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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건 다 고기서 고기다.

마카오 육포 골목에서 만난 인생

by 골드래빗

마카오의 여름은 매우 덥고 습합니다. 홍콩에서 페리를 타고 약 1시간. 있지도 않은 뱃멀미로 고생을 해서인지 마카오에 발을 들인 순간....'아.. 잘못 왔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짜 그 날은 저녁 무렵까지 호텔에서 나오지 않았었네요. 마카오는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는 말을 130% 동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다음 날 낮에 잠시 관광객 모드로 변신하여 유명한 몇 군데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고,

" 세 나도 광장 갑시다"

대강 지도를 보니 세 나도 광장을 중심으로 위, 아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건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5분도 안돼 도착한 세나도 광장은 의외로 한산했습니다. 가만 보니 뙤약볕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나무 그늘 아래 또는 건물마다 몸을 숨겨 한낮의 태양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중국 본토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 꽤 많더라고요. 저 같은 한국인이나 서양인은 거의 보기 드물 정도였습니다.


관광지에서는 굳이 지도를 보며 걸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사람들이 걷는 방향을 따라 몸을 움직이면 되니까요. 우르르 올라가는 인파를 따라 약간 경사진 길을 올랐습니다. 광장에서부터 성바오로 성당까지 오르는 길바닥은 작은 타일 조각들이 깔려있는데 물결무늬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곳이기 때문에 그 영향이 건축물은 물론 길바닥도 깔사다(calsada)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남아 있었네요. 메인 도로 양 곁으로 보이는 골목들도 유럽의 어느 길을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그 모든 곳곳을 눈에 가득 담고.. 발걸음을 서둘렀죠.


<마카오 세나도 광장>

잠시 뒤 눈에 익은 브랜드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휠라, 이니스프리, 라네즈... 앗.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삼청동, 가로수길에서 봐왔던 젠트리피케이션이었습니다. 마카오 이 길들도 지역인들은 떠나고, 글로벌 대기업들이 자리를 잡아가는구나...라는 생각에 좀 씁쓸했습니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죠. 사드 보복 때문에 우리나라를 찾지 않는 요우커를 공략하기 위해 이들 기업들도 참 애쓰는구나..


성 도미니크 성당을 돌아 성바오로 성당에 다다르자 이번에는 매우 혼잡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였습니다. 가게에서 나온 사람들이 시식용으로 육포를 잘라 주는 게 아닙니까. 육포를 몇 군데서 주는 대로 받아먹다 보니 대 여섯 개는 씹은 듯합니다. 집집마다 맛이 조금 다르고 익힌 정도와 도톰하게 씹히는 질감이 조금씩 달랐으나 별반 차이를 못 느꼈네요. 다들 경쟁이나 하듯이 팔을 끌고 본인 가게로 데려갑니다. 저는 살짝 몸을 피해 일단 성바오로로 올랐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성바오로를 등지고 몸을 돌렸는데 아까 그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좀 전에는 오르막길도 힘들고 성바오로 성당을 보기 위해 올라야 한다는 목적 때문에 다른 건 신경 쓰지 못했었는데, 다시 내려다보니 아... 그 사람들의 삶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죠.


< 육포 골목의 시식 담당자들>

그들은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팔아야 생활이 가능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떼로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자기 가게로 유치해야 하니 길 한가운데까지 나와 영업을 하고 있네요. 길은 매우 시끄러웠고 혼잡스럽고 사람들은 퉁명스럽기까지 한데도 말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지나쳤을 그 육포 시식이 그들에게 중요한 생활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꼿꼿이 자신의 하루를 살고 있었던 것을 이제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호텔에 돌아가서 밤에 맥주랑 좀 먹을까 하는 마음에 육포 한 봉지를 사보았네요.


산다는 건 고기로 만든 육포랑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고기의 익힌 정도와 양념의 차이가 좀 있더라더 별 수없이 고기는 거기서 다 거기잖아요. 그냥 육포라는 집단에 속하는 것처럼 . 삶도 다 거기서 거기죠. 특출나게 잘난 사람 외에 사는 모습 거의 차이 안난답니다. 남들 어떻게 살든말든 내가 무얼 하든 말든 다 비슷비슷하니 크게 동요 받지 않고 살아도 된다 말하고 싶은 밤이네요.



수고했다고... 오늘도 누군가의 가장으로 자식으로 살아낸 당신의 하루에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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