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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줄게, 나의 20대

by 골드래빗


불안과 방황의 길 위에 서있던 네가
늘 안쓰러웠어.
지금 내가 너를 기억하고
이렇게 안아줄 수 있어 다행이야.

홍콩 여행의 마지막 밤, 하버뷰가 내려다 보이는 이 곳 코즈웨이베이의 어느 호텔에서 나는 나의 20대에게 다정한 안부를 묻습니다.


지난 9일간 나는 그때의 내 모습을 이곳저곳에서 찾아보았죠. 20대에 여행 왔던 홍콩의 골목에서 가만히 다시 나를 떠올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끼는 밤입니다. 이제 막 여유가 생긴 40대에 들어서는 내가 20대의 나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하고 싶어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았네요.





#1. 너는 예쁘게 살지 못했지만 애썼다고

평범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범한 노력 한다고 고생했어.

너는 수업을 야간으로 돌리고 주간에는 아르바이트와 인턴을 한다고 정신없었지. 과 친구들이 휴학했다고 착각할 정도였으니. 똑같이 출발했던 전공이었지만, 실습실보다는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싶어 작은 디자인실 인턴으로 공장을 매일 다녔었어.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빠르게 돌아가는 시스템을 익히며, 책과 학교 실습실로는 성에 안 차는 스케일을 가질 수 있었지. 연습이 아닌 진짜를 빨리 만나고 싶어 했던 것 같아.

예쁘고 재밌는 대학생활을 못했지만, 덕분에 조기 취업을 할 수 있어 부모님께 면이 섰던 거. 칭찬해줄게.


#2. 너의 열정은 아직도 내 몸과 정신에 각인되어 있다고

추운 겨울 용인 연수원. 30명의 신입사원들을 데리고 올랐던 M.A.T. 훈련에서 지도선배였던 나는 교육생들을 굴리는 역할을 했지. 전방을 향해 함성은 왜 질러라 했을까. 내 열정을 그들에게 확인받고 싶었던 것일까. 종일 산을 탔음에도 하나도 지치지 않았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나.

그때 그 함성의 열정은 아주 오랫동안 회사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지. 잘될지 잘되지 않을지 모르는 프로젝트도 무언가를 극복해냈던 열정으로 성공시켰어. 열정에서 나온 몰입은 온몸 구석구석 남아 있어 '헐렁하지 않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계속 더 단단해지고 있는 거 같아 다행이야.


#3.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많나 줘서 고마워

스무 살, 서울에 올라와 기숙사 2층 침대에 짐을 올려놓고 그제야 나는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눈물을 쏟았었지. 그때 만났던 경제학도 K. 전라도 출신으로 말투도 다르고 전공도 달랐지만 이 친구와 이렇게 20년 동안 해로할 줄이야. 우리는 함께 동아리를 들었고, 프랑스어 시험공부를 했고, 정동진 새벽 기차를 탔으며, 서해 바다를 여행했어. 어느 일요일 오전, 종각에서 을지로까지 걸으며 이 많은 건물 중에 우리가 취직할 곳이 한 군데도 없다며 한숨 쉬던 날도 있었고. 종로 YBM 건물 뒤 작은 식당에서 밥 먹으며 토익 학원을 다녔던 거.. 그 모든 추억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줘서 고마워.


스물넷, 어느 날 사무실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거래하고 싶으시다고 들어오신 눈매가 선하신 P사장님. 2만 원 이상 밥 한 번 얻어먹은 적 없었고 nego 힘들게 하던 깐깐한 MD였지만, 나를 참 좋아해 주셨던 분. 그게 다인데.. 늘 내 덕분에 거래 터서 건물도 올렸다며. 퇴사했음에도 매 년 전화를 주시네. 책 한 권 냈다고 작가라고 소개하기도 그렇고.. 그냥 집에 있다는 말만 드릴뿐인데. 나한테는 꼭 빚을 갚으시겠다는데. 말씀만이라도 고맙고 왠지 남겨두고 싶은 조커 카드처럼 간직하고 싶은 말이지. " 뭐든 말만 하라는."


그 외도 잊지 못할 만큼 다정했던 사람들, 좋은 상사, 운명처럼 나타나서 나를 도와주거나 영감을 주고 떠났던 사람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는 항상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어. 그게 너무 고마워.


인생은 에스컬레이터 없이 올라가는 퇴근길의 계단 같은 것
<태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홍콩 하늘, 그리고 낮부터 글을 써볼까 커피를 마셨던 내 자리>





20대의 나는 별로 가진 게 없어서인지 비싼 것으로 나를 드러내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던 것 같습니다. 백화점에서 파는 5만 원짜리 머리핀을 하기도 했고, 한 달 월급을 훌쩍 넘기는 루이뷔통 백을 사기도 했거든요. 내 기억에 당시 통장에 3백만 원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제 나는 비로소 가진 것을 숨기고 싶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정말 다행이다 싶습니다. 40 대가 되어서도 자꾸 나를 드러내기 위해 무언가 비싼 것들로 설명해야 한다면? 굳이 나의 자산을 드러내기 위한 그 어떤 물건을 사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감추고 싶은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 그래서 벌이가 없음에도 시간이 많아 나를 돌아보기 위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나의 20대, 그때의 나에게 칭찬과 다행과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고생했다고.


안아줄게. 나의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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