 순간 짧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건너가는 차량도 없는데 왼쪽 깜빡이 키고 그냥 중앙선 끝까지 붙이러 나갈까? 아니면 그냥 음악이나 듣게 천천히 이 줄 뒤에 기다리고 있을까? 줄이 좀 짧아야지. 이러다가는 다리 위에서 30분도 더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해왔다. 그냥 왼쪽 깜빡이를 켜고 나는 그 행렬을 빠져나와 중앙차선까지 차를 갖다 붙이고 빠른 속도로 다리를 통과했다. 한남대교 남단으로 빠져나온 나는 유턴하여 다시 올림픽대로로 들어섰다.

 그리고 시속 30km로 천천히 올림픽대로를 지나고 있는데 다시 긴 행렬의 끝에 서게 되었다. 얼마 동안 뻥뻥 뚫리는 길을 달렸는데 이번에는 분당 수서 간 고속도로에 올라가기 위한 줄 앞에서 또 한 번 정체가 시작되고 있었다. 영동대교도 못가서부터 이렇게 줄을 이루고 있다면 또 늦어질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에둘러 가기로 마음먹고 차를 왼쪽으로 빼 종합운동장까지 가서 뚝방길로 내달려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나는 비교적 길을 잘 찾는 사람이다. 위와 같이 내가 가야 할 길만 막히는 상황에서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데 크게 두려움이 없다. 게다가 막히는 행렬의 맨 앞에 사고가 났을지 정말 차들이 많아서 막히는지, 아니면 어떤 한 차가 막히는 도로 위에서 핸드폰을 보느라 앞차와의 간격을 따라잡지 않은 채로 줄만 길어진 건지 궁금하면 그 줄 맨 뒤에 가만히 기다리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출처: 네이버 지도>


우리는 잘 모르면 그냥 줄을 선다.

음식점에 줄을 서 있으면 그냥 맛집이겠거니 하고 뒤에 서서 기다리기도 하고, 화장실에서도 긴 줄 맨 뒤에 서있던 경험이 있었으리라.  그런데 그 음식점 줄이 내가 가려했던 집의 옆집 줄이었다거나 화장실 줄도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 뒤에 그냥 생겨난 줄이었다면? 대략 난감하게 허탕을 치고 말았던 경험이 대부분 있을 것이다. 앞을 모르는 길 뒤에 그냥저냥 서 있을 수밖에 없으면 생겨날 수 있는 결과다.

추석 기차표를 사기 위해서도 줄을 선다. 새벽부터 기차역에 담요를 덮고 기다리면서까지 표를 구하려 한다. 설사 내 앞에서 표가 매진되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줄을 선다.

 요즘 떠득썩한 부동산 사태도 줄 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은 분명 모멘텀(Momentum) 투자다. 모멘텀 투자는 장세가 상승세냐 하락세냐 하는 기술적 분석과 시장 심리 및 분위기 변화에 따라 추격매매하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기업의 펀더멘탈이나 부동산의 가치에 대한 고민 없이 그냥 남들이 사니까 나도 줄 서서 따라 사고 남들이 파니까 나도 따라 팔아 버리는 게 모멘텀 투자이기 때문에 위험하다. 지금은 이것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결정을 하는데 경기 순환 지표를 한 번 확인하고 차분히 생각해보면 좋겠다.



우리는 줄 세우기를 좋아한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전교생 600명 중에 전교 50등까지 전지에 매직펜으로 이름을 써서  게시판에 붙여뒀다. 쟤는 내 이름보다 앞에 있는 잘하는 애, 내 이름보다 뒤에 있는 애들은 나보다 못한 애 이렇게 서열이 정해진다. 물론 거기에 이름이 없는 애들은 그들끼리 또 서열을 맞춰본다. 그렇게 전교생이 똑같은 과목을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이 수업을 듣고 대학을 가기 위해 수능을 봤다. 담임이 대학 배치표에 큰 자를 대어 "여기서부터 여기 학교랑 과 중에 3개 골라라."라고 말씀하시는 게 진학 상담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수능 성적에 따라 대학을 결정하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은 그 서열대로 살고 있을까? 물론 공부를 무지하게 잘했던 친구들은 5급 행시를 통과해 국정원에서 일하고 있기도 하고 한의원이나 치과를 개업하여 살고 있기도 하다. 그 외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전교 50등 안에 있던 친구들은 그 순위대로 재산을 가지고 행복을 누리며 지내고 있을까?

단 한 번도 게시판에 이름이 오르지 못했던 친구는 지금 유명한 방송인이 되었고, 전교 임원 하느라 바쁘게 다니기만 했던 친구는 부동산 재벌이 되어 얼굴 보기도 힘들다.  재수까지 했던 친구는 부잣집 며느리가 직업인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으며 다른 친구는 대기업에서 오래 근무하다 큰 음식점 사장으로,  나는 글을 쓰며 살고 있다.


줄 밖의 인생을 찾고자 한다면

 갈매기 조나던이 되어 바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수밖에 없다. 위에서 조망해보면 다른 길이 분명 보인다.

좀 더 큰 판을 더 위에서 내려다보면 지금은 찰나의 순간이며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 틀린 것일 수 있다.  


인생 전체를 펼쳐놓고 생각해보자.

꼭 남들이 다 가는 길, 짜 놓은 대로의 길을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다.

더이상 남들 뒤에 서 있다고 안전한 인생이 아니다.

줄 밖으로 나서면 혹여 더  늦을 수도 있지만,  보통은 내가 원하는 것들을 더 빨리  제대로 찾아가며 도착할 수 있다으니 줄 밖으로 한 걸음 내딛어 보자.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
여태껏 발견 못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어라.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Walden)' 중 -



매거진의 이전글 돈을 모으고자 한다면 길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