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상경한 잘 나가는 딸들의 애들을 봐줘야 한다.
부동산 투기가 아니다.
현재 살고 계신 집이 두 개다.
세 자매는 공부를 잘했다. 아들을 낳지 못했던 엄마의 기를 펴주기 위해서랄까. 우리는 반에서 1등, 전교에서 1등, 막내는 전국 1%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자식 중에 한 명이 공부를 잘하면 아닌 자식도 있을 만한테 우리는 집에서 같이 놀고 같이 공부하며 자라왔다.
어릴 적 한 편의 사진같이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풀색 튤립 모양이 그려진 까슬까슬한 커튼이 있던 작은 방에 우리 셋이서 각자 벽이나 책장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었다. 그 당시 집 주변에는 도서관이 없었다. 엄마는 계몽사 아저씨한테 전집 하나를 들이는 날이면 다 같이 박스를 까고 정리하며 깔깔댔던 기억이 있다. 책값이 나가는 동안에는 휴지도 아껴 써야 했고 밥상에 생선도 보기 어려웠고 과일도 박했었다. 엄마는 이렇게 저렇게 돈을 만들어 책을 사주신 것 같다. 그런 책을 우리는 옆집, 윗집 서로 책을 바꿔가며 읽었었다.
적당히 영수학원과 학습지로 우리는 중고등학교를 보냈고 다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집을 떠났다. (심지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서 더 일찍 떠났었다.)
부모님은 지방에 계시고 우리는 지금 다 서울에 산다. 우리는 모두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 그리고 막 은퇴한 나와 달리 자매들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
여자가 일을 하려면 친정엄마의 희생이 필요하다.
나도 공감한다. 하지만 그건 좀 서운하다. 남자가 성공하려면 아내의 희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자가 성공하려면 남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친정엄마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이다. 불의 불식 간에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이를 봐주지 않는 친정엄마에게 매일매일 하소연하고 우는 딸의 입장도 있다. 직장에서는 능력과 상관없이 고과를 깔아줘야 된고, 집에 와서 쉬지 못하고 아이와 놀아줘야 한다. 그것보다 더 힘든 건 일하시는 이모님과의 신경전과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네트워크에서 소외되어 불안감이다. 장기전으로 가면 디스크, 폐렴, 지방간 등으로 몸의 곳곳에서 신호를 보낸다.
친정엄마들도 입장이 있다. 인터넷 쇼핑몰이 없던 시절 애 셋을 줄줄이 손잡고 5일장을 버스를 타고 다니시며 장을 봐오시던 분들이시다. 국민학교 준비물은 죄다 집에서 준비해 가야 했고, 야자까지 도시락을 하루에 4~ 6개씩 싸시며 사셨다. 여기저기가 아프다. 누구는 암이라더라. 누구는 고혈압이라더라. 건강이 불안하기만하다. 그리고 이제는 친구분들이랑 노래 교실도 다니시고 브런치도 즐기시며 사시고 싶으시다.
낯선 서울로 이사를 해야 한다.
작은 아파트를 사셨다. 서울 오면 묵으시려고 살림도 다 새로 사셨다.
손주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올라오셔서 며칠씩 봐주시다 가신다.
한 달에 한 번씩 딸들이 힘들까 봐 와서 애들을 봐주시고 가신다.
지방의 정든 남향집과 마당을 다 정리하셔야 한다.
떠나면 오랜 친구들은 어쩌고 키우던 강아지는 어쩌지?
고향에 아무것도 안 남겨두면 딸들이 내려오고 싶을 때 어쩌지?
이런저런 마음에 부동산에 집을 내놓셨다가 거두시길 몇 번째다.
오전에 또 속상하신 마음에 전화를 주셨다. 이런 집은 3대가 덕을 쌓아야 가질 수 있는 집인데 이걸 어떻게 파냐고.
딸이 이기고 친정엄마가 지는 게임이 아니다.
정답도 없고 결론을 내리기도 어렵다.
이렇게 인생은 흘러가고 우리는 이 속에서 최대한 행복을 찾을 것이다.